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이야기] 차는 많고, 나는 하나

차가 너무 많아서 고민인 사람의 이야기

by Scarlet

차생활을 하게 되면 차가 모인다. 나 같은 경우는 지인이 찻집을 하고 있어서인지, 이런저런 차를 많이 받는 편이다. 예전에는 차를 사서 마셨지만, 이제는 차를 받아다 마신다. 그러던 중,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 집에 차가 수북했다. 녹차, 홍차, 우롱차... 종류도 다양한 차, 차, 차. 삼촌이 한가득 받았다고 반을 나눠 준 보이차는 아예 입도 대지 못했고, 루피시아 홍차도 봉투를 아예 뜯지 못했다. 정말 좋아하는데 마시지 못하는 건 아쉽다. 하지만 차는 카페인이 있잖아요, 저녁에 마시긴 좀 어려운 친구랄까.


그래서 고민이 늘었다. 하루하루 늘어만 가는 차들, 매일 아침마다 차를 우리지만, 소비 속도보다 받는 속도가 더 빠른 듯한 요즘, 나의 고민은 차를 어떻게 마시느냐이다. 매일 아침 내려가는 차를 한 병에서 두 병으로 늘려야 하나? 텀블러에 다른 차도 우려서 담아야 하나? 그렇게 가득 내려서 먹으면 오히려 질리지 않을까? 온갖 걱정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가 스르륵 사라진다.


사실 내가 차를 하며 알게 된 곳 중에 카페가 있다. 네이버 카페인데, 차를 여러모로 나눔하는 사람이 많았다. 저렇게 나눔이라도 해 볼까 싶어 차를 보면, 또 나눔해 볼 그럴듯한 차는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차 나눔을 하면서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친구에게서 받은 차예요" 라는 표현은 좀 웃기지 않은가. 적어도 브랜드라던가 향이라던가는 설명해야 할 것 같은데, 친구에게서 opp봉투에 담아 받은 차들에는 그런 게 없다. 그래서인지 차를 마실 때마다 이 차가 뭐지 싶은 생각도 가끔 든다.


루피시아와 같은 잘 밀봉된 홍차는 뜯기가 망설여진다. 뜯는 순간부터 향이 약해질 걸 알아서다. 밀봉된 병에 있는 차도 마찬가지다. 내가 뚜껑을 자주 여는 만큼 향이 사라질 것 같아서, 차를 바라만 보게 된다. 이 차를 마셔도 괜찮을까, 괜히 내가 향을 더 흐리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걱정과 근심은 차를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찬장 속에서 푹푹 묵혀져 가는 차들이 한가득이다.


나는 하나다. 그걸 인정하는 게 이 차를 없애는 첫 번째 목표라는 사실에 집중하기로 했다. 저렇게 많은 차를 나 혼자 마시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나눔은 하되, 이 이름을 물어보지 않을 사람들에게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는 김에 내가 차를 우리며 스킬을 높일 수 있는 곳이면 좋을 것이다. 그렇다, 근무처다! 나는 근무하는 곳에 내 차 도구들을 몇 개 놔두기로 마음먹었다. 일하면서 차를 내려 두고, 누구든 마시라고 하면 차는 빠르게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설렜다.


어쩐지 찬장 속 차들에게 미안해진다. 나는 그동안 귀찮다는 이유만으로 차를 실컷 묵혀 두고 있었다. 이제 좀 마실 때가 된 것 같다! 그래, 슬슬 마실 때인 것이다!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이 내 차를 좋아하기를 기도하며, 차를 담을 병을 사러 다이소에 가야겠다. 어쩐지 설레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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