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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승연 Aug 22. 2023

[장애도] ① 가해자의 엄마

아들의 자해와 타해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앞으로 하게 될 길고 긴 이야기는, 공격 행동이 있는 자폐성 장애인 아들이 '가해자'에서 '인기남'으로 변화하게 된 '어떤 해'의 과정을 담게 될 것이다. 


학교 최고의 '괴물'에서 반 최고의 '인기남'이 되는 과정은 괴롭고 험난했으며 특수교사와 학부모가 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향해 협력과 소통을 이뤄냈기에 가능했다. 여기에 학교의 지지와 다른 학부모들의 협조까지 더해졌기에 기적과도 같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다.  


이듬해 코로나가 발생해 학교가 오랫동안 문을 닫으면서 아들은 다시 퇴행해 버리고 말았지만 그래도 '특별한 한 해'를 거쳤던 기억이 남아있는지 예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부드러운 남자'가 됐다. 예전에 비하면이다. 예전에 비하면. 지금의 아들 모습만 본 사람들은 웃을 수도 있겠다. 

"그게 부드러워진 거라고?" 그렇다. 그 정도로 예전엔 정말 힘들었다. 


혹 발달장애인 자식의 공격행동으로 힘들어하는 부모가 있다면, 

혹 자해와 타해를 일삼는 학생 때문에 힘들어하는 교사가 있다면,

아들 사례를 통해 어떤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내려간다.  GO!


초등학교 3학년이 끝날 무렵, 아들은 자해와 타해가 최고조에 이르러 있었다.     

특수학교로 전학 가면 아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줄 알고 2학년 때 전학했는데, 행복하긴커녕 아들은 학교에서 매일 울고불고 드러눕고 비명을 지르며 자해와 타해를 일삼았다.       


어느 날인가는 하교 때 아들을 데리러 갔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아 연락했더니 “어머니 교실로 오세요”라는 다급한 교사의 말이 들렸다.

학교 출입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이 열리자마자 강도 10으로 터져버린 아들의 울음소리가 온 복도에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동환아~”라고 부르며 다급히 교실에 들어가자 바닥에 누워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아들이 보였고 자해와 타해를 못하게 그런 아들을 힘껏 누르고 있는 교사와 실무사가 보였다.


집에 와서 보니 아들 옷에 교사 손톱 2개가 매달려 있다. 노란색 손톱 2개. 진짜 손톱이 아니라 네일아트 받았던 손톱이 떨어져 아들 옷에 달라붙어 있었던 것.

손톱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힘겨운 격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랬던 아들이었다. 그것이 아들의 일상이었다. 

당시 아들이 어땠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자.         


일단 툭하면 머리를 박았다. 그때 바꾼 TV만도 여러 대.  

“아 놔. 머리를 박으려면 좀 싼 거에다 박지 왜 맨날 TV래.” 불행 중 다행은 냉장고가 아니라는 것 정도일까. 물론 아들이 다치지 않았다는 것도 다행이었지만.

그렇게 TV와 거실 창문을 여러 번 깼어도 아들 머리는 말짱했다. 부모 지갑만 얇아질 뿐.        


그리고 팔을 뻗었다. 팔 끝에는 손톱이 있었다. 그 손톱이 아들이 가진 유일한 무기였다.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었다. 마치 이 세상 모두가 적인 것처럼 자신을 둘러싼 온 세상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팔다리를 휘둘렀고 책상을 마구 흔들었다.       


가해자의 엄마. 내가 바로 가해자의 엄마였다.      


겨울방학이 지나고 나면 11살이 될 것이었다. 드디어 틴에이저(teen-ager).

여태까지는 ‘그래도 어린애’라는 이유로 사람들의 관용을 기대해볼 수 있었는데 앞으론 어림도 없어. 

어떡하지? 어떡하면 좋을까.  

아직 구체적 방법도 찾지 못했는데 아들의 4학년 생활이 시작돼 버렸다.      


'괴물'로 낙인찍힌 아들


개학하고 열흘쯤 지났을까. 담임에게 연락이 왔다. 아들이 점심시간에 옆 반 홍길동(가명)을 때렸는데 길동이 엄마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이었다.        


“점심시간에 동환이가 나 때렸어”.      


이 한마디면 충분했다. 당시 학교에서 아들이 어떤 아이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아들한테 맞았다는 한 마디면 게임은 끝이었다.

앞뒤 상황도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 아들이 책상을 밀어버리는 바람에 책상이 넘어지면서 반 친구 발등을 찍어 친구가 골절상을 입은 뒤였다.

그런데 이번엔 교실도 아닌 식당에서 옆 반 친구까지 건드렸다니.  

정말 아들 데리고 콱 죽고만 싶은 마음이었다.


길동이 엄마는 학교 측의 대처를 문제 삼았다. 길동이가 집에 와서 맞았다는 얘길 직접 할 동안 학교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길동이 엄마는 학교가 단호히 나서야 한다고 했다.

학교가 아들의 문제행동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대응 방안을 마련해 전체 학부모에 공문으로 보내라고 했다. ‘문제행동’ 또는 ‘도전적 행동’이 있는 학생에 대해 학교가 어떻게 대처하고 관리하는지 지켜 보겠다는 것.       


“네. 선생님. 그렇게 하세요. 제 아들이 잘못한 것이니 저는 괜찮습니다. 길동이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해주세요”     


나도 세게 나갔다.      


사실 지금 와 하는 얘기지만, 길동이 엄마는 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그래선 안 됐다.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어야 했고, 길동이는 괜찮은지 물어보는 게 먼저였어야 했고, 사태 해결을 위해 고개를 숙이는 게 먼저였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내 아들이 전체 학부모에 ‘괴물’로 낙인찍힐까 봐, 지금도 모두가 괴물 취급을 하는데 그것이 공문이라는 형식을 통해 모두에게 기정사실화 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방어적 태도가 먼저 튀어나왔다.

그만큼 내 마음에 불안도가 높았다는 뜻이다. 여유가 없었다는 뜻이다.      


뜨거운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심호흡을 하니 집 나갔던 정신이 조금은 돌아오는 것 같다.  

그래. 해야 할 일을 하자. 흔히 하는 말처럼 애는 그럴 수 있는데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거지.      


핸드폰을 집어 들고 길동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동환이 엄마예요”     


오랫동안 통화가 이어졌다. 가해자의 엄마는 그저 죄송하다, 면목 없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길동이 엄마 얘기가 이어졌다. 알고 보니 길동이 엄마도 아들에게 맞아본 적 있다고 했다.      


아들이 다니는 특수학교는 초등학교 건물이 장애인복지관과 마주 보고 있는 구조다.

아들은 학교가 끝나면 활동지원사와 함께 복지관에 들려 언어치료를 받고 집으로 왔는데 언제부턴가 치료실 가는 걸 극도로 거부했다.       


치료실에 가기 싫으니 학교 문을 나서는 순간 일단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교 시간 문 앞은 학생들과 교사들, 학생을 기다리는 부모와 활동지원사로 왁자지껄하고 정신없다.

그런데 아들은 늘 그 한복판에 털썩 주저앉아 치료실 가지 않겠다는 명백한 의지를 온몸으로 드러냈다.      


담임과 활동지원사가 주저앉은 아들을 일으키려고 팔을 잡아끌면 소리를 지르면서 드러누웠다.

그리고 무차별적으로 팔다리를 마구 휘저었다.

특정한 대상을 정해 공격하는 게 아닌 ‘가까이 있는 사람 아무나 걸려라’ 식의 마구잡이식 공격이어서 범위가 크고 넓었다.        


길동이는 일반 초등학교에 다니다 그해 특수학교로 전학 왔다.

전학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 아들이 휘두른 팔다리에 길동이 엄마가 가슴을 맞은 것이었다.      


“맞는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히더라고요. 아직 어리다 해도 우리 애들이 힘 조절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어른인 나도 이렇게 아픈데 길동이는 어땠을까 생각하면…”     


길동이 엄마가 울었다. 나도 따라 울었다.

우리는 서로 반대되는 입장에 있지 않았다.

가해자의 엄마와 피해자의 엄마가 아닌 그냥 발달장애아의 엄마였다.

아예 말 못 하는 아이 엄마와 말을 할 수는 있지만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아이의 엄마였다.      


그리고 ‘불안한’ 엄마들이었다. (이 부분은 아주 중요한데, 중요하기 때문에 나중에 따로 다루기로 한다)     


길동이 엄마는 내 사과를 받아들였다. 길동이에게도 사과의 말을 전하겠다고 했다.

학교에 했던 요구도 철회하겠다고 했다.  


당시 이 사태는 그렇게 일단락됐는데 학기 초부터 애간장 끓는 일을 연달아 겪으면서 나는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는 자각을 확실히 했다.


점점 심해지는 아들의 문제행동을 여기서 잡아야 한다.

지금 사생 결판을 내지 않으면 우리 앞에 ‘미래’는 없을 것이다.      


그동안 아들의 문제행동을 잡기 위한 노력은 항상 있었다.

2학년 때부터 긍정적행동지원 대상자로 선정돼 전문가 관리 아래 특별관리를 받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아들의 공격행동은 해가 갈수록 심해졌다.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아들은 학교에서 유명한 ‘괴물’이 되어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아들과 내 미래를 장식할 키워드는 △뉴스 △사회면 △안타까운 소식 △한강이 될 것이었다. 나는 주먹을 꼭 쥐었다.


다시 한 번 ‘단호한 결의’가 필요한 시점이 왔다.     


PS. 길동이 엄마와는 그로부터 2년 후 처음 만나 밥을 먹었다. 알고 보니 완전 털털하고 좋은 엄마. 그 후로 종종 만나 밥 먹고 차 마시는 사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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