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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구루 Dec 05. 2023

초라한 현실보다 화려한 거짓이 낫다

영화 <리플리>

[초라한 자신을 버리고픈 리플리]

 리플리의 거짓말은 프린스틴 학생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위조, 거짓말, 다른 사람 흉내를 잘한다고 말했던 그는, 그전에도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피아노 조율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밤에 몰래 피아노를 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정말 음대생 같이 자연스러웠다.

 영화 이전의 리플리에게 거짓말은 유흥일 뿐,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현생을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했고, 그의 주변에서는 그를 ‘톰 리플리’로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갑작스러운 낯선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아무도 자신을 모르고, 돈도 넘쳐난다. 그렇게 리플리는 백지 위에서 거짓말, 즉 ‘연기’를 펼쳐 보인다.

 그렇다면 리플리는 왜 거짓말에 중독되었을까? 그는 재능이 많은 사람이다. 관찰을 잘하고, 연기를 잘하고, 음대를 나오지 않아도 피아노를 잘 쳤다. 하지만 재능이 있어도 그의 가난한 현실이 그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리플리는 초라한 자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 그의 거짓말을 봤을 때, 나는 리플리가 ‘사실대로 말하긴 귀찮고 이 정도 거짓말은 괜찮겠지?’라는 속마음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다. 더불어 음대생으로 평가받는 자신에게 뿌듯함을 느꼈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자신을 ‘디키’로 소개한 시점에서 그 추측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됐다. 그는 그때도 거짓말에 중독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상황만 주어진다면 거리낌 없이 거짓말을 내뱉는 사람이었다.


[잔잔한 물결은 어느새 파도를 만든다]

 리플리의 거짓말 중독은 바닥까지 내려간 자존감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이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쾌감. 그는 거짓말 하나만큼은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무리 부자여도, 높은 자리의 사람이라도 자신의 연기에 깜빡 속는다는 사실은 그를 미치게 만든다.

 하지만 연기는 아무리 잘해도 연기일 뿐,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한다. 단편의 조각으로 생활하는 리플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묘한 이질감을 느끼게 했고 그런 낯섦은 점점 불어나게 된다.

 인간관계는 예측할 수가 없다. 한번 보고 말 사람에게 하는 거짓말은 잔잔하게 지나갈 수 있지만, 관계를 깊게 맺을수록 거짓말은 도리어 리플리를 집어삼켜 버린다.

 현실이 자신이 통제하는 연극 같다고 생각했다가, 사실 자신 또한 연극 위에서 끌려다니는 사람임을 깨달은 리플리는 패닉에 빠진다.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그는 거짓말의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고 살인을 하고 만다.


[리플리의 본심]

웃기는 건 난 다른 사람인 척하지 않는데 넌 그렇다는 거야.
난 너한테 솔직했어. 내 감정에 대해서. 근데 넌… 난 분명 알고 있어 체스를 두던 밤 말이야. 확실히 느꼈어.
그러시겠지 넌 인정하기 두려울 거야. 그래서 그냥 형제라고 넘겨버리지. 그러고는 마지와 더러운 짓을 해. 다들 듣고 있는데 보트에서 섹스를 하지. 정말 고통스러웠어. 있는 대로 놀아나다가 이젠 결혼하겠다고?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 마지를 속이더니 결혼한다고 하고 실바나도 임신시켰지. 모두를 망치고 있잖아. 색소폰을 분다더니 드럼을 치겠다고 하고 어떤 게 진짜야?

 디키한테 말하는 리플리의 대사다. 이 대사들이 되게 오묘하다. 디키에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리플리 본인에게 말하고 있다. 처음엔 디키가 되어버린 리플리가 말을 하고, 마지막엔 디키를 완전히 따라 할 수 없어 답답해하는 리플리가 리플리에게 말을 한다.

 이미 디키의 습관, 취미, 행동 등을 모두 꿰고 있던 리플리는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디키가 아닌 자신을 따라는 따라쟁이 톰으로 착각한다. 즉, 원래 디키가 리플리에게 말해야 할 말들을 리플리가 디키가 되어 리플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디키는 이러니까 이렇게 행동할 거야~'라고 정의 내린 후 디키를 따라 하던 리플리는, 디키의 변화구에 적응하지도 못하고 심경의 변화를 추측하지도 못한다. 당연하다. 어떻게 표면의 몇 가지 조각만 가지고 완전히 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를 몰랐던 리플리는 그렇게 자신 있던 거짓말이 들통나게 되자 정체성의 혼란이 와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

무슨 일을 하든 아무리 끔찍하고 해로워도 자기 머릿속에선 납득되는 법이잖아요. 자신이 나쁘다는 사람은 없죠
당신은 과거의 일을 지하실 방에다 넣고 문을 잠그는 기분 몰라요? 전 그러는데. 그러다 특별한 사람을 만나면 그 열쇠를 주고 싶어 지죠. ‘문 열고 들어가 봐’라고 하면서요. 근데 그럴 수 없어요. 너무 어둡고 악마가 있으니까요. 얼마나 추한지 누가 본다면…
전 늘 그러고 싶어요. 문을 열어버리고 빛을 들여서 모든 걸 쓸어버리고 싶어요. 큰 지우개로 모든 걸 지울 수 있다면 저 자신부터 지울래요. 있잖아요.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아니에요

 여기서 리플리는 자신의 외롭고 괴로운 심정을 토로한다. 이제 와 게임처럼 리셋할 수도 없는 이 현실과 살인을 했다는 죄책감, 이렇게 자신을 숨기는 것에 대한 슬픔 모두를 지하실 방에다 가둬버린 리플리. 하지만 열쇠를 받은 피터에게까지 살인을 저지른 걸 보면, 그는 영원히 지하실을 열지 못할 것이다. (피터를 죽인 후의 리플리의 얼굴을 보면 꼭 악마와 같은 모습이다)


 인간이란 게 참 무섭다. 아무리 봐도 내면의 말처럼 보이는 저 대사가 거짓말이 아닐까 의심한다. 톰 리플리를 보면서 사람의 단편적인 부분만 봐서는 그의 인생을 살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자꾸 리플리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리플리처럼 나도 ‘톰은 거짓말을 잘하니까 이럴 거야’하고 단정 지어 버린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병, 리플리 증후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사람은 처음엔 자신에 대한 비난을 한다. 난 왜 이렇게 생겼을까, 내 행동은 왜 이러지? 내가 못난 건 내가 태어날 때부터 결정된 건가? 왜 이렇게 잘난 구석이 없을까.

그러다 햇살 같은 사람을 마주할 때, 동경하게 된다. 와 멋있다.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주체 있게 살아갈 수 있을까? 저 사람을 닮고 싶다. 자기 자신을 가꿔야 하는 사람은 그러지 못하고 자신을 지하 한 공간에 넣어놓고 새로운 자신을 위해 그 햇살을 따라 하려 한다. 본인 자체로는 발전할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해 버려 생긴 첫걸음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럴수록 지하에 갇혀있는 본연의 자신은 점점 병들어가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다. 때문에 비난의 화살은 햇살에게 향한다. 내가 닮고 싶었던 저 사람, 사실은 그렇게 멋지지 않은 것 같아. 이런 모습이 어쩌고저쩌고. 자신이 알고 있던 부분이 아닌 모습을 보면 당황하고, 자신은 완전한 햇살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도리어 햇살에게 화를 내고야 만다.

 리플리도 자기혐오의 길에서 힘들고 어려운 ‘본인을 꾸미는 일’을 선택하지 않고 쉽고 간단한 지름길을 선택했다. 문제는 그 지름길을 ‘리플리’가 걷는 것이 아니고 ‘디키인 척을 하는 리플리’가 걸었다는 것이다.


[오늘의 질문]

리플리는 동생애자 혹은 양성애자였을까요? 아니면 성향까지도 연기였을까요?

마지막 피터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지만, 이것 또한 피터를 속이기 위한 장치였을지,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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