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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arlet Jan 16. 2024

[옛날 이야기]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날

나는 알지 못했던 이야기

아주 옛날의 기억부터 시작해보자. 그러니까, 내가 태어나기 전. 나는 모르고 남들은 다 알 그런 이야기들을. 어느 누군가가 악의로 이야기했고 내가 선의로 받은 이야기. 그 누군가의 목적이 어쨌든 무슨 상관이랴, 우리 엄마가 해 주지 않는 이야기를 들은 것만 해도 큰 성과이다.


우리 엄마는 몸이 작고, 허리가 굽은 사람이다. 키가 내 어깨까지밖에 오지 않는 작은 몸. 하니, 애를 낳기에 별로 좋은 몸은 아니었다. 오빠를 낳을 적에는 그래, 오빠가 태어났을 때 몸무게가  2.2kg이었으니 말 다 했다. 오빠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집에 그런 돈이 있을 리 없다. 그러니까 꼼짝없이 죽어야 할 판이었다는 거다. 그런데 왠걸, 그 눈도 안 뜬 애기가 엄마 젖을 찾아 무는 것이다. 젖을 물고 먹으려 드는 것이다. 그래도 애가 어미 젖을 찾아 무니 다들 살았다고들 했다. 그 말이 참이긴 한 모양이다. 그렇게 젖을 물고 먹고 울고 오빠는 그렇게 살아남았다.(지금 멀쩡히 잘 살아 있는 걸 보니 그렇다.)


 나는 사라질 운명이었다. 엄마 탓을 하기에는 너무 옛날 이야기이고, 엄마가 처한 상황이 지나치게 나빴다. 우리 엄마의 지금 몸무게가 40kg이 안 되니 그때도 비슷했겠지. 큰엄마와 함께 나를 지우러 병원까지 갔는데, 내가 너무 커 버린 바람에(낙태도 달수가 차면 못 한단 사실을 알았다.)  못 지우고 나왔다고 했다. 둘이서 몰래 나갔던 것이 들켜, 할아버지한테 엄청나게 혼이 났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큰엄마가 나를 지우란 이야기를 꽤 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내게, 느그 큰엄마는 참 독한 사람이다 라고 했다. 나를 죽이려고 한 못된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큰엄마의 맘을 이해할 수 있으므로 딱히 그런 말에 신경 쓰지 않는다. 큰엄마 입장에선 올케가 죽을지도 모를 큰일이었으니, 얼굴도 못 본 나보다야 더 귀하지 않았나 싶다. 아마 나라도 엄마에게 그런 말을 했겠지. 큰엄마는 옳았다.


오빠는 백일사진이 있고, 나는 돌사진이 있다. 그리 죽을 고비를 넘기고 태어나,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사진도 찍고 커가며 애도 먹이고 속도 썩이고 했다. 엄마는 이때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저 위의 이야기들은 모두 남에게서 들은 것이다. 엄마는 저 때의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저 시절의 이야기는 항상 엇갈리기만 한다. 굳이 엄마에게 들을 이야기는 아니므로 캐묻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엄마의 처녀 시절 이야기를 알지 못하지만, 본인이 말하지 않는 이야기를 굳이 내가 물을 필요가 있겠는가.


누군가는 엄마가 나를 살리기 위해 사흘 단식을 해가며 낳았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너를 지우려고 간장도 마셨다고 한다. 어쨌건 나는 멀쩡하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으니, 그 노력들은 다 내가 잘 자라기를 바랐던 기원제 정도가 될 것이라 믿는다. 무슨 말을 듣던지간에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것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를 여기까지 키워준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가장 잘 아니 더 그렇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어쩌다가 착한 딸 증후군에 걸려 이리 효도하나 싶다가도, 아마 이 생에선 이렇게 살 수밖에 없지 않나, 하고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리도 멀쩡한, 나의 현재가 그렇게도 아슬한 과거에 걸쳐져 있다는 사실이 늘 나를 새롭게 한다. 쓸데없이 감상에 젖는 것은 아니다. 나의 삶을 동정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감히 내가 나를 동정하나. 나는 그러기엔 너무 열심히 살았다. 나는 그저, 내 삶의 시작이 생각보다 드라마틱한 것이 신기할 뿐이다.


지금, 큰집 식구들은 명절 때 나를 부른다. 오빠는 안 와도 되지만(사실 일 때문에 못 간다) 나는 꼭 와야 한다고. 나는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태어나, 아주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삶을 존중하고, 존경하며, 앞으로의 삶 또한 최선을 다해 보자고 마음먹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머니가, 끝내 그 기억을 잊어버리는 순간이 오기를 바란다. 엄마의 기억이 부디 오롯이 행복하여, 그 때의 힘듦을 잊기를.

 

이것은 딸이 어머니께 보내는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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