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멋진 대화를 나눴었는데.
나도 어느새 '옛날 것'을 추억하는 나이가 되었다. 옛날에 썼던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나 도시락통, 사첼 가방(이건 내 추억은 아니지만!) 같은 것들을 되돌려 기억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흠뻑 지나가 버린다. 아직은 추억을 만들 나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가끔 예전 기억에 갇히곤 한다. 그러고 보자면 가장 좋았던 것은 과거인 듯도 하다. 물론 과거를 만드는 게 현재라는 점에서,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따금 과거로 뚝 떨어지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약간의 휴식과, 그리고 추억에 담긴 소중한 깨달음을 위해서라도.
이 영화는 사실 처음에 봤을 때엔 이게 지브리라고? 싶을 만큼 당황했었다. 광대를 예쁘게 봉긋 올린 그림체는 캐릭터들을 훨씬 나이들어 보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계속 보다 보니, 그건 그것 자체로 아름다웠다. 어찌 보면 우리의 얼굴은 다 저렇게 생겼다. 애니메이션에서 문득 진짜 얼굴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는 건 어떨까. 지브리는 이런 것도 생각했을까. 감독이 타카하타 이사오라고 들었는데, 이 분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색다른 느낌을 추구하는 것 같다. 가구야 공주 이야기는 정말로 수채화 느낌이 들어서 깜짝 놀랐었는데, 추억은 방울방울은 정말 다른 의미로 놀랐다.
주인공인 타에코는 농촌을 동경하는 도시 여성이다. 큰언니가 결혼하며 생긴 인연으로, 농촌으로 일주일간의 긴 '홍화 따기 체험'을 가기로 한다. 하지만 가려던 도중, 그리고 가고 나서도 끊임없이 5학년의 내가 튀어나온다. 그 기억과 타에코가 농촌에 가서 홍화를 따고, 여러 경험을 하는 이야기가 재미있게 섞여 있다. 거기서 만난 토시오와의 인연은 이후에도 아주 멋진 엔딩을 맺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갑분 결혼 엔딩'이었겠지만, 내게는 굉장히 멋진 인연처럼 보여서 '갑자기!'라는 평가에는 놀랐었던 기억이 난다. 왜냐면, 타에코와 토시오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굉장히 멋진 소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토시오가 헝가리 음악을 틀 때부터 시작해서, 대화는 마치 물에 물 탄 듯 술술 흘러가기 시작한다. 그들의 대화에는 어색함이 없다. 토시오가 홍화를 아는 체를 하려다가도 그 사실을 타에코가 알고 있으면 멋적어하면서 사실을 말한다. '사실 어제 책에서 본 겁니다.' 그 말에 타에코는 웃는다.
이런 재미있는 의사 소통이 꾸준히 이루어진다는 게 신기하다. 타에코가 과거로 넘어가고 있으면, 어느새 토시오는 현실로 넘어와 중심을 잡아 준다. 갑작스럽게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타에코는 그 내용을 멋지게 받아 낸다. 이 대화의 상황을 보고 있자면 현대의 우리가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저렇게 소통한 적이 있었을까? 아주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서로가 서로를 저렇게나 위하는 대화와 소통을 자연스럽게 실현한 적이 있었을까? 글쎄, 최근의 나는 NO 를 외칠 수밖에 없다. 당연하다. 소통은 거의 SNS로 이루어지고, 일상 대화는 짧고 간결하다. 저런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나의 생각을 이야기할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친구가 있지만, 이상하게 무거운 주제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그런 이상한 입장에 우리는 놓여 있다. 우리는 대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드러내고 표현하면서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한다. 이 소통의 법칙이 내게 얼마나 신선했는지, 나는 사실 토시오와 타에코의 대화 부분만 꽤 많이 다시 돌려보곤 했다. 농담 섞인 진심들의 소중함을 되돌아보며, 문득 내 주변에 그런 지인들이 얼마나 남았는지 헤아려보며.
우리는 대화에 얼마나 정성을 쏟고 있을까. 우리의 일상은 얼마나 많은 의미 없는 대화 속에 세워져 있는가. 스쳐 지나가는 대화들은 마치 바람처럼 덧없고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긴 했지만, 대화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었던 것도 같은데. 그 때의 대화는 무엇이든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오롯이 대화에만 집중하던 시절이 있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그 자리를 대체한 지금, 우리들의 대화에는 어떤 것이 남아 있을까.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파편화'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대화는 말로 하면 길고 이어지며, 분위기와 연계해서 수많은 의미를 제공한다. 하지만 스마트폰 속의 대화는 부분적이고 어딘지 잘려 있으며, SNS에 올리는 이야기는 짧고 단편적이다. 이 하나의 텍스트와 영상들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개인의 단편적인 한 부분에 불과하다. 비언어적 부분이 잘려 나간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점차, 비언어적 소통 기술을 잃어 가고 있는 것도 같다. 마치 얼굴을 맞대면서도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사람들처럼.
이 영화를 바라보며, 소통을 다시 생각했다고 하면 이상할까. 아마 이 영화는 자연미, 혹은 성장, 혹은 여성서사로 이야기될 테니까. 하지만 나는 이 영화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타에코의 독백에 집중하고 싶었다. 타에코는 생각한다. 한 번 생각하고 없어질 것이 아닌, 내 오감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을 표현하고 독백한다. 우리는 우리의 오감을 얼마나 사용하고 있을까. 우리의 오감을 통해 체험한 지는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우리는...
대화를 다시 생각할 시간이다.
옛날, 우리가 했던 소통을 다시 떠올릴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