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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arlet May 21. 2024

[일상 이야기] 그 순간에, 버림

정말이지, 미니멀라이프는 일상이어야 한다

나는 올 한 해, 내 물건들 중 안 쓰는 것들을 많이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브런치에 올린 첫 번째 글에도 그렇게 적어둔 것으로 기억한다. 많이 비우고, 많이 버릴 것. 나는 그 말대로, 제법 그럴싸하게 삶을 비워나갔다. 옷도 좀 정리하고, 짐도 좀 정리하고, 노트도 좀 정리하고... 그럭저럭 비워나갔다고 생각했다. 기록이 남아 있어서, 지금도 알 수 있다. 2월즈음해서 불이 붙어서인지, 중고장터에 이것저것 올려 판 흔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내 물건이 꽤나 줄어든 줄 알았다. 꽤나.

 

내가 물건을 비워내는 데 집중했기에, 나는 정작 내게 들어오는 물건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지인이 내게 옷을 정리하며 발견했다고 옷을 한 무더기 주었다. 질좋은 옷들이었고, 신나게 입었다. 지인이 안 쓰는 가방이라며 몇 개의 가방을 주었다. 신나게또 받았다. 찻잔이 너무 갖고 싶어서 이리저리 알아보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내게 찻잔 네 세트(찻잔과 소서 한 세트 기준)가 있었다. 분명 버린 겨울옷이 갑자기 늘어났고, 찬장엔 물건 둘 곳이 없어졌다. 차를 마시게 되며 차를 잔뜩 샀더니, 차를 둘 곳도 없어졌다. 차통을 넣어두는 찬장을 정리하다, 어느샌가 문득 정신이 들었다. 나, 물건이 좀 많아진 것 같은데....?


이상한 일이었다. 가방을 네 개나 정리했는데 가방이 더 늘어난 것은. 옷을 제법 정리했는데도 옷이 더 늘어난 것은. 사실 이상한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면 나는 받는 것을 좋아하고, 어디서도 뭔가를 잘 받아오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받은 것을 잘 쓰는 편이다. 그래서 우습게도,  나는 정작 들어오는 물건들의 개수를 헤아리지 못하고 많이 버렸다고, 정리를 했다고 어깨를 으쓱거린 것이다. 얼마나 한심한 일인지! 한 개를 사면 한 개를 버려서 균형을 유지한다는 미니멀리스트들의 이야기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래, 나는 아무 생각없이 대놓고 물건을 열심히 받았던 것이다.


또 칼을 빼 들 시간이었다. 또 열심히 옷을 정리했고, 일부 옷은 옷 수거함에 넣었다. 입을 만한 옷이었으며 제법 예쁘기도 했지만, 내가 입기엔 불편한 옷들 위주였다. 자주 입은 것과 상관없이 내가 불편감을 느낀 모든 옷들을 정리했다. 사실 지금도 옷장은 정리중 단계다. 다시 생각해도 나는 참 옷이 많다. 어쩜 이렇게 많을까.... 그릇도 정리 단계에 들어갔다. 예쁘다, 멋지다, 이런 핑계로 여기저기 받아온 찻잔과 소서를 정리하려고 한다. 버리기는 조금 아까워 당근에 올려두었다.


누군가가 가져가면 좋을 것이지만, 누가 가져가지 않는다면 빨리 처분해버릴 생각이다. 이걸 내가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 '아깝다'는 생각은 힘이 매우 세다. 그래서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버렸어야할 물건들이 도로 돌아와 있는 경우가 많아서 나를 당황시킨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팔리지 않는 물건들은 아깝다고 도로 놓아두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이 아이들은 내가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 순간이 있다. 버려야 하는 순간. 내가 너무 아깝고, 아쉽고, 이럴 수는 없을 것 같아 붙들어둔 물건들이 사실 내 마음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것들을 놓아주고 나면 차라리 편안할 것을, 왜 그렇게나 버리지 못하고 안달하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얼마나 자주 이런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것일까? 고민과 생각이 끝없이 이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맥시멀리스트의 습성을 끊어내지 못한 것 같다.


누군가가 이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득달같이 사야만 하는, 필요는 없지만 아까운, 그리하여 내 손 가득 내가 쓰지도 않는 물건들이 가득하다. 비워내도 비워내도 그 물건들은 늘 그 자리에 있다. 왜냐면 나는 진짜로 '비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욕심을 비워내지 않은 탓에, 내 물건들은 거기 그 자리에서 그대로 남아, 나의 맘 속에 번뇌를 새긴다. 이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내가 그동안 그렇게나 버려온 삶이, 사실 다람쥐 쳇바퀴였다는 사실이 허탈하다.


하지만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것이 낫고, 아는 것보다는 행동하는 것이 낫다. 그래도 꾸준히 버려 옷을 정리하고, 꾸준히 치워 공간을 만든다. 꾸준히 먹고 마셔서 소모품을 쓴다. 차도 요즘들어 매일같이 마시고 있다. 가끔은 의무감으로, 가끔은 행복감으로, 가끔은 만족감으로. 항상 쓸 찻잔 하나를 제외하면 손님용 잔도 두지 않기로 했다. 손님이 내 집에 올 일도 없는데, 괜히 헛물을 켜 놓아둔 찻잔 두 조가 일 년도 넘게 먼지를 뒤집어썼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내 욕심으로 귀여운 아이들이 고생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다.


나는 아마도 평생 미니멀리즘을 '지향'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 안의 맥시멀리스트가 나를 잡아먹어 버릴 것이다. 최근에 갖고 싶어서 지르고야 만, 세 개나 되는 북커버가 내게 외치고 있는 것 같다. '너는 생각해, 좀 더 생각해!' 그렇다. 사기 전에 좀 더 생각해야 한다. 산 이후에도 고민해야 한다. 그리하여 나의 삶은 번민한다.

 

그러나 내가 고통만 받았을까? 항상 고통받는 삶이었다면 내가 미니멀리즘을 지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깨끗하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은 내게 평안과 행복을 준다. 내적인 안정감과 치울 필요가 없다는 개운함을 준다. 텅 빈 공간이 생기면 속이 시원해진다. 그 감각을 되찾으려, 나는 늘 고군분투한다. 매일 나의 욕심과 싸운다. 어찌 보면 나는 전투적인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본가에 내 정리수납장을 보냈다. 본가 부엌이 수납 공간이 부족한데다 빈틈에 물건을 쌓아두고 있어  너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수납함이 딱일 것 같아 가져갔었다. 정말 완벽하게 사이즈가 딱 맞아떨어져서, 부엌 구석이 정리가 되어 기뻤다. 대신 그 수납함에 있었던 물건들이 내 방에서 굴러다녔다. 나는 몇 가지는 본가로 보냈고, 몇 가지는 책상 위에 정리했고, 몇 가지는 다른 자리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또 물건을 버릴 것을 찾아냈다. 놓아둘 곳이 없으면 버리게 된다. 이건 정말이지 진리와 같다. 나는 그렇게 꽤 많은 물건들을 버릴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렇다.


매일 이 물건을 버릴지 고민하지만, 그것조차도 꽤 즐거워진다. 집을 정리하는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니까. 이 과정 하나하나가 쌓여 내가 되고, 내 집이 되고, 내 삶이 될 것이다. 그러니 갈등을 고통으로 보지 말자. 이건 그냥, 소소한 삶의 과정일 뿐이니까.


나는 이렇게 사는 사람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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