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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arlet Nov 19. 2024

스마트폰 중독의 중독 탈출 분투기 3

돌고 돌아 돌아온 곳이 여기라니

귀여운 블랙베리에게 버림받은 내가 다음으로 선택한 건 블랙베리의 조그만 화면과 낮은 사양을 닮은 스마트 폴더폰이었다. 그렇다, 어르신 폰이라고도 부르는 그것이다. 나는 갤럭시 폴더 2를 샀는데, 지인들에게 말하면 다들 폴드나 플립을 상상하곤 한다. 그러면 나는 그 오해를 일소시키려고 휴대폰을 꺼내들곤 했다. 이 휴대폰은 중독 방지에 가장 효과적이었다. 스마트폰 중독인 사람들의 필수품으로 지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스마트 폴더폰은 일단 기기 자체의 성능이 낮다. 그래서 설치할 수 있는 앱이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하지만 기본 os는 안드로이드이므로, 사진을 찍거나 이런저런 파일을 pc와 연결해서 활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 물론 충전 단자가 5핀이라는 굉장한 단점이 있지만, 그거 빼고는 다 좋았다고 생각한다. 블랙베리에 비해 활용도가 높았으나 블랙베리만큼 작은 화면에서 이런저런 복잡한 활동을 하기는 쉽지 않아서, 내 생활 리듬의 정상화에 큰 도움을 주었다.


덧붙여 서브폰에 휴대폰 잠금 앱을 깔았다. 이번에는 잠금 앱을 풀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는데, 스마트 폴더폰으로도 다른 활동들을 다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굳이 서브폰에 목 맬 필요가 없다. 이 때의 내가 한 가장 멋진 선택은, 잘 때 휴대폰을 전부 거실에 충전시키고 내 방에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나는 열 시쯤 되면 자러 가는데, 그 때 거실의 충전기에 휴대폰을 각각 끈 뒤 연결해 놓는다. 한밤중 알람이 울릴까 걱정할 필요도 없고, 밤늦게까지 휴대폰을 하느라 못 잘 걱정도 없다. 이 이후로 의 수면 부족 문제가 해결되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정말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여기에서도 문제가 하나 생겼다. 점점 발전하는 사회는 다양한 문제 처리를 카카오톡에서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보험 가입이라던가, 재동의 등을 카카오톡에서 할 수 있다. 하지만 내 느려터진 휴대폰은 그걸 전혀 지원하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굉장히 어이없이 발생했다. 스마트 폴더폰은 당근마켓 앱을 지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서브 폰에 당근마켓 앱을 깔고 활용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돈까지 다 받은 뒤 물건을 갖다줘야 하는 순간에 나는 그만 서브폰을 잃어버렸다. 주소를 당근마켓 채팅에만 남겨둔 나는 정신을 잃을 뻔 했다. 나의 스마트폰 활용 스타일이 타의적으로 다시 바뀌게 된 순간이었다.

 

그 날, 나는 다시 폰을 바꾸었다. 오빠가 서드 폰으로 쓰려고 두었던, 갤럭시 S10E였다. 다급히 스마트폰을 바꾸면서, 나는 하나의 스마트폰으로 모든 것을 다 할 각오를 했다. 다만, SNS나 게임은 의도적으로 깔지 않았다. 이렇게 나는 SNS를 줄이고, 게임 할 시간을 확보해 운동하는 데 쓸 수 있었다. 후 게임용 폰을 다시 찾았지만, 운동 시간을 게임이 침범하는 일은 없었다. 이미 루틴이 잡힌 덕이다.


 지금은 투 폰 체제이다.  내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서브 폰을 다시 찾았기 때문이다. (뭔가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면, 자동차를 잘 뒤져봐야 한다.) 현재 나는 하나의 스마트폰으로 모든 활동을 하고 있다. 서브폰은 집에서 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할 때에 쓴다. 찌보면 남들이 영상용으로 쓰는 태블릿의 모바일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그럼 결국 원래대로 돌아간 것이 아닐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렇게 내 중독 탈출기는 실패로 막을 내리는구나 하고. 그런데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처럼 스마트폰 중독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의 내 노력이 영향을 미친 것일까? 내 생각에  폰의 화면 옵션을 '흑백'으로 해 둔 것이 영향을 미친 듯하다. 흑백 화면은 여러 불편점도 있지만, 스마트폰 자체를 재미없게 만어 준다는 점에서 최고이다.  무리 맛있는 음식도 흑백 사진으로 보면 그냥 느낌 있는 사진일 뿐이고, 아무리 재밌고 화려한 볼거리가 가득한 웹툰도 그냥... 그저 그랬다.  중독 증상은 그렇게 점차 시들해졌다.


고아라폰, 블랙베리와 갤럭시 폴더2를 거치며 SNS와 멀어진 것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과거에 내가 수없이 했던 트위터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이제 거의 하지 않는다. 나를 자극하는 수많은 것들이 사라진 인터넷은, 내가 원하는 정보만을 제공하는 단조로운 공간이 되었다. 나는 중독을 탈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사실 이 노력은 아직 지속 중이다. 다만 이 노력의 끝에 나는 숙면을 위한 루틴과 스마트폰을 하루종일 바라보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를 얻었다.


알고 있다. 나의 수많은 투쟁이 그렇게 덧없는 몇 개의 결과물로 정리되기에는 아깝지 않은가 하고. 하지만 나는 이 변화 자체가 감격스럽다. 이전이었으면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었을 시간에, 다른 활동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쁘다. 알고 있다. 나의 계획은 엉망진창이었고, 실행은 어중이떠중이였으며, 결과는 애매모호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변화했다고 느낀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것이라고 나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줄까 한다. 물론, 앞으로 스마트 기기를 더 늘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덧붙이고자 한다. 나 자신이 스마트폰 중독(예정)자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쓰다 보니 어쩐지, 스마트폰 중독 탈출이라기보다 옛날 폰을 그리워했을 뿐인 어떤 사람의 구매기록 같다는 느낌이 들어 덧붙인다. 그런 사심도 없었다는 말은 못 하겠다. 하지만 다시 저 폰들을 쓰라고 하면 쓸 자신은 없다. 이 분투는, 사회가 변화하고, 편리해지고, 그 편안함을 이미 내가 산소처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과정이기도 하다.  이미 누리고 있는 수많은 권리들을 내어놓기에는 내가 그렇게 강하지 않다는 것도 배웠다.


그래도 지금의 변화에 만족하고 있다.

나는 나의 분투가 매우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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