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성 장애인 아들이 성장했다.
아들이 성장했다. 첫 책인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이 나올 때만 해도 아들은 기저귀 차고 등교하는 지적장애 어린이였다. 길에서 주저앉으면 내가 번쩍 안아 들었고 걷기 싫다고 드러누우면 남편이 업고 다녔다.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아들은 키가 182cm에 이르는 중학생 청소년이 됐으며 자폐성 장애로 장애명도 변경됐다. 이대로 가면 185cm는 가뿐히 넘을 기세.
허허. 키 큰 남자 품에 쏘옥 안겨보는 게 평생의 소원이었는데 청춘에도 못 이뤘던 꿈을 흰머리가 무성하게 덮은 이 나이에 이뤘다. 그 대상이 아들이라는 게 아쉬울 뿐.
가끔 남편과 그런 말을 한다. 만약 아들이 비장애인이었으면 우리 아주 뿌듯했을 것 같다고. 저 녀석을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불렀을 것 같다고.
큰 덩치의 듬직한 아들이 “엄마, 무거운 거 들지 말고 이리 줘요. 허리도 안 좋으면서…”라며 마트에서 장 봐온 짐을 번쩍 들어 옮기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그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며 괜히 연약한 척하는 나. 비슷한 버전으로 ‘벌레 잡아주는 아들’ 편도 있다.
물론 이런 판타지를 얘기하면 아들만 둘 키우는 친구는 코웃음 친다. “중학생 아들이 마트에 따라간다고? 하이고~ 야야 말도 마라. 피씨방에서 친구들이랑 게임한다고 집에서 얼굴 보기도 힘들다. 오늘도 학원이나 안 빼먹었나 모르겠네. 아우, 속 터져”.
친구 속만 터질까. 내 속도 터진다. 현실의 아들은 큰 덩치가 무색하게 감자 한 봉지도 들지 않는다. 장 보고 난 뒤 짐이 많아 감자 한 봉지를 손에 들려주면 이 녀석은 어느새 빈손으로 계단을 올라오고 있다. 무겁다며 땅에 내려놓고 살랑살랑 맨몸으로 걸어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눔시끼!”라고 외치며 계단을 뛰어 내려가 바닥에 놓인, 아들이 버리고 온 감자를 집어 들고 다시 걸음을 옮긴다. 빈손으로 올라가는 게 얄미워 계란과자 한 봉지라도 들고 가라고 주면 그건 또 자기가 먹을 거라고 소중히 안고 간다.
어휴, 이토록 솔직한 녀석. 미운 짓을 해도 하나도 안 미운 녀석.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아들을 보면 복잡한 마음에 사로잡힌다. 뿌듯하고 대견한 마음도 있지만 한편에선 짠하기도 하다.
인지, 사회성 발달은 3세 어린아이(2021년 장애명 변경을 위한 심리평가보고서 사회성숙도 검사 결과, 아들의 사회 연령은 2.68세)에 머물러 있는데 몸만 앞서 성인이 되어버린 아들이 점점 세상 속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몰랐다. 아들이 성장한다는 건 단순히 아들의 키가 커진다는 게 아니라 아들이 사는 세계가 달라지는 일이라는 것을. 그 세계는 아들이 어린이일 때 속했던 사회보다 훨씬 냉정하다는 것을, 그 세계에서 고립되지 않기 위해선 학령기를 그냥 어물쩍 넘겨선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안다. 학교에서의 특수교육과 치료실에서의 기능 발달만이 아들에게 필요한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비장애인에겐 너무 당연해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았던 심리적인 부분, 관계적인 부분이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생존키트라는 것을.
하지만 아직도 이 부분에 대한 공감대 형성은 우리 사회에 전무하다시피 한 실정이라는 것을.
‘글쓰기’의 힘은 때론 꽤 큰 것 같지만 때론 너무나 미미해 기운이 쭈욱 빠지기도 한다.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채 에베레스트 앞에 선 느낌이랄까. 하지만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아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쓰기로 한다.
아들이 성장했다. 아들이 성장하면서 알았다. 덩치 큰 중증의 남성 자폐인 편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나라도 들어야겠다. 우리 아들 편.
말 못 하는 아들을 대신해 엄마인 내가 말하고 쓰고 외치기로 한다.
한 발을 내디뎌 본다. 슬리퍼 사이로 차가운 눈이 파고드는 느낌이다.
차가워. 추워. 그냥 도망갈까.
아니, 쫄지 말자. 나는 ‘아들의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