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끼의 도시락만으로 그 사람의 조각을 알아볼 수 있는 즐거운 이야기
도시락을 좋아하는 편이다. '논짱 도시락' 이라던가 '461개의 도시락' 이라던지 도시락이 메인 테마로 나오는 영화는 열심히 봤던 것 같다. 물론 따라하지는 못한다. 따라하고 싶어서 나무 도시락을 샀었던 적은 있지만, 전자렌지에 돌릴 수 없다는 것에 분노해서 중고장터에 팔아버린 지 오래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아쉽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책에 있는 도시락 중에서 제일 만만한 것을 골라, 한번쯤 따라해볼 수도 있을 텐데. 근데 책에 나온 도시락들은 한결같이 나물이나 장아찌가 들어가 있어서 난이도가 훅훅 올라간다. 차라리 461개의 도시락에 나오는 것들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도시락' 을 싸오는 어느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직장도 나이도 성별도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도시락을 보여주면서 각자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어떤 사람은 직접 싸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가족이 싸주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예쁜 도시락통에 담아오고, 어떤 사람은 접시에도 담아낸다. 평범하게 맛있겠다 싶은 것도 있고, 나물이 많아 음, 내 취향이 아니군 하고 생각하게 되는 도시락도 있다. 신기한 건 거의 대부분의 도시락에 계란말이가 들어간다는 거다. 역시 계란말이, 도시락의 스타!
사람들의 기억은 어찌보면 비슷비슷하다. 도시락의 기억은 어린 시절부터 넘어간다. 그러니 부모님이 싸 주신 도시락이 먼저 기억날 것이다. 그리고 도시락과 관련된 추억들이 쏟아진다. 어쩐지 신기하기까지 하다. 왜냐면 나는 도시락과 관련된 어떤 추억도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급식을 했던 내게, 도시락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야간자율학습 전에 먹었던 저녁식사가 거의 전부였다. 그것 말고는... 지금이다. 최근에 일을 하면서 도시락을 다시 싸오기 시작했다.
나는 예쁜 도시락통을 갖고 있지 않다. 조그만 락앤락통에 조금씩 밥과 반찬을 옮겨담는 것이 전부다. 내 도시락을 먹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도시락 사진사분이 만약 내 도시락을 찍는다면,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하고. 그리고 내 도시락은 그 사람들의 도시락처럼 예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사진을 찍으러 온다고 미리 말했기 때문인지 어쩐지 도시락엔 힘과 정성이 들어간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평소에 먹는 것도 그것과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밥, 계란말이, 나물, 장아찌... 거기에 내가 신경쓴 티를 낸 무언가 하나.
나 같은 경우엔 아마도 계란말이와 가라아게를 선택할 것이다. 갑자기 가라아게라니 무슨 소리인가 하겠지만, 나는 가라아게를 정말 좋아한다! 덧붙여 집에 냉동 가라아게를 잔뜩 사 놓았다. 그러니 멋진 날이라고 한다면, 김치와 가라아게를 싸들고 가서 보여줄 것 같다. 사실 가라아게를 좋아하게 된 데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다. 그냥 치킨을 좋아하는데, 나 빼고 우리 집은 다들 치킨을 좋아하지 않아서 혼자 먹을 수 있는 치킨을 찾다 보니 가라아게를 선택하게 된 것 뿐이다. 그래도 어떠랴, 맛이 좋으면 된 것이다!
도시락과 관련된 추억을 말하라면 무엇을 말하게 될까... 아마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저녁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문제지 위에 도시락을 펼쳐놓고 먹으며 공부를 했었다. 그런데 사실 그 땐 엄마도 너무 바빴을 때였다. 논일, 밭일, 집안일, 바닷일까지 한꺼번에 했으니까. 어느 날 엄마가 싸 준 도시락엔 밥과 김치만 달랑하니 들어 있었다. 사실 엄마가 김까지 챙겨 주려고 했는데 김을 잊어버린 것이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밥에 물 넣고 물밥에 김치 얹어서 먹었다. 어떻게 먹든 밥만 먹으면 되지! 라는 마인드였던 것 같다. 엄마는 그런 나에게 꽤 고마웠다고 말했다. 나는 여전히 그 반찬이 뭐가 문제였는지 잘 모른다. (밥만 있으면 된다, 밥만!)
그런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도시락을 바라본다. 어쩐지 내가 먹는 도시락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모두에겐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가 자신의 도시락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도시락을 싸는 모두는 멋진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고다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도시락은 우리에게, 어쩐지 낭만적인 이름으로도 와닿는지 모를 일이다.
어느 낭만의 주머니를 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