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나는 새벽을 항상 잠으로 보내곤 했기에.올해 초에는 대단한 각오로 새벽 공부를 한 적이 있다. 열정과 각오가 가득했던 올해 초, 새벽마다 일어나 일본어나 그림 공부를 하는 것은 내게 대단한 깨달음을 주었다. 지금은 다시 게으름이 나를 점령했기에, 할 수 없는 무언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이라는 시간은 내게 환상적인 공간으로 남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내가 오로지 잠으로 누리는 시간.
최근에 운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운동 결심은 항상 하고 있지만, 실천이 어려웠다.퇴근 후엔 항상 지쳐 있었고, 새벽엔 일어나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더라도, 달리기를 하려고 준비하는 그 모든 과정이 너무 귀찮았다. 그 과정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멍하니 새벽에 누워 있었던 적이 많았다. 그 무의미하게 보내는 시간이 너무 견딜 수 없었던 어느날, 나는 결심했다. 달리기를 각오하지 않기로. 무리하지 않기로.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내가 해야 할 것은 단 하나가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그냥 걷자. 그냥 그거만 하자.
달리기 때문에 따뜻하고 가벼운 옷을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새벽에 눈을 뜨고, 최대한 옷을 두껍게 입는다. 장갑을 끼고, 밤새 충전된 이어폰을 낀다. 낯익은 음악과 함께 밖으로 나선다. 찬바람도 두터운 패딩의 벽을 넘지는 못한다. 그렇게 걷는다. 아는 길을 걷는다. 익숙한 길도 새벽녘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걷기는 어렵지 않고, 힘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새벽에 걷기를 일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감각에 사로잡힌다.
새벽 일찍 불을 켜는 곳은 두 곳이다. 하나는 떡집이고, 하나는 빵집이다. 먹을 것을 책임진다는 점에서 두 집은 비슷하다. 떡집이나 빵집이나 좋은 일이 있으면 가는 곳이기에, 좋은 일만 있길 바라는 마음을 불빛에 담아 본다. 춥고 쌀쌀한 새벽 거리는 그런 불빛들로 조금씩 따뜻해지는 느낌이 든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밤중, 문이 잠긴 가게에서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냉장고 불빛들 같은 것조차 온기처럼 다가온다.
새벽의 사람들은 바삐 걷는다. 그들은 그 밤중의 거리에서 마주쳐도 위협적이지 않다. 삶의 어느 부분이 이 길가와 맞닿아 있기에, 그리 바삐 가느냐고 갑작스레 그런 질문이 떠오른다. 하지만 질문을 채 끝맺기도 전에 사람은 사라지고, 나만 이 길가에 또 덩그러니 남는다. 하지만 한밤중이 아닌 새벽의 그 고즈넉함은 전혀 아리지 않다.
한 번도 걷지 않았을 무렵, 새벽 걷기는 춥고, 쓸쓸한 느낌마저 들었다. 홀로 집을 나와 걷고 있으면, 정처없이 홀로 걷는다는 느낌이 어쩐지 막막할 것도 같았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새벽 걷기는 정신이 또렷해지는 시간이다. 세상을 다정하게 볼 시선을 주는 시간이다. 불 켠 집의 온기를 상상하고, 문 닫힌 집의 번잡한 시간을 상상하며 걷는다. 걷는 속도도 적당히, 상상을 불어넣을 만큼 느릿해진다. 그래도 괜찮은 시간이다.
새벽의 삶은 우리의 하루를 깨우는 모습이다. 청소차가 쓰레기를 치우고, 식당이 밑손질을 하고, 가게가 장사를 준비하며 얼른 아침이 오라고 손짓한다. 나는 그 거리의 모습을 관망하는 사람처럼 덩그러니 남아 있지만, 사실 나야말로 아침이 오기를 누구보다 기다리는 사람이 아닌가 한다. 아침이 오면, 나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일상이어야 하지만 비일상적인 감각의 그 순간이 좋다. 현실에 발 붙이고 서 있으면서도 살짝 발이 떨어진 그 시간.
새벽을 걷는다. 발자국 소리는 울리지만 나즈막하다. 가고 싶지 않은 몸을 깨운다. 새벽을 걸으며 마음이 많이 바뀌었다. 그전과 달리 좀 더 활기차고, 좀 더 희망을 노래하게 된다. 새벽의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아서일 것이다. 아침의 기운은 밝고 경쾌하다. 갓 잠에서 일어난 이만이 갖는 생동감이 있다. 나는 그 생동감에 젖어, 오늘 하루도 건강히 지내리라 결심하며 집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