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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arlet Jan 23. 2024

[일상 이야기] 미니멀라이프, 시작합시다

미니멀라이프를 하고싶은 머리와 거부하는 몸의 이야기

미니멀라이프, 십 년 전쯤 시점부터 인기가 있었던 테마다. 최근에는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2016년도 끝물에 처음 접했었다. 그 때는 타지에서 자취중이었는데,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중이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과 우울이 나를 강타해서 죽고 싶었을 때, 처음 미니멀라이프 관련 책을 접했다.


처음 본 건, 아마 책읽기를 싫어하는 내 특성상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 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만화책이니 가볍게 읽어 넘길 수도 있고, 생각보다 미니멀 라이프에 본격적인 주인공이 나와서 감정 이입도 잘 된다. 버리기 마녀라는 본인이, 어떻게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버리고 깔끔한 집을 유지하게 되었는지를 만화로 쉽게 알려 준다. 나는 지금도 미니멀라이프 관련 마음이 허물어지만 이 책을 다시 보곤 한다. 다시 보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사진으로 본 텅 빈 공간이 진짜 본인의 집이라는 사실이 나를 꽤나 흥분시켰다, 그 때, 나는 우울한 상태였고,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책에서 작가도 우울함을 '버리기'로 날려 버리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나도 버리기를 시작했다. 맨 처음에는 책부터였다. 나는 여기저기서 받거나 산 책들이 굉장히 많이 있었고, 아깝다는 이유로 소중히 모셔 두고 있었다. 이사 가면서 힘들어 죽을 것을 아는데도! 하지만 그 때는 책들이 너무 소중했다. 내 삶을 지탱해주는 물건들일 줄 알았다.

 

하지만 가장 만만하고 버리기 쉬웠던 것도 책이다. 너무 많았으니까.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위주로 버렸다. 종이는 버리기도 쉬웠다. 묶어서 밖에 내면 되니까. 어느 순간, '아 이건 너무 아까운데' 싶은 책들도 버렸다. 세 칸의 서가 가득 차 있던 책들 중, 최종적으로 남은 책들은 A4박스 반 정도에 담길 만큼 적은 양이었다. 그 작은 책들을 위해, 저 넓은 서가를 샀나 싶을 정도로 허무했다.


두 번째로 버린 것은 병뚜껑을 모은 것이었다. 나는 맥주를 좋아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모은다는 것에 꽤나 로망을 품고 있던 터였다. 우표를 모으는 것도 너무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너무 부피가 큰 것은 부담스러웠다. 그 때의 나는 원룸에 살고 있었고, 공간은 좁았다. (물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때 문득 떠오른 것이, 내가 거의 매일 사먹던 맥주였다. 그 때부터 큰 마트에 가면 병맥주를 고르기 시작했다. 해외 맥주 몇 종류는 병맥주로 나와 있었다. 병은 예뻤지만 무거웠으므로 다 버렸고, 뚜껑만 예쁘게 모아 두었다. 언제 먹었는지 네임펜으로 적어도 두었는데, 정작 버리자고 마음먹으니 이 아이들은 다 쓰레기가 되었다. 이걸 버리자, 아깝다는 마음보다 속시원하다는 마음이 먼저 떠오르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서야 나 자신의 취향을 깨달았다.


어, 나 버리는 거 좋아하네.


그 뒤부터는 일사천리였다. 나는 원없이 버렸다. 어느 정도냐면, 야근하고 집에 돌아와 그 스트레스를 조립식 책상을 분해하는 것으로 풀었을 정도이다. 책상과 세트이던 책장을 전부 비운 뒤였다. 책상은 정말 버리기 어려웠다. 그 때 당근마켓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무튼, 그 때 버린 것들은 거의 대부분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버려 마땅한 물건들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에는 이사를 했다.


그 이후에는 그렇게까지 물건을 많이 갖고 있진 않았던 듯하다. 그러다 집을 옮기고 3년간 머물렀던 어느 지역에서, 나는 그만 미니멀 라이프의 본질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온갖 것들을 사들이고 온갖 시도를 했다. 스탠딩 책상 두 개, 서랍장, 컴퓨터, 그 외의 셀 수 없이 많은 무언가들. 이사하던 날 정말 지옥을 맛보았다. 내 짐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으니 당연하다. 내가 봤던 것보다 숨겨진 물건들은 더 많고, 더 무거웠다. 몇 번을 옮겨도 짐이 줄어든 티조차 나지 않았다. 그 때의 나는 깨달았다. 아, 이게 내 욕심의 대가구나.


자주 이사를 다녀야 하는 내가 짐을 많이 가진다는 것은, 양립할 수 없는 부분이었던 셈이다. 나는 태생이 맥시멀라이프였다. 많이 갖고, 많은 것을 체험하고 싶어 했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나는 깨닫는다. 나는 이미 많은 것을 배우거나 배울 것을 포기했으며, 소유하지 않고서도 배울 수 있고 사지 않고서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하나의 물건을 단 한 목적으로 쓰지 않는 법을 배웠다. 애초에 그렇게까지 많은 물건이 필요한 이유 자체가, 나의 욕심에 가까웠다. 내가 필요하지도 않은데, "갖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가지고 있는 물건은 얼마나 많은 것일까?


지금은 조금씩 그 욕심을 버리고 있다. 본가에 있던 물건들도 꾸준히 버리고 있고, 내 개인적인 물건들도 지속적으로 처분하고 있다. 더 이상 무언가를 모으지 않기로 했다. 모은다면 디지털로, 정리는 열심히. 버릴 수 없는 것은 열심히 써서 닳아 없애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도 내 생각보다 많은 물건이 남아 있어서, 나는 내 소유의 종말이 언제쯤 올지 생각한다.


늘 생각한다. 유루리 마이(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 저자) 의 그 텅 빈 집. 나는 아마 그 집을 갖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마 그 정도로 완벽한 미니멀라이프는 불가능할 것이다. 제습기, 가습기, 선풍기, 철마다 사용하는 이불들.... 내가 소유한 그 물건들이 들어가는 순간 그 아름다운 공간은 사라지겠지.


욕심과 현실의 괴리를 최대한 줄여서, 내 공간이 내 이상에 다닿으려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 지금으로썬 확신할 수가 없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꾸준히 내 물건이 줄어드는 것이다. 옷도, 짐도, 물건들도, 꾸준히 사용해 닳아 없애고 더 사지 않으면 줄어들게 될 것이다. 팔고 나누고 사지 않으면 더 빠르게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졸이고 졸인 내 삶의 엑기스를 끌어안고 나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병뚜껑을 버린 뒤 후련했던 기억을 다시 되새겨 본다. 그 날의 설렘, 그 날의 희열이 언젠가 완성될 내 공간에 함께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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