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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칼랫 Aug 11. 2020

능력 있는 잉여인간의 후회, '오네긴'

[발레/문학] 푸쉬킨의 '예브게니 오네긴', UBC 오네긴 (2020)

러시아의 거장 알렉산드르 푸쉬킨이 쓴 '예브게니 오네긴'은 운문 형식의 독특한 '소설'이다. 이런 소설을 러시아어로 읽을 수 있다면 그 운율을 더 아름답게 느낄 수 있었을 텐데. 올 8월 유니버설 발레단에서 오네긴을 공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꼭 원작과 함께 감상하고 싶어 얼른 책을 구입했다.

유니버설 발레단 오네긴 (2020) 포스터

2020년 8월, 유니버설 발레단이 충무아트센터에서 공연했던 오네긴은 조금 더 특별하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전막 발레 공연들이 줄취소가 되고, 티켓을 판매했다가 취소 공지가 올라오기도 했었다. 이 '오네긴'이 올해 처음으로 무대에 올라온 전막 발레 공연이었다. 많은 발레 팬들이 기다렸고, 발레단과 무용수들도 공연을 올리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네긴 공연 무대에 유비씨(=Universal Ballet Company)의 문훈숙 단장님이 올라와 공연을 올릴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다며 인사도 하시고, 오네긴에서 쓰이는 드라마 발레의 마임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셨다. (그 설명이 정말 너무 좋았다. 작품 '오네긴'을 이해하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작품 제목인 '오네긴'을 보고, 처음엔 무슨 뜻인지 아리송했는데 '예브게니 오네긴'이라는 원작 책을 읽으며 남주인공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발레와 책을 함께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좀 의심스러워서, 책 읽은 내용 따로 알고 무용 보고 신나는 기분 따로 느낄 줄 알았다. 현실은... 공연 끝나고 줄줄 우느라 속눈썹이랑 아이라인 다 날아갔을까 봐 얼른 거울을 찾아야만 했다.


책에서는 오네긴이 타티아나의 편지를 아주 젠틀하게 거절하는 답장을 써서 보내는 내용이 나온다. 발레에서는 오네긴이 타티아나의 편지를, 타티아나 눈앞에서 좍좍 찢어버리는 잔혹한 장면으로 표현되어 오네긴을 더 나쁜 놈으로 만들어놨다. 원작의 오네긴이 '타티아나'라는 기회를 날려버린 찌질이의 느낌이라면, 발레의 오네긴은 지질한데 못되기까지 한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3막의 회한 파드되를 보고 나서는 '지질하다', '못됐다' 같은 단순한 판단을 넘어서 오네긴을 이해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3막의 오네긴은, 1막에서 차 버린 타티아나를 다시 만나 끔찍할 만큼의 후회를 한다. 후회의 모습이 너무 절절해서 보다가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대사도 없이 이 후회가 끔찍할 만큼 절절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과연 그 후회가 단순히, '아 예전에 봤던 타티아나는 못생긴 촌뜨기 었는데 이렇게 예뻐졌다고!? 젠장!' 같은 평면적인 후회였을까?

UBC 오네긴 (2020) 캐스팅. 나는 첫공연을 보았다.

오네긴은 '특출 난 능력자'(집안, 능력, 외모 빠질 것이 없는)이면서도 러시아 전제정치 하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잉여인간'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1막의 무도회 내내 지루함을 느끼던 그는 어쩌면 '이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어'라고 자포자기한(혹은 자포자기의 방식으로 세상에 반항하는) 인간일지 모른다. 3막의 타티아나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로 성장했다. 그렇게 성장할 사람이 어린 시절(=1막)에는 '볼품이 없다'는 이유로 오네긴에게 거절당했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다. 심지어 타티아나의 현재 남편인 그레민 공작은 그때부터 타티아나에게 관심이 있었다. 타티아나가 정말 매력 없는 여자였그레민 또한 그녀에게 마음을 품었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오네긴은 좌절스러운 상황을 겪으며 '현실이 이렇게 답답한데 사랑 그까짓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세상만사 쓸데없듯, 타티아나 너도 별거 아니겠지!'라는 마음으로 자신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폄하하며 세상에 반항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티아나와의 재회 후 과거를 후회하며 다시 타티아나를 안고 싶어 하는 것이해가 되기는 했다. 타티아나에 대한 후회는 회의주의와 허무주의로 젊은 날을 날려버린 그의 인생 자체에 대한 후회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가 좋은(정의로운) 남자로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타티아나의 순수한 사랑을 놓친 것은 그저 그의 실수나 타이밍 미스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실수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한다. 그레민 공작의 아내가 되어버린 타티아나에게 과거의 후회를 들먹이며 집착하는 모습에서, '너, 참 지질하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많은 사람들이 철없던 지난날에 대한 후회를 품고 살아갈 수 있겠지만, 현재를 파괴하면서 까지 그 후회에 집착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


반면 타티아나는 너무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순수하고 강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예브게니 오네긴'은 19세기에 쓰인 푸쉬킨의 작품이다. 타티아나는 소설과 발레에서 모두 촌스럽고 소극적인 시골 아가씨 정도로 소개되지만, (러시아는 예로부터 여자가 먼저 대시하는 문화인진 모르겠으나) 그 옛날의 19세기,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먼저 고백편지를 보낼 정도의 솔직한 용기를 가진 여자라면 그 아가씨 '소극적'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네긴 포토월 따라잡기! 생각보다 허리를 많이 꺾어야합니다...

티아나의 진가는 발레 오네긴의 3막에서 나온다. 오네긴이 무릎을 꿇으며 다시 자신을 봐달라고 애원할 때, 타티아나는 그를 비웃는 것도 아니고 매몰차게 거절만 하는 것도 아니다. 타티아나가 오네긴을 마구 내치치 못한 것은, 그녀가 알 거 다 아는 나이가 되었대도 여전히 어린날의 첫사랑을 순수하게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나이가 찬 타티아나는 오네긴이 후회하는 모습을 보며 어린날의 그 남자가 왜 자신을 그렇게 비열한 방법(발레극 중)으로 거절했는지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저 첫사랑 상대의 후회를 비웃는 여자보다는 본인의 첫사랑에 아련함을 느낄 줄 아는 타티아나는 순수한 매력이 있다. 그러나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한다고 첫사랑의 아련함에 무너졌던 것도 아니다. 그래서 '멋있는' 여자다. 내가 보는 강미선 수석의 이미지 또한 '부드럽고 강건한 멋있는 여자'라 타티아나가 강미선 수석과 더더욱 잘 어울리는 캐릭터라고 느꼈다.


타티아나는 오네긴에게 거절당한 이후, 그레민 공작의 아내가 되었다. 결혼은 스스로의 '선택'을 동반한다. 오네긴을 내치는 것은, 그녀의 선택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이라고 볼 수 있다. 3막의 타티아나는 애원하는 오네긴을 보고 문을 가리키며 마치 '나가.'라고 말하는 듯한 스틸 포즈를 짓는다. 이때의 비통하지만 단호한 표정이 압권이다. 어린날부터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했고, 거절을 당하고 난 뒤 속상하지만 훌훌 털고 또 다른 선택을 했던 타티아나.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모습은 한결같고 강건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녀의 여동생인 올가는 첨부터 끝까지 맘에 안 들었다. 오네긴이 자신의 절친이었던 렌스키를 쏴 죽이게 된 건 결국 올가의 탓도 있다. 오네긴이 올가를 희롱하는 것 자체가 문제이지만, 올가가 물렁한 여자가 아니었으면 오네긴도 올가에게 집적대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보는 내내 올가가 너무 얄미웠다.


타티아나를 사랑하는 그레민은 좋은 남자일 것 같다.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알아본다고 생각하니까!  알렉스 리노가 그레민을 맡았는데, 알렉스 리노 자체도 좋지만, 그레민이 타티아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레민이라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었다. 하지만 나쁜 사람도 좋은 사람을 알아보고 좋은 사람 옆에서 콩고물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경우도 많으니, 많은 타티아나들이 오네긴을 거를 줄 알게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네긴 보다는 그레민 같은 남자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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