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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arlet Jul 02. 2024

[일상 이야기] 아는 만큼, 아름다움

내가 모르고 지나쳤던 아름다움은 또 얼마나 많을까

예전에 '화양연화'를 본 적이 있다. 그 때의 나는 그 영화에 딱히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장만옥은 아름다웠고 영화 장면은 모두 말린 장미꽃잎처럼 어쩐지 멀고 아련한 느낌이었던 감상만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를 본 것을 후회한 적은 없다. 내가 본 그 영화가 나중에 내 눈을 뜨이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지나치다 들어간 카페가 있다. 그냥, 그 카페가 거기 있었고, 나는 처음 본 그 카페가 마음에 들어서 들어갔다. 밀크티 한 잔을 시키고 보니 안쪽에 귀여운 공간이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깨달았다. 아, 이거, 화양연화 테마구나. 나와서 물어보니, 화양연화를 너무 좋아해서 그 컨셉으로 꾸몄다고 했다. 장만옥이 입었던 옷도 있고, 사진도 있었다. 그 고풍스럽고 우아한 느낌이 너무 좋았다. 내가 만약 그 영화를 보지 못했다면 알지 못했을 것들이, 가득 머릿속을 채웠다.


이 순간은 이따금 찾아온다. 이런 저런 패러디들을 보았을 경우다. 그 유명한 '대부'를 나는 서른이 넘어서 보았다. 잔인한 것이 무섭다는 핑계였지만, 사실 그냥 관심이 없어서였다. 대부를 본 것도 약간은 충동적이었다. "이렇게 유명한 영화인데, 안 보는 것도 아깝잖아!"


대부는 정말 잘 만든 영화였다. 몇 번이고 충격을 받았고, 그 상황에 강하게 이입했다. 나는 대부1을 정말 좋아하는데, 말론 브란도가 가장 이상적인 '대부'의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알파치노의 대부 연기도 아주 멋있었지만, 2에서 그들의 세계가 몰락하는 과정은 아주... 안타까웠다. 나는 이미 폭력과 관계가 지배하는 마피아 세계에 깊이 감동해버린 것이다. (영화가 너무 잘 만들어진 탓이라고 우겨 본다.)


대부를 보고 나서야, 대부의 오마쥬들이 보였다. 악당들이 어째서 제 무릎 위에 고양이를 올려놓는지 알았고, "거절할 수 없는 제안" 이 무엇인지를 알았으며, "친구는 가까이, 그러나 적은 더욱 가까이" 라는 명대사의 원전을 들었다. 내가 웹툰에서 보았던 몇몇 장면들이 대부의 몇 장면을 패러디했다는 것을 알았다. 눈이 뜨였다. 내가 단 하나를 알게 되자, 그와 연관한 수십 개의 다른 것들이 보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얼마만큼' 보이는지 깨닫는 건 정말이지 느리고 느린 과정이다. 내가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채는 건 '보았다'는걸 깨닫는 것보다 더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길에서 지나쳤던 들풀들이 누군가에겐 소중하고 아름다운 미나리아재비이고, 아무렇지 않게 바라본 장식장의 접시가 누군가에겐 웨지우드의 아름다운 소서가 된다. 그걸 깨닫는 건, 내가 그걸 알게 된 이후다. 정말이지, 너무 늦어!


세상이 넓어지는 건 어떤 뜻일까. 예전에 찻잔에 관심이 가서, 조금 공부했던 적이 있다. 다 잊어버렸지만, 로열 알버트나 마이센, 로열 코펜하겐 정도는 기억하고 있어서 요즘은 그릇을 받을 때마다 뒤집는 버릇이 생겼다. 접시 브랜드도 어찌나 다양한지, 뒤집어 보면서도 신기했다. 다들 이 브랜드를 알고 쓰는 걸까, 그냥 모양이 예뻐서 산 걸까 궁금하기도 했다.  알지 못하는 브랜드라도 상관없었다. 고 잊어버리더라도, 추억이라거나 지식이라거나 혹은 낯익음으로 남는 한 조각 정도는 있을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요즘들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제법 무겁다고 생각한다. 내게 있어 아름다움은 앎이다. 엉망으로 그린 것 같은 칸딘스키의 그림이, 어떠한 배경에서 어떠한 흐름에서 나왔는지를 알게 되는 순간 예술이 된다. 베토벤은 어째서 악성이라 불리는지, 모차르트가 왜 '천재'라는 수식어를 붙이는지도 '알아야' '들린다'


요즘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며 천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우리가 디딘 이 세계가 얼마나 위대하고 광활한지, 우리는 어떻게 코스모스의 일부인지를 조금씩 알아간다. 그렇게 우주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될 것이다. 나는 그 깨달음의 순간이 참 신성하다고 생각한다. 아, 이건 그래서 아름다운 거구나. 나는 아름다움과 앎의 관계를 사랑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면 성장하는 그 순간부터 이 세계를 '알아'가기 문이다. 그리고 그 삶에서 우리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자아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을 사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가장 잘 알아볼 수 있고, 가장 가까운 것이 나 자신이기 때문에. 나를 가장 잘 알기 때문에 혐오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 자신이 자아내는 세계의 다음 부분은, 나 자신 말고는 알 수 없다. 무지한 내 미래를 앎으로 밝혀 나갈 수 있는 건 나 뿐이다. 그러니 나 자신을 좀 더 사랑해도 좋을 듯하다.


과거 지식을 사랑하던 모든 사람들처럼, 나는 지식이 어째서 아름다운지를 깨닫고 있다. 우리는 우리들은, 우리가 알든 모르든 어떤 세계-미래-로 천천히 다가가고 있다. '그 세계'로 갈 수밖에 없다면, 모르는 것보단 알고 가는 편이 훨씬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는 끊임없이 배워야만 한다고. 지식이라는 등불을 들고, 이 세계를 조금씩 밝혀 나가야 한다고.


밝은 곳에서 본 이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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