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프린터가 바꿔 놓을 패션 산업; 노동 집약에서 데이터 집약으로
노동 집약에서 데이터 집약으로
패션은 늘 기술의 발전과 맞닿아 있었다. 2차 산업 혁명과 함께 패션에도 대량 생산이 시작되었다. 18세기 고가의 사치품이었던 천연염료에서 대중적인 인공 염료로 넘어갔고 20세기 화학 산업 발전이 섬유 산업의 발전을 이끌었다. 그리고 플라스틱, 합성 섬유 등 새로운 소재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1934년 미국 듀퐁 Du Pont사의 나일론 발명으로 스타킹을 신는 문화가 생겼다. 그리고 고가의 실크를 대체할 고급 섬유 소재로 확장되었다.
'패션'이라는 속성이 가장 혁신적이며 파격적이어야 하므로 새로운 소재와 기술의 발전에 가장 민감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패션 산업은 아직도 꽤나 노동 집약적인 산업 구조이다. 앞서 아디다스의 스피드 팩토리에 대해 다루면서 신발 생산에서 스마트 팩토리와 생산 공정 자동화에 대해서 소개한 적이 있다. 패션업계에서도 자동화 생산을 향해 단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아직은 전반적인 산업 구조가 노동집약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의류 생산 공정 등은 사람의 손이 필요한 섬세한 공정이 많다 보니 섬유, 봉제, 합봉, 후가공 등은 숙련공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다. 사람의 숙련도가 중요하므로 도제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국내에서 이제는 의류, 봉제 공장 등이 많이 사라진 추세이지만 그 많은 공장들은 사실 중국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중국마저도 이제는 인건비가 비싸져 이미 많은 부분은 베트남이나 동남아로 옮겨갔다. 눈에 보이지 않게 그 누군가의 숙련공의 손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한때 개인적으로도 호기롭게 창업하여 잠깐 쇼핑몰을 운영한 적이 있다. 침구류 제품을 생산하는 작은 공장을 운영했던 짠내 나는 기억이 있다. 2년 정도 경험한 비교적 짧은 경험이었지만 그때는 원단 재단부터 재봉, 제품 검수, 실밥 정리, 제품 포장까지 극히 노가다 적인 생산 구조였다.
최근 몇 년간 어패럴 산업에서도 AR, VR 등을 이용한 스캐닝, 가상 피팅 서비스, 커스터마이징, 빅데이터에 이어 스마트 팩토리, 3D 프린팅 등이 오랫동안 화두였다. 그리고 현재에도 활발하게 발전 중이다. 아마 가장 활발하게 3D 프린팅을 받아들일 산업 중 하나일 것이다. VR, AR 가상 피팅 서비스를 처음으로 개발한 회사가 한국이라고 들었다. 유능한 패션 디자이너가 많은 한국도 이미 3D 프린팅 패션쇼를 열며 이러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얼마 전 간단한 컨설팅을 위해 3D 프린터 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프린터 및 사무용 복합기를 생산하는 업체인데 3D 프린터를 판매하는 별도 자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아직은 우리 가정에 3D 프린터가 하나쯤 있는 시대는 아니지만 곧 새로운 지각 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해 본다.
내 몸에 꼭 맞는 예쁜 옷
집에서 인쇄해서 바로 입으세요.
3D 프린팅으로 패션쇼를 열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디자이너 중 가장 단연 돋보이는 디자이너는 이스라엘 출신의 드닛 펠레그 Danit Peleg가 있다. 가정용 작은 3D 프린터를 갖고 혼자서 끙끙 대면서 시작한 3D 프린팅 패션 디자인이 몇 년이 지난 지금은 꽤 실용적이고 멋있는 의류 디자인으로 완성되었다. 테드 Ted에서 밝힌 그녀의 일화 중 하나는 이렇다. 해외 출장 중에 옷을 거의 가져가지 않았고 행사에 필요한 옷을 전날 인쇄해서 입었다고 한다. 3D 프린팅 관련 기술 출장이었기에 마침 가져간 소형 3D 프린터로 그때그때 필요한 옷의 조각들을 인쇄하고 짜 맞추듯이 연결하여 입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3D 프린팅으로 선보이고 있는 디자인들은 평범한 운동화처럼 보이는 디자인들도 많지만 일반인에게는 굉장히 과감하고 난해한 디자인도 많이 눈에 띈다. 기존 섬유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들 중 3D 프린팅으로 구현할 수 있는 장점들을 극대화하여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하이패션에서 선 보이는 과장된 스타일과 마찬가지로 혁신적인 시도들을 한 껏 발휘하고 있다. 어패럴, 액세서리, 속옷, 신발 등 영역에서의 과장된 상상력과 실험의 반복 속에서 새로운 스타일이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초기 3D 프린팅 의류나 패션 소품의 단점은 딱딱한 플라스틱 소재였다. 가끔은 부러지기도 했다고 한다. 몸의 유기적인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패브릭이 늘어나듯이 탄성력 있게 늘었다 줄어들지 않았기 때문에 약간 뻣뻣하고 부자연스러웠다. 다소 딱딱한 소재로 인해 몸의 움직임이 제한되거나 피부가 긁힐 수 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필라플렉스 Filaflex와 같이 3D 프린팅에 적합한 원사 소재 등이 개발되었다. 탄성이 높아 몸에 잘 맞고 부러지지 않는 3D 프린팅 원단을 만들 수 있게 된 셈이다. 이제는 원하는 직물 디자인 패턴을 다운로드하여 원하는 직조의 조각들을 인쇄할 수 있다. 이는 재단된 섬세한 레이스 직물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끊어지지 않고 크게 쭉 늘어나고 바로 수축되는 쫀쫀한 성질을 갖고 있는 장점이 있다.
패션 마케팅
이제는 무엇을 마케팅 해야 하나?
패션 산업에서 MD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팔릴 만한 디자인과 수량을 예측해야 하기 때문이다. MD는 생산 원가, 재고와 제작 소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가장 최적화된 생산 수량, 판매 가격, 매장별 판매 디자인과 물량을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때 대학 동기 친구가 Zara의 MD로 일한 적이 있는데 한국 매장별 먹힐 만한 디자인과 바잉 수량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같은 자라도 나라별로 입고되는 디자인이 다를 수 밖에 없다.물론 그 간 쌓인 빅데이터에 기반한 결정이지만 결국은 해당 나라의 MD의 결정에 따라 나라마다 다른 디자인이 선택되고 판매되는 것이다.
직접 인쇄해서 입는 옷
근래에는 집에서 디자인 패턴을 다운로드하여 직접 인쇄해서 입게 되는 시대가 열린다. 그러면 패션 산업은 어떻게 바뀔까? 우리가 MS, 포토샵 등 소프트웨어, 음악 파일 등을 유료로 구매하여 이용하듯이 마음에 드는 옷을 유료로 다운로드하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옷 값은 어떻게 결정될까? 최종 제작되고 유통된 의류에 대한 전체적인 비용이 아니라 상표와 디자인 패턴에 대한 사용 이용료가 옷 값이 되는 셈이다. 어쩌면 패션 회사들이 직접 3D 프린터와 3D 프린터용 원사(실) 소재를 패키지로 팔 수도 있다. 그리고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의류 도안을 판매할 수 도 있다. 제작과 유통을 건너띄는 셈이다.
옷 사이즈 커스터마이제이션
대량 생산의 맹점은 사이즈의 규격화이다. 44, 55 그리고 66 사이즈로 크게 제한되는 패션 산업에서 우리는 선택의 폭이 많지 않았다. 앞으로는 각자의 키, 몸의 굴곡에 꼭 맞추고, 늘었다 줄었다 하는 체중에 맞게 그때 그때 내몸에 최적화된 옷을 인쇄해서 입을 수 있을것이다. 3D프린팅을 통한 1:1 맞춤형 옷이 되는 것이다.
패션 마케팅의 숙제 '재고'를 털다.
얼마 전 '패션 마케팅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간의 패션 관련 직간접적인 업무 경험을 바탕으로 관찰자 시점에서 다른 인사이트를 갖고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질문 같았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그때 머릿속에 바로 스친 생각은 친한 지인의 초청으로 갔던 어느 유명 어패럴 브랜드의 '패밀리 세일' 현장이었다. 친한 사람의 초청이기도 하고 평소 좋아하는 백화점 브랜드였다. 혹시 괜찮은 저렴한 시즌오프 코트를 만날 수 있을까 갔던 어느 호텔에서 열린 패밀리 세일의 현장은 옷 무덤과 사람들로 꽉 차 숨쉬기 어려운 곳이었다. 코트는 시즌오프라고 해도 비쌌고 마음에 드는 디자인은 몇 남지 않았다. 그나마 마음에 들었던 블라우스와 정장 치마는 입어보려면 긴 줄을 기다려 좁은 임시 피팅 박스에서 간신히 입어봐야 했다. 재고를 떨어야 하는 사람과 그 재고 속에 보석을 찾아야 하는 치열한 현장에서 그때 나는 아쉽지만 옷 고르기를 포기하고 빈손으로 호텔을 나왔다. 패션 업계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앞으로 패션 마케팅의 공식을 바꿔줄 3D 프린팅 산업이 어떻게 변화할지 살포시 기대해본다.
드닛 펠레그 테드 영상 (한국어 자막)
https://www.youtube.com/watch?v=3s94mIhCyt4
https://brunch.co.kr/@scandilife/9
4차 산업과 마케팅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분들께서 좋은 의견, 아이디어, 자료 공유해주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4차 산업과 마케팅에 대해 궁금하신 주제에 대해서 화두를 던져주셔도 좋구요. scandilif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