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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부 이방인

by 챈들러

*
추자도의 밤바다는 아득했다.

낚시배들은 불빛을 켠 채 줄맞춰 대기하고
끝을 헤아릴 수 없는 검은 바다는 잔거품을 뱉으며
소용돌이치고 있다.

난 부두에 서 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아내가 추자도에 있다는 것 외엔 아는것이 아무것이 없다.

택시 한 대가 나를 따라온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다.

심야의 택시 안은 난폭했고
우주에 떠 있는 양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몽환적인 기분 속에
지금 당장 행성에 불시착 하려는 듯 차체는 흔들리고 있었다.

“낚시가방도 없는데 무슨 일로 추자도에 왔을까?”

일일이 대답하기도 귀찮다.

“지회장 결혼식 하객인가? 이번에 들어온 새색시가 아주 참하던데 지인인가 보지라잉?”
“결혼식이요?”
“아닌겨?”
“신부 이름이 여정인 맞습니까?”
“글세. 서울 여자란거 말고는... 젊고 생김도 곱고 손끝도 야무지다고 소문이 자자했지라. 그집은 뭔 복을 타고 났나. 장가를 두 번씩이나 가고. 배 아파 죽을 지경이여.”
마침내 목적지가 결정됐다.

택시가 선 곳은
2층집 주택이었다.

인근에선 보기 쉽지않은 고급주택

야심한 시각에도
집 내부와 외부 사방엔 불이 켜져 있다.

마당에선 개 두 마리가 경계하며 보고 있다.

그리곤 서서히 짖으며 두려움을 뱉어낸다.

머리가 희끗한 남자가 나왔다.

“뉘셔?”

내가 아무 말 못하고 우물쭈물 있는데,
그 뒤로 40대 남성이 따라 나왔다.

둘 중 누구일까?

그리고 잠시 후 익숙한 몸채의 여성이 나왔다.

정인이다.

“제 손님이예요.”

그러자 두 남자는 경계를 풀고 들어갔다.

현관문이 닫히고
정인은 침착한 얼굴로 다가왔다.

무슨 말부터 할까.

불과 한 달 전 내 사람이 이젠 낯선 걸음으로 오고 있다.

“너무 늦었지. 미안해.”

정인의 손을 잡았다.

역시 차가웠다.

“저 길 끝에서 기다려요. 준비하고 나올게요.”

나는 끝도 없이 밤길을 걸었다.

검은 바위산으로 파도는 넘실댔고
나는 평평히 이어진 길을 걸었다.

이윽고
익숙한 그림자가 들어왔다.

방금 전 보다 부드러운 태도로.

“얼굴이 많이 상했어.”

아내의 부드러운 손바닥이 내 뺨을 어루만졌다.

이제 결정적인 말로 붙잡으면 되는 건가.

“내가 올 줄 알고 있었잖아.”

순간 정인의 눈가가 반짝였다.

우리에게 한 달은 어떤 의미였을까?

“십 년 동안 내가 헛산 게 아니네. 당신이 오지 않았다면 난 바닷물에 뛰어들었을지도
몰라.”
“가자.”

여정이의 팔을 잡았다.

그러나 두 팔은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날 억지로 끌고가도 난 다시 떠날거야.”
“정말 결혼 할 거야?”
“결혼?”
“방금 두 남자 중에 누구야?”

그러자 정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소를 지었다.

“집주인이야. 난 세입자고. 내일 결혼식이 있어. 난 일손이 필요하다고 해서 도와준 것 뿐이고.”
“그럼 내일 떠나도 되겠네.”
“그게... 당신은 내게 너무 많은 시간을 줬어.”
“무슨 말이야?”
“자유롭고 싶어.”

코끝이 맵다.

나는 드디어 준비해 온 구차한 말을 던진다.

“아이는?”

그러자 정인의 두 눈이 흔들렸다.

“건이가 기다리고 있어.”
“건이는 씩씩하게 잘 지낼거야. 통화도 자주 하니까.”
“통화?”
“전화기 주고갔어.”
명치가 아려왔다.

난 둘 사이 이방인이었나?

“나에게 한 번도 진실인적 있었니?”
“날 처음부터 물건 취급한건 당신이야.”

정인이의 목소리는 격양돼 있었다.

“당신 휴대폰에서 디데이 확인했어. 계약 만료일이었지. 당신은 일 년 전부터 이별을 준비를 하고 있었어. 그런 생각을 하니까 모든 미련들이 너무 구차해 지데. 그래서. 그래서 말야.”
“그렇지 않아. 난 너무 괴로웠어. 하루하루 날짜가 밀려갈 때 마다 괴로워서 술만 마셨어. 붙잡고 싶은 건 나였어. 돌아가자.”

정인의 뺨에선 눈물이 흘렀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블라우스는 왜 두고 간거야. 나보고 찾아오라고 두고 간 거 아녔어?”
“정말 몰라서 물어?”

아내는 참았던 감정을 폭발했다.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잖아!”

내 두다리는 지면에 달라붙은 듯 굳어졌다.

“‘유리’라는 여자에게 주려고 샀던 선물이잖아. 퇴짜맞고 나에게 넘긴 선물. 당신은 그 여자 때문에 방황했고, 난 당신이란 껍데기와 십년을 살았어.”

순간 둔기를 맞은 듯 머리가 울렸다.

“그래서 다시 돌려놓은 것뿐이야.”

정인이 악을 지르고 주저앉았다.
아무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주변으로 물이 차오른다.

그곳은 조간대였다.
(조간대:만조 때에는 바닷물에 잠기고, 간조 때에는 공기에 드러나는
부분)

“그래. 그랬구나.”

아내는 나를 등지고 뭍으로 걸어간다.

해가 떠오르는 방향으로.

어둠을 갈라내고 푸른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안 봐도 안다.

아내의 뺨은 젖어 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달려가 두 뺨을 닦아주고 싶지만,
바닷물은 이미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다.

너무 늦은 것이다.

나는 섬에 갇혔고,
정인은 백미터 거리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서 있다.

하나였던 땅이 완벽한 두 개의 섬이 된 것이다.

정인이 떠난 자리엔 햇살이 돋았다.

그러자 밤사이 가려져있던 모든 것이 드러났다.

내 부끄러운 낯 까지도.

**

여객선은 포말을 그리며 출항을 기다리고 있다.

낚시꾼들은 추자도에서의 꿈같은 일정을 마치고 배에 올랐다.

나는 갑판에 올라 추자도를 바라보았다.

한없이 아름다운 곳

하지만 닿을 수 없을 만큼 멀고 아득한 곳.

배가 출발하고 낚시꾼 한 명이 다가와 캔 커피를 내민다.

“고맙습니다.”
“저 여자가 주라고 하더이다.”
“네?”

나는 남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부두 안쪽.

정인이가 서 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던 그녀는
검은 점이 되어 결국 사라졌다.

여객선은 호기롭게 바다를 헤엄쳐 갔다.

***

비밀 번호를 누르기도 전에 현관문은 열려 있었다.

“누구세요?”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내가 들어가자 모든 소리가 멈춰 버린 것이다.

또 착각일까? 꿈일까?

무엇이 진실이건 상관없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지쳐있다.

문을 열고 쇼파에 벌렁 누워 잠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시계는 오후 6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루를 꼬박 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몸을 던진 곳은 소파인데
나는 침대에 누워 있다.

잠옷을 입고서.

아마 잠결에 안방에 들어갔을 지도 모른다.

일주일 넘게 쌓아놓은 빨래들이 건조대에 걸려있다.

거실 바닥은 윤이 났고
싱크대에서 흘러나온 오물도 사라졌다.

심장이 뛴다.

하지만 지금 아무도 없다.

다음날 ,
우렁각시가 누구인지
조퇴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예상대로 현관문은 열려있었다.

나는 문을 재끼고 들어왔다.

엄마였다.

“언제왔어?”
“방금 전.“
“비밀번호 어떻게 아셨어요?”
“건이가 알려줬지.”
“잘 해놓고 지내는 구나. 엉망인줄 알았는데.”
“건이는 내일 데려 갈게요.”
“건이?”

엄마의 동공이 커졌다.

“방금 나갔는데?”
“누구랑?”
“그 여자가 어멈인줄 알았는데. 알다시피 어멈 얼굴 본적이 없어서. 아니였니?”

나는 현관문을 뛰쳐나갔다.

놀이터, 관리실, 오락실, 슈퍼 어디에도 건이는 없었다.

설마 건이마저 데려간 걸까.

그럼 정말 나 혼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지친 몸으로 현관문에 섰을 때,
복도 쪽 방 불이 켜져 있었다.

밥 익는 냄새가 났다.

찰찰찰 압력솥이 끓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신발장으로 여자구두와 건이 운동화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소파엔 건이가 텔레비전을 보며 아이스크림을 퍼먹고 있다.

그리고
마른 몸에 잘 빗은 붉은 머리,
그녀가 싱크대에서 김치를 썰고 있다.

“진짜 온 거야?”
 
그녀는 익숙한 보조개 미소로 화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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