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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arlet Apr 30. 2024

[일상 이야기] 게임에 정신줄을 놓았어요

발더스 게이트 3을 찬양하라!

앞서 적은 글에, 내 삶의 루틴이 많이 무너졌다는 글을 썼다. 그래서 이런 글을 써 보고 싶었다. 저는 지금, 게임에 중독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에. 갓생을 산다는 사람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어찌하랴, 내가 이미 게임에 빠진 것을. 나는 애초에 게임 같은 중독적인 것들에 굉장히 취약하기 때문에, 게임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정해진 결과라 할 수도 있다.


처음에 시작은 친구 집에서였다. 친구는 "뉴비" 인 나를 위해 아낌없이 게이밍 노트북을 빌려주었고, 함께 게임해 주었다. 나는 게임을 못 하는 것과 상관없이 꽤나 좋아하는데, 거기다 ADHD끼가 있어 중독에 굉장히 취약하다. 그런 내게 "발더스 게이트 3"은 달콤한 독이 든 사과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미 나는 그 사과를 한 입 물었다. 그리고 그 독은 정말이지 빠르게 내 온 몸에 침투했다.


거부할 수 없는 발더스 게이트의 마력은 lUCIFER처럼 내게 다가왔다. 처음엔 플레이가 너무 어려워서 한참을 버벅였다. 하지만 그것도 금방 적응했고, 나는 조금씩 조작감을 익히면서 느껴지는 게임의 디테일에 전율했다. 정말이지, 주인공의 첫 모습이 이렇게나 초라하고 거지같을 줄이야. 이 게임은 정말로 거지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열심히 상자와 주인 없는 물건을 털고 털어서, 내 곳간을 채워야 한다. 게임 내 세상인데도 참 빡세다. 죽은 자와 대화할 수 있는데, 나를 죽인 자와는 대화를 거부한다. (무슨 이런 쓸데없는 디테일?!) 책 속에 있는 장난같은 정보들이 어느새 모여보면 제대로 된 하나의 정보가 되어 있다.(물론 쓸모없는 것들도 있다.) 무시무시하다.


엄청난 화질의 그래픽과 거대한 스토리의 산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사실 처음 게임을 시작했을 때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이 게임의 끝을 알고 싶다 정도? 게임이 어떻게 끝날지 너무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이 거대한 서사의 끝에 서고 싶었다. 그런데, 이 방대한 양의 게임은 그것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길은 심심하면 잃어버리고, 지하로 갔다가 다시 올라갔다가 다시 돌아가는 길을 몰라 한참을 헤메고.... 공격할 곳을 잘못 찍어서 헛손질을 하고... 아무튼 바보 짓이란 짓은 다 하고 다닌 것 같다. 남들이 봤으면 답답해서 가슴을 쳤을지도 모르겠다.


그 난리를 쳐가며, 130시간을 투자해서 엔딩을 드디어 보았다. 그런데, 즐겁지가 않았다. 내가 생각한 가장 완벽한 서사의 끝을 맺었는데, 즐겁지가 않았다. 이유를 모르겠어서 한참 고민했는데, 이제야 알 것 같다. 나는 "주인공"의 입장에서 "주인공이 할 만한" 역할에 이입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주인공이었으므로 그런 역할을 맡게 했던 것이다. 그 갭 차이는 나를 꽤 오랫동안 슬픔에 빠뜨렸다.


결국, 나는 게임을 샀다. 우리 집에서도 게임을 하기 위해서. 게임의 볼륨에 대비하자면 꽤 싼 값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컴퓨터도 게임이 플레이 가능할 수 있도록 조금 업그레이드 했다. 이 게임이 요구하는 사양은 지나치게 높아서, 화질도 좀 낮추어야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 혼자 떠나는 여행은 약간... 좀 막막하기도 하고 좀 어렵고, 가끔은 쉽다고도 느꼈지만 아무튼. 이 게임 속에 몰입하며, 나는 또 다른 삶을 사는 것처럼 지내고 있다.


게임 속에서의 나는, 실패도 하고 가끔 성공도 하며, 내 목표를 이루지도 못할 때가 있지만 그래도 꾸준히 성장한다. 레벨업이라는 목표를 이루고, 강해져서, 아마 결국 엔딩을 멋지게 장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니, 지금 이 생에 살아가는 "나는?" 이라는 질문만이 내게 남았다. 나는....


내가 이 게임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멈춰버린 것은 운동이었다. 운동을 갔다 오면 피곤해져서 일찍 씻고 자 버리니까. 게임만 하면 나는 새벽 한 시까지 뜬눈으로 있을 수 있었다. 어찌나 신기하던지. 그러면서 나는 운동으로 기른 내 체력을 전부 써버렸다. 요즘 피로도를 보니 그렇다. 수면 시간이 급속도로 줄어들었고, 집중력이 떨어졌다. 게임의 영향이다. 빈말로도 좋다고 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이상한 기분은 뭘까?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는 그 표현을 이 게임을 하며 느꼈다. 나는 게임을 하며, 세상이 즐겁고 삶이 기쁘며 피가 도는 느낌을 받는다. 잔잔하던 일상에서 받지 않은 자극이다. 이런 자극도 가끔은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자주 있으면 곤란하겠지만, 이런 자극이 온 건 거의 1년만이니까 괜찮을 것 같다, 라고 혼자 생각해 본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다시 운동을 갈 것이다. 게임에 빠져 놓아버린 루틴을 다시 재정립해 볼 예정이다. 게임도 짬짬이 할 것이다. 이 아드레날린을 놓칠 수는 없겠지. 내 삶에 빛으로 타올라준 이 게임에 감사한다. 이 게임이 아니었으면, 나는 이 단조로운 시간들 속에서 어쩔 줄 모르고 길을 잃었을지도 모르겠다.


가끔 이렇게 툭 튀어나와주는 세계가 즐겁다.

그래서 이 세상은 나를 너무 행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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