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소중한 것을 잘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 나 자신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나 자신은 나를 남보다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내가 무리하고 있다거나, 뭔가에 열중하고 있다거나 하는 것을, 나는 "그냥 그랬지." 하고 한 마디로 퉁쳐버릴 수 있단 이야기다. 그렇게 나 자신에 대한 오해가 쌓여 간다. 나 자신의 '스스로'에 대한 평가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 사이에 거리가 생기는 건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간극이 나쁜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반대라거나, 너무 차이가 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보통은 무난무난하게 타인의 시점과 내 시점이 조율되는 편이다. 하지만 이 밸런스가 깨지는 순간, 우리는 여러 가지 마음의 짐을 얻게 된다.
일반적으로, 타인이 생각하는 내가 좋은 사람인데, 내가 그렇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가 그렇다. 그럴 때에 나는 점점 우울해진다. 남 앞에서는 밝게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내 가치가 없다는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그렇게 자학의 길로 접어든다. 이런 차이는 우울증을 불러올 수 있으니, 얼른 균형을 맞춰야 한다. 해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나, 좋은 사람이잖아! 하고 인정하면 된다. 그렇지만 사람은 자신의 결점을 보통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좋은 사람이라는 인정을 하기 어려워한다. 나 또한 그랬다. 이건 억지를 쓰는 수밖에 없다. 그냥, 나는 좋은 사람이야, 라고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다독여주는 수밖에는.
타인이 생각하는 내가 나쁜 사람이고, 내가 생각하는 내가 좋은 사람일 때에도 이런 문제가 생긴다. 여기서 확인해야 할 건, 내가 한 행동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가정교육을 잘 받은 타입이 아니었다. 그래서 타인의 불쾌감을 사는 행동을 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 때의 나는 남들의 오해에 불쾌해했고, 그런 평판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건 내가 고쳐야 할 부분이었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야 알게 된 부분이긴 하지만.... 이 부분은 꽤나 반성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한 행동이 분명히 중립적이었다면, 그 뒤로는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미움받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무리해서 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애쓴 적도 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제법 늦게 알게 되었다. 어차피, 그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그 상황을 내버려 둔들, 큰 문제가 생기겠는가? 나쁜 일이 생긴 게 아니라면 그냥 내버려두기로 마음먹으니, 생각보다 마음의 짐은 금방 없어졌다. 예수도 부처도 세상에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데, 하찮은 나 같은 사람에게도 그럴 것이다.
이런저런 마음의 고민을 하다 보면, 금방 잃어버리는 것이 있다. 바로 나 자신에 대한 부분이다. 이런저런 자잘한 생각들에 치여, 정작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 하는지를 빠르게 잃어버린다. 이상한 일이다. 항상 나를 생각하는데, 나를 그렇게나 빨리 잃어버리게 된다니.
우리는, 생각보다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편파적으로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쁜 생각들에 시달리다가, 결국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부분을 가장 먼저 잃어버리는 것이다. 나쁜 기억은 수없이 떠오르지만, 좋은 기억은 더듬고 더듬어야 겨우 날 듯 말 듯 하니까. 그런 나 자신을 좀 더 사랑해주기 위해, 우리는 소중한 기억, 좋아하는 것들을 소중히 다듬어줄 필요가 있다.
그래, 그래서 나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시작은 일기로부터. 매일매일의 기록이 내게 주는 자극을 믿기로 했다. 하지만 매일매일에 파묻혀, 잃어버리는 소중함을 또한 잊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나는 다방면으로 기록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싶은 것, 바라는 것, 가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수많은 욕망과 수많은 바람과 기쁨을 적어놓고 있다. 예전엔 신경쓰지 않았던 나 자신을 기록한다. 매일을 기록하여 나의 감정을 확인하고, 문득 떠오르는 소망과 기쁨을 적어서 붙들어놓는다. 적어서 붙들어두지 않는다면 이것들은 어느새 스르륵 사라져서, 보이지 않게 되어버리니까.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기억 속으로 사라지니까.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도 거기였다. 기억을 저장하는 구슬들과, 잊어버린 기억이 버려졌던 계곡. 나는 내 소중한 것들을 얼마나 많이 계곡으로 던져 버렸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너무 아까웠다. 그런 행복을 조금이라도 더 붙들어 둘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꼭 적어두어야 한다. 내 눈에 보이게 적어 두고, 내 마음 속에 들어갈 수 있게 저장해 두어야 한다. 그리하여 내 마음에 반짝반짝 빛나는 기억들이 가득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