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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구루 Dec 11. 2023

선생님,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

영화 <벌새>

[문을 두드리며 불안해하는 은희]

 은희는 가족에 대한 신뢰감이 없다. 버려질 것 같은 불안감. 엄마와 아빠는 오빠만 바라보고, 오빠가 자신을 때려도 맞아도 싸다는 식의 반응, 그리고 언니 수희를 이미 내놓은 딸 취급하는 가족들을 보며 은희가 가질 수밖에 없는 감정은 뻔하다.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가족으로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은희는 그런 시기가 올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초반의 은희의 행동에 의아할 수 있어도 영화를 보면 어느새 은희의 감정에 빠져들게 된다. 은희가 집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땐 부침개를 먹는다. 오빠와 아빠가 있는 식탁에만 있는 밥과 반찬들. 엄마는 은희에겐 부침개를 먹으라 하고 오빠가 오면 오빠 밥상을 차려주라고 한다. 아직까지 너무나 익숙한 한국 가족의 풍경이다.

 밥뿐만 아니라 은희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가족 안에 없다. 그 누구도 너 왜 그랬어? 라든가 은희의 생각을 물어보지 않는다. 은희가 밖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관심조차 없다. 은희가 도둑질하다 걸렸을 때, 경찰서에 넘기라는 아빠의 말을 들은 은희는 정말 외로워 보였다. 아무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위태로운 상태 같았다.

 은희는 자기 자신을 혹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귀밑에 혹이 생겼다는 것을 알려줬을 때, 부모님은 그제야 은희에게 관심을 가지고 걱정을 해준다. 조그맣지만 확실한 존재감. 은희가 수술은 한 뒤에 혹을 어디다가 뒀는지 물었을 때, 이제 혹이 사라지면 자신에 대한 관심도 사라지는 것 같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영지의 존재]

영지가 희망처럼 나타났다. 영지는 오자마자 은희와 지숙에게 물어본다.

여러분이 아는 사람 중에 속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은희는 곧 영지에게 마음을 주게 된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의지할 수 없는 가족, 자신을 팔아넘긴 (잠깐이지만) 친구, 바람피운 남친. 나는 영지가 은희에게 조언을 해주는 미래의 은희와 같은 존재라고 느꼈다. 방학이 끝나면 모두 다 이야기해 준다고 편지했지만, 이제 만날 수 없는 영지 선생님은 마치 환상 같기도 하다.

은희를 바라보는 영지의 눈빛에는 많은 감정이 느껴진다. 특히 병원에서 은희에게 해주는 말이 서로가 너무 애달 파 보였다.

은희야, 너 이제 맞지 마. 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 절대로 가만있지 마. 알았지?

[은희의 시선]   

은희→엄마 : 엄마는 소통이 되는 것 같으면서도 소통이 되지 않는다. 어쩔 때는 너무 무심하고 어쩔 때는 잘 챙겨줘서 그나마 가족 안에서 속마음을 돌려서 물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은희→지숙 :  어느 정도 속 이야기를 하는 친구. 하지만 둘 사이에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지숙의 경우에는 이혼. 지숙이 "너 그거 알아? 너 가끔 네 생각만 한다"라는 말이 날카롭다. (솔직히 나였으면 집 가서 백만 가지 생각을 했을 것) 선이 그어진 느낌.


은희→ 영지 : 닮고 싶은 어른. 나의 생각을 공감해 주는 유일한 어른. 조용하지만 바른 길로 가게 도와주는 사람.


[내가 생각하는 명장면]

은희: 선생님

영지: 응?

은희: 제가 불쌍해서 잘해주시는 건 아니죠?

영지: 바보 같은 질문엔 답 안 해도 되지?

은희: 선생님은 자기가 싫어진 적이 있으세요?

영지: 응 많아 아주 많아

은희: 그렇게 좋은 대학에 다니시는데도요?

영지: (끄덕인다) 자기를 좋아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아. 나는 내가 싫어질 때, 그냥 그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해. 아, 이런 마음들이 있구나. 나는 지금 나를 사랑할 수 없구나, 하고. 은희야. 힘들고 우울할 땐, 손가락을 봐. 그리고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움직여. 그럼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데,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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