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이야기] 차와 옷의 상관관계

왜냐면 지금 제가 기모노가 입고 싶거든요!

by Scarlet

뜬금없이 차와 옷을 엮고 싶어졌다. 이유는 하나다. 기모노가 입고 싶기 때문이다. 기모노를 합법적(?)으로 입는 방법은, 차를 하는 거다. 일본 차는 유파마다 다르지만 주로 기모노를 입고 차노유를 한다. 오비에 주황색 다건을 끼워 넣는 게 오모테센케류 외에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의미에서 일본 다도를 한다는 건 허리쪽에 끈을 하나 매야 한다는 걸 뜻한다. 아니면 기모노를 입거나! 그렇다. 기모노를 입을 수 있는 합법적(?)인 위치가 된다는 건, 일본 차를 배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고 나니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나라는, 그리고 일본은, 중국은 얼마나 차와 옷이 관련되어 있을까?


사실 차와 옷이란 건 크게 관련이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삼국 시대의 소매가 길었다고 해서 단차를 끓이는 데 크게 문제가 되진 않을 테니까. 이와 비슷하게 일본의 기모노도 말차를 우리기엔 지나치게 소매가 길지 않았나 싶다. 일본의 옷소매는 직배래가 유행한 적 있던 한국에 비해 주로 긴 것이 일반적이었으니까. 한복은 그나마 사정이 괜찮은 편이다. 고려 시대의 한복은 소매가 짧고 상의가 허리까지 내려오는 것이 많았으니. 물론 의례복으로 들어가면 소매가 길어질 테니, 의례복은 제외해야겠다. 아무튼, 그렇게 생각해 보면 옷과 차가 무슨 관계가 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옷이 길다는 건 그만큼 스스로 차를 내리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당나라 시대의 화려한 옷은 아무래도 차를 우리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을 듯하다. 그래서 차를 내리는 건 시동의 몫이었다. 물론 이후에도 차를 우릴 때 시동을 활용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차는 아주 오랫동안 덩이차였고, 덩이차를 빻고 물을 끓이는 것은 수고를 요하는 일이었다. 이 모든 일을 직접 하지는 않았을 테니. 편한 옷을 입은 시동들이 자질구레한 일들을 도왔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옷이 차에 주는 영향은 굉장히 미미해진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청나라는 주로 산차, 그러니까 잎차를 흔히 마시던 시기였다. 명나라 주원장이 말차를 금지한 이후부터, 차는 잎차 위주로 생산되었다. 잎차를 마시는 법은 간단하다. 그냥 다관에 차와 뜨거운 물을 붓고, 우려내면 된다. 아예 찻잔에 차와 물을 넣고 우려내며 마시기도 했다. (개완) 거기다 청나라의 소매는 명나라 때처럼 길지 않았다. 길지 않은 소매로 차를 우려 마시기란 간단한 일. 의복은 차를 힘든 일이 아닌 일상으로 불러들이는 데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일본의 경우를 보자. 다도를 하는 모든 사람들은 기모노를 입고 있다. 아무래도 전통복이고 하니, '전통' 차에 어울리는 옷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모노는 편안한 옷은 아니다. 몸에 딱 붙고, 발걸음도 좁게 걸어야 한다. (유카타만 입었는데도 내 걸음이 자동으로 좁게 고정되었던 경험이 있다.) 그러니 그에 맞는 다도가 출현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옷의 한계는 결국 다양한 몸짓을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소매를 걷고, 차도구를 내고, 그 앞에서 차를 우리는 모든 행위가 복잡해진 건 행동을 조절시켜주는 옷의 영향이 컸으리라는 추측이다.


중국의 경우를 볼까, 중국의 치파오는 소매가 길지 않고, 청나라 때는 안에 바지를 입는 등 옷이 편안해졌다. 물론 걷는 데 어려움은 있었지만 (전족이나 화분혜 등) 행동을 불편하게 할 옷은 아니었다. 자유로운 옷은 편안한 행동을 추구한다. 한국도 비슷하다. 저고리의 배래는 붕어배래일 수도 있고 직배래일 수도 있겠지만, 행동에 딱히 불편을 주지 않는다. 치마폭이 넓어서 운신도 자유롭다. 이러한 행동에 차가 들어오면, 차는 까다로운 행동 없이 일상에 스며든다. 행다례의 엄격함이 중국이나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틀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옷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다.


물론 행다례의 엄격함이 없다고 하여 아름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한국만의 차를 마시는 법이 있을 것이고, 중국은 중국만의 스타일이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혹은 지역마다, 혹은 예법을 전수받은 곳마다 다를 것이다. 그 다양성 자체로 아름답고, 그 자체로 훌륭하다. 머그컵에 티백을 넣어 우려 내는 차도 맛있게 먹으면 즐거운 것이고, 한복을 갖춰 입고 예를 다해 차를 우리는 것은 정성에서 우러난 고아함이 멋진 것이다. 차별을 둘 필요는 없다. 다만, 예의와 정성을 다할 수록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교와 엄격함이 분명한 일본 차의례를 나는 부러워하고 있다. 사실은 배워보고 싶다. 입기 어려운 기모노를 입고, 걸음 수와 손의 각도까지 맞춰가며 차를 우리는 방법은 다시 봐도 멋진 것 같다. 중국의 전통 복식을 입고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모습을 보여주는 다예도 아름답다. 물론 한복을 입고 내리는 의례는 참 우아하다. 모든 행다에는 만 가지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다만 최근에 내가 꽂힌 건 기모노고, 그래서인지 여전히 배우고 싶은 건 일본 다도다.


일본 다도는 배우는 데 한참 걸린다고 하는데, 과연 나는 일본 다도를 제대로 배울 수 있을까? 우아한 손놀림으로 차를 우릴 수 있을까? 결국 구입해버린 기모노를 앞에 두고,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해 본다. 그래도, 참 멋질 것이다.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즐거운 법이다.


아름다운 옷에 아름다운 차,

멋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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