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무기력이 불러온 재앙에 짓눌려
그리하여 나의 탄식은 하늘을 가리우지 못한다
나의 생활패턴에는 기복이 있다. 바이오리듬처럼, 일정하게 올라갔다 내려오며 오락가락한다는 뜻이다. 어느 시즌은 미친듯이 부지런해서, 모든 일정을 소화하다 못해 추가 일정을 만들어내는 기적같은 체력을 자랑한다. 어느 시즌은 기운이 없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거니와 해야만 하는 일도 하지 않아서 사람들의 불만을 산다. 지금 내가 딱 그런 때를 겪고 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온통 축축 처지기만 할 뿐인 것. 이걸 사람들은 무기력이나 슬럼프라고 부르는 것 같다. 일단 나는 내 업무의 기복이 없으니 무기력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에서 바라보는 나는 전혀 무기력이 아니다. 나는 게임을 부지런히 하고 있다. 몇 시간동안 이어서 할 수도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너는 그냥 게으른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최근에는 밥 먹는 것도, 옷 고르는 것도 너무 귀찮아졌다. 그렇게 사랑하던 차 마시는 생활도 멈춘 지 오래다. 일상과 취미생활을 미루는 것은 무기력의 가장 기본적인 현상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진단하고 나니 까마득함이 몰려왔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루틴을 지키라고 말한다. 나는 안타깝게도 그 정도로 강한 루틴을 만든 적이 없다. 꾸준히 만들고 싶던 생활 습관은 있었지만,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버겁고, 자는 것조차 힘들어진 지금은 유지하기조차 어렵다. 유지가 다 뭔가, 나는 지금 거의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누워만 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게임만 하고 있다. 어쩜 이렇게도 내가 싫어하던 삶을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짜증이 올라온다. 내 삶이 버겁다.
이렇게나 감정 기복이 심할 수 있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신나게 몰입한 지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왜 이번에는 또 이렇게 축축 처지는 것일까. 이쯤되면 나도 나 자신을 모르겠다. 길을 잃고 헤메고 있는데, 어디를 어떻게 헤메는지조차 모르겠어서 막막하다. 정말이지, 이게 다 뭔가 싶다. 삶을 위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니.
지금에 와서 나는 결정을 내렸다. 이런 무기력이 올 때, 나는 최대한 쉬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무기력한데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그것을 내가 '하지 못했을 때' 나 자신에게 너무 나쁜 생각들을 하기 때문이다. 대신 꼭 움직이고, 먹고, 자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나머지는 필수가 아니다. 시간이 남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밥 먹고 좀 움직이긴 해야 한다. 그 움직임이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 같아서. 그리고 밥을 먹어야 무기력이 사라졌을 때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결정을 내가 백 퍼센트 지킬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다만, 그렇게 지킬 수 있도록 최대한 쉬운 걸로 잡았다. 나 자신에게 내가 가혹해지지 않도록. 하여, 내가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도록. 무기력은 스스로를 쓸모없다고 판단하게 만든다. 나는 스스로를 평소에도 그리 아끼는 편이 아니라서, 정말 끝 간데 없이 스스로를 나락으로 떠밀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옳지 않다는 걸 안다. 알기에 최대한 막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이 대처가 약간 통했는지, 지금은 어떻게든 밥을 먹고 어떻게든 잠을 자게 되었다. 나의 무기력이 얼마나 가벼운 수준인지를 깨닫는다. 그리하여 나의 탄식은 하늘에 닿지 못하고, 그저 내 주위만 맴맴 맴도는 것 같다. 나는 그렇기에, 하늘에(혹은 누군가에게) 뭔가를 바라기보다 뭐라도 행동하는 쪽을 택하고 싶다. 그게 훨씬 더 잘 먹힌다는 사실을 알아서.
나도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으면 참 좋겠다. 하지만 내 성격상 누군가를 그렇게까지 믿지 못한다. 절대자의 존재를 도저히 납득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나 자신과 끊임없이 투쟁하고, 전쟁하며, 지난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저 끝없이 나 자신에게 묻고, 행동하고, 실패한다면 그 실패를 되돌아보고, 다시 행동하고..... 실패했던 행동을 되풀이하는 짓도 자주 한다. 그러니 나는 완벽해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안다.
그냥 나는, 내 행동과 내 태도와 내 마음에 책임을 지기로 했다. 내 것이니까, 내가 열심히 관리해주기로 결심했다.
어느 날, 조용하니 속시끄럽고 나른하니 피곤하던 그런 날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