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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베카 May 03. 2022

좋아해서 미안해, 좋아해서 외로워

너를 사랑해도 되겠니.

        

“니 아들 몇 시에 학교에서 오노? 니는 몇 시까지 시간 되노?”

윤언니가 물었다.

“12시 10분에 마치니까... 11시 40? 50?분 정도까진 시간 돼요.”

“그럼 우리 오전 9시쯤 만날까?”

“넹-”     


윤언니는 지하철이 한 시간에 두어 대 다니는 우리 동네에 시간 맞춰 8시 50분에 도착했다. 우리는 그 시간에 갈 만한 데를 찾다가 동네 버거킹으로 갔다. 아침부터 햄버거 세트를 먹었다. 풀(떼기) 위주의 브런치 식당에 비하면 삼분의 일 가격인데, 속은 세배로 든든해지는 것 같았다. 우선 배를 채우고 우린 대화를 했다.     


윤언니와 나는 엄청 넓은 소재의 이야기를 하곤 한다. 예를 들어 상사 뒷담화나 누구누구 엄마 욕을 할 때면

“금마 그거, 쎄리 마 눈까리를 뽑아서 짤짤이를 해 삐까.”라는 경박하기 이를 데 없는 대화에서부터

“당신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인가?, 그것에 왜 끌리는 것인가? 우리는 언제 행복한가? 행복을 이야기하기 전에, 도대체 무엇이 행복인가?”라는 머리에 쥐가 나는 철학적인 주제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대화가 흘러가는 대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날 오전 윤언니는 지금 그녀가 고민하고 있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근데 이렇게 대화가 통한다랄까...? 서로 잘 들어만 주는 게 아니라, 뭔가 나한테 질문을 던져서 내가 보지 못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준다라고 할까... 다른 세계를 보게 한다랄까... 이런 이야기 할 사람... 별로 없지 않아요?”

“아, 맞아. 나도 방금 그렇게 느꼈거든. 레베카야. 내가 주말에 신나게 속초에 여행하러 가서 느꼈던 건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왜 이렇게 즐겁지가 않지? 이런 느낌이었어. 난 그냥 지금 너랑 이거 먹으면서 떠드는 게 더 재밌고 좋아.”

“나도 그래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그녀들은 다들 바빠요. 언니도 그렇고. 내 주변엔 별로 안 친한 동네 엄마들 뿐이에요. 근데 솔직히 재미는 없어요. 그래도 만나긴 하죠. 외로우니까. 근데 내가 그 엄마들을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나도 그래. 넌 오전에만 시간 되고 주말엔 안 되고, 나는 회사 다니니 저녁이나 주말에만 되고. 우린 시간대가 참 안 맞다잉.”

나는 그렇게 말하는 언니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살짝 처진 눈이 좀 더 내려와 있었다.     


“그럼 좋아하는 게 생긴 건, 참 좋으면서도 슬픈 일이네요?” 

“응, 그것을 취하지 못해서 괴로워지면 그렇지. 경계가 생긴 거니까.”

“그리고 나는 왠지 내가 좋아한다고 딱 정해놓은 것 이외에는 이미 시시껄렁하다고 생각해서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는 것 같아요. 에휴, 그냥 좋아서 좋아하게 된 건데, 그래서 외로워지네요.”     


그래서 법륜 스님은 즉문즉설에서 그렇게도 ‘경계에 끄달리지 않는 인간’이 돼라 하셨던 걸까.       



             

어느 날 늦은 오후, 나는 아이와 놀이터에서 실컷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앨리를 만났다. 앨리는 내가 올봄부터 새로 시작한 독서모임의 멤버이자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동네 주민이기도 하다. 우린 오다가다 가끔씩 만난다. 우리는 독서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엘리가 말했다.     


“계모임, 엄마 모임 너무 좋죠. 아이 욕, 남편 욕, 시댁 욕을 한 세 시간씩 실컷 하고 나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그런데 돌아서면 허무해요. 내가 지금까지 뭐했나 싶더라구요. 그래서인지  저는 이 독서모임이 너무 좋아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배우는 것도 많고. 집에 가서도 나눈 대화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그러다 보면 내 삶이 돌이켜봐지기도 하고... 흐..., 여하튼 전 이 모임이 너무 좋아요.”

그녀는 말하면서 눈에 힘을 주기도 하고 눈썹을 치켜뜨기도 했다. 래퍼처럼 손동작을 사용하기도 했다. 안 그래도 얼굴이 작은 앨리의 얼굴이 가만히 있어도 기본적인 생기를 띠고 있는 남자 중학생 같았다.     

 

앨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문득 몇 년 전 윤언니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좋아하는 것이 만드는 경계, 그리고 그것에 수반되는 외로움. 나는 그것에 마음이 끄달리지 않으려 하지만, 그건 내겐 너무 어려운 일인지라 이젠 거의 포기 단계다. 그냥 외롭고 말지... 하면서.     


앨리는 독서모임의 좌장이고, 멤버 중 누구 하나라도 오지 않으면 마음을 많이 쓰는 듯 보였다. 앨리는 독서모임의 후기 또한 핸드폰 앱에 매우 자세하게 올린다. 책의 내용과 쪽수를 표시하고, 그 아래에 우리가 나눈 대화 또한 정리해서 써 둔다. 그런 앨리는 독서모임이 2주에 한 번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이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옛날옛날에 내가 애정하던 독서 모임이 있었다. 그 모임은 파토가 났다. 나 홀로 독주하는 한 멤버를 컨트롤하지 못한 좌장이 그녀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고 좌장의 자리를 내려놓았고, 독서 모임은 스르륵 없어졌다. 나는 그 독주하는 멤버만 생각하면 코에서 콧김이 나오고 호흡이 빨라지고 심장이 벌렁거리고 몸이 굳곤 했다. 그 독서모임은 이곳 신도시에게 내가 처음으로 온 마음을 다 주어 애정한 모임이라 할 수 있다. 당시의 나는 ‘독주녀, 너 때문에 내가 애정 하는 모임이 없어졌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당시의 나는 독주녀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슬픈 것이었다. 내가 그 모임을 너무 좋아했기에 말이다. 독서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 그 자체가 좋았더라면, 나는 다른 독서 모임에 가입하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만한 독서모임을 내 인생에서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이라 단정했다. 나는 독서 모임의 좌장을 좋아했고 그녀가 가진 그 특유의 부드러움을 닮고 싶어 했었다.  그렇게 그녀를 좋아해서 생기는 경계 때문에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배신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앨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독서모임을 좋아하는 그 분홍색 마음은 그녀의 것이었다. 새로 시작한 이 독서 모임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 달 만에 끝이 날지, 삼 년을 하게 될지. 


앨리 또한 좋아해서 생기는 경계에 대해서 살면서 많이 겪어왔을 것이다. 앨리의 나이는 모르겠지만 첫째가 중학생이라고 했으니. 하지만 앨리는 또 좋아하는 게 생겨버린 것이다. 나는 앨리가 좋아하는 것 때문에 넘어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어쩔 수 있나.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는 영역의 일인 것을. 그냥, 독서 모임에 잘 참여하는 수밖에. 그런데... 이번 책이 ‘사피엔스’라니. 난 아직 단 한 장도 읽지를 않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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