성인과 말이 하고 싶다

by 레베카


오후 5시 즈음되면 여지없이 남편에게 카톡을 보낸다.

- 여보 돼지, 언제 오시심?

- 8시요.

이런 날은 다행이다.


어떤 날은

- 10 넘어서요, 회식해서 늦어요, 먼저 자요.


므어? 먼저 자라고? 오늘 할 말이 얼마나 많은데...! 첫째가 고집 피우고 울고불고하여 나를 머리끝까지 화나게 한 이야기, 반대로 둘째는 또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여운 행동을 했는지도 이야기해야 하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수다 끝에 나를 무시 한 건지 아닌지 애매하게 행동한 동네 아줌마 뒷담화도 해야 하고, 저녁 반찬으로 만든 카레는 나만 맛있게 먹고 애들은 별로 안 먹은 이야기도 해야 하고, 애들 색종이를 다이X에서 쿠폰으로 할인받아서 엄청 싸게 샀다고 자랑도 해야 되고, 러닝머신 1시간 했다고 칭찬 좀 해 달라고도 해야 하고... 할 말이 이렇게나 많은데 자라니. 응? 먼저 자라니...




남편과 나는 이곳 신도시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내가 아는 사람이라곤 남편, 달랑 한 명이다. 나는 결혼을 하고 임신을 계획하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서울까지의 출퇴근으로 인한 체력적 부침도 있었지만, 아이를 낳게 되면 오롯이 내가 키워야 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친정 부모님, 시댁 부모님 모두 근거리에 살고 계시지 않는다. 부모님들께서 근거리에 사신다한들, 칠순이 넘은 노모에게 육아에의 부담을 지울 수는 없었다. 임신 전까지는 일주일에 두어 번 기존의 내 삶의 터전이었던 서울로 나들이를 하곤 했다. 그러나 임신하고부터는 신도시 이곳에서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늙은 산모인 고위험 산모였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야말로 육아전쟁이 시작되었다. 밥 대신 눈물의 식빵으로 연명하며 아이들과 울고 웃었다. 하루하루 무사히 의식주를 해결한 것만으로도 다행인 나날들이었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그 흔한 문화센터(아기들과 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한 번 갈 수 없었다. 집-놀이터-마트. 혹은 옆 아파트 단지 놀이터 정도가 나와 아기의 생활 반경이었다. 문화센터에서 엄마들끼리 사귀며 육아정보를 나누곤 한다는데, 나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아이가 태어나고 어린이집을 가기 전까지, 거의 3년 동안 나의 대화 상대라고는 남편, 단 한 명 뿐이었다. 내 일상을 나눌 사람이 단 한 명이라니.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저녁시간까지 그를 기다려야만 달콤한 수다에의 시간이 허락되었다. 그러나 많은 날, 육아에 지친 나는 저녁 시간이 되면 말을 할 기운마저 사그라들었다. 나는 누구랑 웃고 떠들고 놀며 고민을 나누고 울어야 하는 걸까. 아가야... .아가야, 내가 너를 키운다고 너무 힘이 들어서 하는 말이니, 잘 들어주길 바란다. 너가 많이 자라, 돌도 지나고 걸어 다닐 수도 있게 되었지. 장하다. 고맙다. 그러니. 이제는 원하는 것을 울지 않고 말로 해 주면 안 되겠니. 내가 다 알아들어요. 니가 ‘어마, 으어어’라고 해도 뭘 달라고 하는지 웬만한 건 내 다 알아들으니, 말로 해줘.


가끔 친정엄마, 친언니와 전화통화를 하는 것. 그리고 잘 못 보는 처녀 시절 친구들과의 전화통화. 아주 가끔씩, 고맙게도 서울에서 꽤나 거리가 있는 이곳까지 방문해주는 친구들과의 만남. 성인과의 대화와 만남이란, 이것이 전부였다. 아무리 육아에 전념해야 하는 시기였다 하더라도, 나에겐 육아의 고단함과 더불어, 이 곳에서의 삶을 오롯이 혼자 버텨야 한다는 고립감의 무게가 나의 일상을 누르고 있었다. 처녀시절 내 삶의 터전이었던 서울에서 신접살림을 차렸더라면, 내가 좀 덜 외로웠을까.


늦은 10시 즈음, 파김치가 되어 온 남편은 샤워하고 침대에 드러누워서 배 위에는 갤럭시 노트를 올리고, 한 손으로는 핸드폰을 보고 있다. 남자는 멀티플레이가 안 된다더니, 나의 남편은 동영상을 틀어놓고 기사를 볼 수 있는 멀티플레이가 되는 남자였구나. (오, 참으로 멋지기도 하지...) 퇴근 이후가 직장인 남편의 유일한 쉬는 시간이니, 막 열정적으로 매우 격렬하게 쉬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다. 남편은 자신의 자유시간에 내가 끼어드는 것을 별로 반기지 않는다. 남자가 자신만의 동굴에 들어갔을 때는 내버려 둬야지 문 앞에서 기다리지 말라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책 저자의 말을 굳건히 믿고 있는 나는, 어떻게 하면 남편이랑 대화의 물꼬를 틀지를 고민하다가, 그냥 돌아서서 거실로 나와서 티브이를 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오늘은 나랑 좀 놀아주면 안 되겠니?’라며 양해를 구해 보기도 한다.(진짜, 좀 치사하지만) 에라이, 대화를 구걸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나에게는 한 동안 이상한 증상이 있었는데, 우연히 동네 지인 성인 여자 누군가와 말을 섞게 되는 아주 러키(lucky!) 한 날이면, ‘너무 많은’ 이야기를 상대에게 해 대는 증상이었다. 그 사람이 궁금해하지 않는 부분까지 막 쏟아내듯 말하곤 했다. 말이 너무 하고 싶었다. 성인인 인간과 눈을 맞추며 대화를 하고 싶었다. 그러다 정신 차리고 집에 돌아오면, ‘이불 킥’을 하며 후회를 하곤 했다. ‘아, 내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구나.’ 그런데 후회는 후회일 뿐. 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또 정신을 잃고 막 말을 해댔다. 상대방도 느끼지 않았을까. 나의 외로움을. 그래서 살짝 이상해진 아줌마임을. 대화를 통한 공감과 이해는 차치하고, 나는 누구라도 좋으니 사람 옆에 있고 싶었다. 누군가가 내 동공을 쳐다봐주기를, 내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주기를 기대했다. 사람이 주는 온기를 느끼고 싶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내가 친구를 사귀어온 과정은 내가 찾아간 특정한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과정이었다. 같은 학교 같은 반 친구, 같은 대학 과 동기, 회사 동기, 절에서 만난 언니 동생들. 모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정해진 공간에서 자주 만나다 보니, 친해지고 그 같은 곳을 다닌다는 동질감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졌다.


그러나, 전업 주부가 되고 보니 나의 일터는 나의 집. 그 집에서 혼자 일한다. 주부에게는 옆자리에 앉아서 친해진 회사 동료, 같은 반 짝꿍 같은 사람을 자연스럽게 만나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적 공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사람끼리의 사귐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행해지기 위해서는 공적인 공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공간으로 어떤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야만 한다. 그러나 개별 주부는 각자의 집에서 내가 속한 가족만을 위해 일을 한다. 아주 '사적인 집'이라는 공간에서 홀로, 거의 매일. 전업주부라는 직업을 가진 존재에게 사회적 고립이란, 어쩌면 정해진 수순인지도 모른다. 집에서, 혼자서, 가족만을 위해서 일하다 보면, 언제 어떻게 사람을 사귀고 대화를 했었는지. 시나브로 사회성이라는 근육은 줄어들어 갈 것이다.


오늘의 나 또한 마음만 먹는다면, 하루 종일을 성인과의 대화 한 마디 하지 않은 채 보낼 수 있다.(요즘에도 이런 날이 가끔은 있다.^^;) 초보 주부 시절 어떤 편안함마저 주었던 이러한 고요한 낮의 시간이, 나는 어느 순간부터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오늘도 내일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 슬퍼졌다.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가끔씩 거실 창을 내다보면, 아파트 공원 벤치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수다를 떠는 아줌마들이 보였다. 부럽다. 어떻게 사귀게 된 사람들인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했다. 나도 당신네들 사이에 끼여서 대화를 나누고 싶다. 나도 농담도 잘하고, 너스레도 잘 떠는데. 나 좀 끼워주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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