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을 전공한 그녀의 남다른 경험들
패션 디자이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나는 사람들에게 샤넬을 너무 좋아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대부분 나를 명품 애호가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이렇게 묻는다.
" 너 샤넬백 많아?"
"아니요."
나는 샤넬백이 많기는커녕 하나도 없다.
물론 명품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 고유한 브랜드 가치도 존중하고 고급 퀄리티도 인정하지만, 내 상황에서 명품을 사서 모으는 것은 사치라는 현실적인 이유에서 굳이 사지 않는다. 같은 돈이라면 여행을 다니고 저축을 하고 투자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언젠가 billionaire 라도 된다면 마구 사려나...
왜 샤넬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당연한 듯이 샤넬백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생각할까??
나는 의상학과를 졸업한 패션학도로서 스스로 샤넬의 후배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 샤넬 선배님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 주위에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인생선배도 선배인데 같은 분야를 전공했는데 선배라고 부르면 안 되나요??...
내가 샤넬을 좋아하는 이유는 진짜 패션계의 선배로서 그녀의 사상을 좋아한다.
그녀가 살던 시대의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개혁적이며 실용적인 패션을 제안하여 현대 여성복의 시작점을 만들었으니 가히 존경할만하다.
그녀의 그러한 도전정신과 마인드를 나는 진심으로 존경하며 배우고 싶다. 비록 현직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삶이 아니라서 선배라고 가끔씩 부르지만 만약 동종업계까지 근무했다면 공공연하게 선배라고 부르고 다녔을 것이다.
샤넬의 가방도 옷도 없지만, 내 롤모델이자 존경하는 선배의 로고를 간직하고자 휴대할 수 있는 화장품 정도는 일 년에 한두 번씩 사면서 내 나름대로 만족을 느낀다.(소확행이라고나 할까?)
그러고 보니, 고등학생 때 외국어학원을 다닐 때 각자 영어 이름을 지으라고 했는데, 나는 샤넬로 지었었다. 그게 프랑스어 인지도 모르고 그냥 코코샤넬이라는 이름이 너무 좋아서 샤넬이라고 지었다. 그때만 해도 결국 내가 의상학도가 될 운명인지는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지난 글에 썼듯 나는 운명처럼 의상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공부에 최선을 다하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전공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부모님께서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그냥 휴학을 하라고 해서인지..
여러 가지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는 대학생 때는 열심히 공부와 실기를 하면서 장학금을 받았고 상위 성적을 유지하였다.
비록 같은 과 동기들, 선배들 중에는 부유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았고 등교할 때 입고 오는 옷차림조차 남다른 사람도 많았지만 나는 나만의 경험과 지식을 쌓아가며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키워갔다.
하루는 TV를 보는데 디자이너 김지해 님이 나왔다. 우리나라보다 파리에서 훨씬 더 유명하며 결국 프랑스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 패션쇼를 하는 그녀의 성공스토리를 다큐멘터리로 보여주고 있었다. 너무 멋진 그녀의 성공스토리에 감명받아서 나중에 꼭 성공하면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서울과 달리 패션쇼를 보는 게 쉽지 않았던 부산이었지만 새로 지은 벡스코에서 세계 유명한 디자이너를 초대해서 쁘레따뽀르떼(기성복) 패션쇼를 개최한다고 하였다.
너무나 운이 좋게도 우리 대학교 3~4학년 학생들이 제1회 부산 쁘레따뽀르떼 패션쇼 진행에 대한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고 나는 무대 뒤에서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을 직접 만나며 그들을 도와 패션쇼를 준비하고, 모델들에게 옷도 입혀주며 옷을 직접 만져보는 영광을 가지게 되었다.
어느 날은 해외 유명 디자이너의 옷을 다려야 하는데 도와줄 사람이 있냐고 우리들에게 수석 디자이너분들이 물어봤는데 비싼 옷이라 망칠까 봐 다들 자신이 없어서 뒷짐을 진 채 엉거주춤 서있었다. 그때 내가 손을 번쩍 들고 나와서 옷을 다렸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나는 다림질을 진짜 못한다... 게다가 그녀의 작품들은 모두 실크였다. 그럼에도 그저 디자이너에게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대범하게 나선 것이다. 내 어설프고 도움 안 되는 다림질에도 그 유명한 여성 디자이너는 연신 thank you라고 말해주었다.
(때론 무모한 용기도 인생에 필요하다!)
우리 학교 교수님이 패션쇼 기획 또는 벡스코의 높은 분과 친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학과 학생들은 제2회 쁘레따뽀르떼에도 자원봉사의 자격을 얻어서 남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나는 TV에서만 보던 당대의 핫한 디자이너는 물론이고 서울에서 모델로 초빙되어 온 연예인(비, 이병헌, 최지우, 차인표 등)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생생하게 남는 사건들은 두 가지이다.
나를 제일 처음 패션디자인의 세계로 안내한 앙드레김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그의 옷을 가까이서 보고 만지며 연예인이나 해외 모델에게 입혀보면서 잠시 앙드레김의 수석 디자이너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아까 말했던 김지해 디자이너를 만났다. 벡스코에서는 층별로 시간차를 두고 다른 디자이너의 패션쇼를 진행하였는데 자원봉사 중 진행요원을 맡은 팀들은 쇼가 시작되기 전까지 무대 앞에서 대기를 하고 있어야 했다. (일반인의 진출입을 막기 위하여...) 하필 내가 진행요원 순번일 때 김지해 님이 다른 층에서 패션쇼를 하게 되었다.
큰 행사이기에 진행요원은 꽤 많았고 나는 지체할 겨를 없이 자리를 몰래 빠져나와 김지해 님 패션쇼로 잠입(?)하여 그녀의 쇼를 보았다. (관계자 여러분들에게는 너무 죄송하지만.. 다시 한번 마음으로 사죄합니다.)
내게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순간이었던 만큼 벅차고 감동이 밀려오는 시간이었다.
쇼가 끝난 후 바쁜 그녀는 무대 밖으로 급하게 나갔고 나도 역시 따라 나갔다. 당시에 핸드폰 사진은 화질이 안 좋아서 카메라를 들고 다녔는데, 바쁜 김지해 님을 붙들고 사진을 찍으려니 찍어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앞에 있는 건장한 보디가드님에게 사진 좀 찍어달라고 부탁하니 나를 매우 이상하게 쳐다보셨다. 결국 다른 사람들이 찍을 때 "잠시만 나도 같이"라고 뻔뻔히 끼여서 김지해 님 근처에서 찍은 사진이 있다.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그때의 내가 생각나서 웃기다.
돌이켜보면 참 천방지축이면서 대범한 용기도 가득했던 나의 20대 시절이다.
꿈도 많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나는 동분서주했던 것 같다. 결국 이후에 현실 앞에서 수없이 좌절했지만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그 연결점에서 이어진 또 다른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
한편으로 그때의 내가 참 부럽기도 하다. 원하는 바가 있으면 무조건 적극적으로 나서고 열심히 했던 그때.
젊음은 다시 돌이킬 수 없지만 그 시절의 열정은 다시 찾아보려 한다.
때론 대담한 용기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