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트레바리에서 선택했던 책은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 수업'이었다. 간추리면 불교의 '연기', '공', '유식'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다만 그 설명이 한 번 들어서 와 닿을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개념을 정의한 후 여러 가지 예시를 반복적으로 들어서 설명해주는 책이라고 보면 된다.
이번 독후감에서는 우선 이 책에서 소개하는 불교 개념 정리를 나름대로 한 후, 얼마 전에 다녀왔던 인상주의 전시회(예술의 전당, '모네에서 세잔까지,2020.06.20~2020.08.30)와 연결해서 기록해보려고 한다.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수업' 표지
1. 커다란 불교의 갈래 정리 - 연기, 공, 유식
(1) 연기: 특정 조건들이 맞아떨어져서 어떠한 순간이 생겨나는 것. '조건'의 상태나 여부에 따라서 발생, 변화, 소멸. (절대성/영원성이 없다는 의미)
(2) 공(空): 한자 그대로 '비어있다'는 뜻. '절대성'의 '결여(=비어있음)'를 의미. (절대성/영원성이 없다는 점에서 연기와 공은 같은 개념)
(3) 유식(維識): 모든 것은 내 마음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함. (마음이 달라지면 모든 것이 달라지므로 절대성/영원성에 반함. 연기/공과 상통)
결국 세 가지가 다 같은 개념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덧붙여 드는 생각인데, 불교사상은 아뢰야식(인간의 근본 의식. 윤회의 주체가 됨)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다 같다고 설명하기 때문에 이렇게 연기, 공, 유식을 나누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설명/설파하기 쉽도록 편의상 개념을 나누는 느낌.)
2. 번뇌가 없다면 삶은 모네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모네에서 세잔까지', 포토월 앞에서 1
이번 트레바리 진진 데님 1차 번개에서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모네에서 세잔까지'라는 인상주의 전시에 다녀왔는데, 그 전시의 그림을 보면서 불교의 사상이 떠올랐다. '인상주의'란 간단히 말해 빛에 의해 변화하는 자연의 순간적인 색채를 포착하여 표현해낸 미술사조를 말한다. 불교에서는 '인연'은 어떤 조건이 성립되어 어떠한 일이나 감정이 순간 일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 조건이 다하면 소멸하고 조건이 성립되지 않으면 그것이 발생하지 않는다. 조건이 있어야지만 일어나기 때문에 절대불변의 존재는 없고, 모든 것은 가변적이라고 말한다. 인상주의와도 비슷하다. 과연, 인상주의가 포착해낸 나뭇잎의 색깔은 '초록색'이었을까?
레세르 우리 - 포츠담 광장의 밤 (전시 중 가장 맘에 들던 그림 1)
해가 질 무렵의 나뭇잎은 붉은색, 회색, 초록색을 모두 띌 테고 과 해 뜰 무렵의 나뭇잎은 분명 밤의 나뭇잎보다 더 빛나고 노란빛과 푸른빛을 띨 것 같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 온도, 습도, 채광 등의 '조건'아래에서 '나뭇잎'은 무슨 색일까? 어제 오후 3시의 나뭇잎과 오늘 오후 3시의 나뭇잎은 같은 색깔일까? 인상주의 사조의 그림은 작가가 대상을 언제(=어느 조건하에서) 그렸느냐에 따라 따뜻한 분위기를 내기도 하고 차가운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상주의의 순간포착은 '객관적인 대상'을 그린 것일까 아니면 '주관적인 대상'을 그린 것일까?
카미유 피사로 - 에라니의 일몰 (전시 중 가장 맘에 들던 그림 2)
어느 쪽이라고 한들 내게 미술사조 중 가장 좋아하는 화풍을 고르라면 주저 없이 인상주의다. 인상주의의 그림은 빛에 따른 색채 변화를 담아내서 실감이 나기는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형태가 뭉그러져서 정확하게 무엇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어렵다. 때문에 그야말로 '그림'같다. 그렇다고 완전히 그림이라기에는 색채가 실감 나게 묘사되어 있어 현실적이기도 하다. 여러 이유를 차치하고, 그저 내 눈에 예쁘다. 일몰은 일몰이라 예쁘고, 일출은 일출이라 예쁘다. 해가 떠오른 날의 그림은 해가 떠서 예쁘고, 비 오는 날의 그림은 비가 오는 날이라 예쁘다. 인상주의가 그려내는 대상은 '순간'이다. 그 '순간'자체는 '순간' 스스로에 대하여 '해 가지면 어쩌지', '비가 오면 어쩌지' 등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는다. 그 순간을 그리겠다고 결정한 건 '화가'였고, 그 화가의 그림을 보며 감상하고 상상하는 것은 그림을 보는 '나' 뿐이다. '순간'은 그저 가만히 '존재'할 뿐이다. 불교의 '유식'이 생각난다.
3. 내가 결정하는 것들
화가가 어느 순간을 그리기로 결정했듯, 그 그림을 보고 감상하는 것이 나라면,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나'가 된다. 삶도 마찬가지다. 내가 살아가는 삶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말하듯, '내 기분은 내가 정해. 오늘은 행복으로 할래'에도 유식사상이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뭘 보시는 거애오? 포토월 앞에서 2
그런데 비단 '기분'만 내가 정할 수 있는지 의문을 던져보고 싶다. 남들이 정해둔 것들에 대해서도 나는 스스로 정의하고 생각해야 한다. '자존감'이 높으면 정말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낮아져 있던 나의 자존감이, 내가 돈이 생기거나 예뻐졌을 때 '자존감'이 올라간다면, 그건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아니라 기회주의적인 마음이 아닐까. '열정'은 늘 좋은 가치일까? 그렇다면 내 몸상태에 대한 고려 없이 열심히만 하는 것이 나에게 늘 이로운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 중요한 것은 '열정'이나 '자존감' 자체가 아니라 가치에 대해 나 스스로가 그 가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내 상황에 어떻게 대입할 것인가 대한 스스로의 답이다.
불교가 설명해주듯, 극락과 지옥은 같은 곳이다. 같은 곳이 극락이 되느냐 지옥이 되느냐는 나의 시선과 '연기'하여 결정된다. 결론적으로 '나'는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내 삶의 키맨(Key man)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왕 내가 살아내야 하는 삶이라면 '극락'으로 결정하고 싶다.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와서 아름답고, 해가 뜬 날은 해가 떠서 아름다운 인상주의의 그림 같은 극락 말이다. 저자는 '쓸데없는 일에 마음이 걸리지 않으면 그야말로 인간세상은 호시절'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삶은 그 삶을 살아내는 당사자의 시선에 따라 모네의 그림처럼 아름다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