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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arlet May 28. 2024

[일상 이야기] 늘, 단아하고 아름답기를

매일 그런 삶을 꿈꾸지만 아마도 결코 이룰 수 없을

나는 언제나 단아한 인간을 꿈꾼다. 차분하고, 얌전하며, 단아한 인상을 사랑한다. 조용하고 얌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말없이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물론 이상이라는 것이 그러하듯이, 나는 그것과 전혀 반대되는 성격의 사람이다. E의 끝판왕답게, 단 한 순간도 조용하지 못하고 한 시라도 몸을 가만히 두질 못한다. 단아함이란 나와는 얼마나 먼 이야기인지!


하지만 사랑은 가질 수 없을 때 더 아름답다고 했던가, 나는 그 단아함을 진심으로 동경했다. 차분하고 얌전하고 조용한 삶. 그건 내가 지금 이루는 삶과는 전혀 다르고, 내 성격과도 정반대의 것이었으므로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삶을 꿈꾸기로 했다. 그리고 이뤄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의 취미 생활은 시작되었다.


처음엔 우아하게 차로. 나는 중국 드라마에 한동안 빠져 살았던 적이 있다. 그 당시엔 중국 비빈들의 품계와 머리 장식에 대한 명칭도 다 외울 정도로 열정적이었는데, 그 때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우아하게 호갑투를 보이며 살짝 기울여 마시는 찻잔이었다. 저거 뭐야? 어쩜 저렇게 예쁘게 차를 마시지? 나는 그 찻잔이 완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리고, 개완을 알게 된 순간부터 생각했다. 나 꼭 저거 해 볼 거야!


어쩌다보니 집 근처에 찻집이 있었다. 나는 대뜸 달려가서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혹시 여기서 개완도 체험해볼 수 있나요? 그 인연으로 나는 티 클래스를 수강하게 되었다. 차의 가장 기초인 마시는 법부터. 다양한 홍차의 맛과 향을 배워가며 나는 홍차에 점점 빠져들었다. 홍차 뿐 아니라 녹차, 온갖 이름의 차들을 마시며 즐거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밀크티라는 게 조금 재미있는 부분이었지만, 뭐 어떠랴! 차를 내릴 때의 내 손은 좀 예뻤던 것도 같다.


하지만 개완의 뚜껑을 항상 퐁당퐁당 떨어뜨리는 나, 우림도구를 미리 데워놓는 것을 까먹는 나, 찻잔을 데우려 부어놓은 물을 까먹고 찻물을 붓는 나는 멋지지 않았다. 우아하지 않았다. 역시, 차로는 좀 어려웠을까? 하고 고민할 때쯤 차 선생님이 제안해 왔다. 혹시 자수를 배울 생각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자수라니! 바늘이라곤 오 년 전에 양말 한 번 꿰매보겠다고 잡아본 것이 전부인 내게 자수라니! 자수는 로망의 끝판왕이었고 결코 내가 없을 것 같았던 일 1~2위를 다투는 취미활동이었다. 이유는 별 것 없다. 나는 차분하지 못했으니까, 덜렁거렸으니까, 답답한 것을 싫어하니까. 그래서 처음엔 그 제안을 의심스럽게 받아들였다. 요컨대 그런 것이다. '선생님이 내 결과물을 보고 먼저 실망해서 포기할 것이다.' 이런 생각.


하지만 내 생각보다도 내 손에서 만들어진 자수는 괜찮았다. 내가 만든 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물론 가까이서 보면 이런저런 단점들이 보이겠지만, 멀리서 봤을 땐 그렇게나 그럴듯할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예뻤다. 내 손 끝에서 나온 자수라는 게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좀 더 단아하고 우아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같았다. 그래, 내 성격은 어딜 가지 않는다. 차분하게 차를 마시며 조용히 자수를 하는 그림 따위는 내게 없었다. 친구와 통화를 하며, 마실 차를 옆에 대충 치워 놓고 자수를 하는 내 모습은 우아와는 거리가 너무 멀어도 많이 멀었다. 조용함? 차분함? 그런 건 없다. 실엉킴과 친구와의 실없는 대화가 있었을 뿐. 어느 누가 자수의 과정을 그렇게 시끄럽게 채울까. 그게 나였다.


문득 깨닫는다. 그래, 그게 나였다. 시끄럽게 떠들기를 좋아하고, 덜렁거리고, 잘 잊어버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하는 사람. 차를 배우는 것도, 자수를 하는 것도 전부 내 스타일에 맞춰야 하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사람. 나는 자가 즐겁고, 차 마시는 것이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내 세계가 넓어진 것에, 나의 "우아함"을 향한 끝없는 열망에 감사한다.


세상이 늘 단아하고 아름답기를

내가 그 세계를 동경하여 끝없이 손을 뻗고

그리하여 나의 삶이 언제나 충만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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