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염 환자는 손수건과 친구가 될 수밖에 없다.
나는 비염 환자다. 비염은 고통스럽다. 나는 매일같이 코가 나온다. 이유를 모른다. 어느 날은 뜨거운 것을 먹었을 때, 어느 날은 매운 것을 먹었을 때(나는 무려 맵찔이이기까지 하다!), 어느 날은 추워서, 어느 날은 더워서.... 대체 내 몸의 어느 곳에서 코를 이렇게나 제조하는 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휴대폰만큼이나 휴지를 함게 들고 다녔다. 그게 없으면 살지 못할 것 같았다. 일단 비주얼적으로, 코를 소매에 슥슥 닦는 사람은 못나 보이잖은가.
하지만 휴지의 크나큰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코가 헌다는 것이었다. 나는 시뻘겋게 튼 코를 하고선 겨울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이상하게도 비염은 겨울이 되면 심해진다. 건조해서 그런 것일까, 추워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감기의 전조인가. 정작 감기는 거의 걸리지 않았지만, 아무튼 항상 코를 훌쩍거리고 다니는 내게 코를 푸는 행위는 고통에 가까웠다. 늘 코가 아팠고, 찡했다. 별로 춥지 않은 날씨에도 항상 내 코는 새빨갛고, 또 새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씻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냥 피부가 벗겨졌을 뿐이다.
그래서 지인들의 말에 따라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기로 했다.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면서 코를 푸는 것은 꽤 힘든 일이었지만, 동시에 편한 일이었다. 쓰레기통을 찾아 여기저기 헤멜 필요가 없는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주머니 한 쪽이 눅눅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생각보다 손수건은 자신의 일을 잘 해낸 까닭이다. 비염이 조금 약해진 덕도 있지만, 코를 풀면서 코가 너무 아파서 힘들다는 느낌은 적게 들었다. 좋은 일이었다.
그러면서 우리 집에는 손수건이 늘기 시작했다. 손수건은 얻으려면 여기저기서 얻을 수 있다. 다이소에서 천 원짜리를 사도 되고, 기념 손수건도 여기저기서 받을 수 있다. 나는 어디 관광 기념 상품으로 받은 손수건 세 개를 가지고 있는데, 이건 사이즈가 커서 잘 때 목수건으로 쓴다. 책을 살 때 딸려오는 손수건도 있었고, 가게에서 산 가제 손수건, 지인에게서 받은 손수건 등 우리 집에는 손수건이 스무 개 정도 있다. 하지만 충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손수건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이런 편견을 갖게 된 건 손수건을 하루에 한 장씩은 꼭 써서다. 게으른 나는 세탁기에 손수건을 집어던지곤 한다. 하지만 그러려면 세탁을 3~4일에 한 번 하는 내 특성상, 몇 개의 손수건이 모이게 된다. 그리고 그 세탁물들이 다 말라 다시 내 옷장 속으로 들어가기까지는 일 주일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일주일동안 나는 하루에 한 장씩 총 일곱 장의 손수건을 쓰게 되는 것이다. 우리 집에 손수건의 산이 생긴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손수건을 방바닥 한 구석에 산처럼 모아놓고 쓴다)
매일 손수건을 바꾸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일단 위생 문제. 한 손수건을 이틀 이상 쓰면 깨끗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두 번째는 너무 축축해서 불쾌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고, 세 번째는 립스틱 같은 것이 묻어서 오래 쓸 경우 세탁이 어렵다고 판단되어서다. 그것 말고도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아무래도 첫 번째 이유가 가장 큰 것 같다. 나는 손수건으로 손을 닦거나 얼굴에 튄 소스를 닦거나 하기도 하는데, 깨끗하지 않은 손수건으로는 이런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불편할 수 있다.
어쩌다 보니 매일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는 '여성스러운' 인간으로 살고 있지만, 사실 내 손수건은 와일드에 가깝다. 세탁은 세탁기가 해주고, 끝자락이 너덜거리는 것만으로는 수명을 다했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나는 손수건이 터지기 전까지는(나는 내 낡은 티셔츠 하나를 말 그대로 '터뜨려서' 버린 적이 있다.) 계속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류다. 아마 손수건은 괴로울지도 모르겠다. 이 주인은 나를 소중히 대하지도 않고, 더러운 것을 매일 묻히고, 신나게 세탁기에 돌리는데 쉬게 해주지도 않아!
하지만 뭐 어쩌랴. 그것이 우리 집에 온 손수건들의 운명인 것이다. 오늘 나의 손수건은 꽤 예쁜 연보랏빛 파스텔 손수건이다. 하지만 비염 환자에겐 그냥 코 닦는 수건일 뿐이다. 그 아름다움을 뽐내게 하지 못하는 것은 아쉽기도 하다. 옛날에는 손수건에 향수를 뿌린다거나, 어디 앉기 전에 손수건을 깐다거나 하는 행동이 있었다고 한다. 나는 도통 그런 짓은 못 할 것 같지만, 새 손수건을 접어 호주머니에 넣으면서 그런 생각은 한다. 아, 오늘도 나의 하루가 평안하기를.
오늘도 모두의 하루가 평안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