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친절한 금자씨>
친절하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생각나는 수식어가 있다. 단아하고 방긋방긋, 조신하다. 특히 여자가 친절하다고 했을 때 대체로 그런 이미지가 강하다. 감옥 밖에서 금자 씨가 줄곧 듣는 말은 '너 변했어'다. 과연 금자 씨는 친절하지 않았던가?
아니. 금자는 친절했다. 친절히 백 선생을 잡고 유가족들을 모아 복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자신에게 빠진 근식에게 친절히 자신의 몸을 내주었다. 유가족들이 백 선생을 죽인 뒤, 후일을 대비해 친절히 자신의 지문이 묻는 총을 같이 묻었다.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제니에게 친절히 통역할 자를 구해 자신의 말을 전했다. 그녀는 충분히 친절했다.
감옥에서 금자 씨로부터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이후 금자 씨의 복수에 도움을 준다. 나는 금자 씨가 철저한 계산을 통해 도움을 줬다고 느꼈다. 자신보다 빨리 형량을 채우고 나갈 수 있는 자들에 한해서 능력이 있거나, 자신을 좋아하거나 백 선생과 관련 있는 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빚을 만들었다.
전도사는 금자 씨에게 두부를 주며 이제 죄 같은 건 짓지 말라고 말한다. 금자 씨는 그의 말이 우습다. 복수를 위해 13년을 감옥에서 지냈고 이제야 출발선에 섰다. 금자 씨는 이미 백 선생을 잡아 죽일 것까지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죄짓지 말라니. 더불어 금자 씨가 나오자 전도사의 사람들은 자신이 마시던 커피를 바닥에 버린다. 하얗게 쌓인 눈 위를 더럽힌 사람들이 자신 보고 죄짓지 말라는 것을 들으면서 전도사가 위선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금자 씨도 자신의 아이 때문에 범행에 가담했었다. 결론적으로 아이는 죽었고 또 다른 아이들도 진짜 범죄자를 찾지 못한 채 죽어나갔다. 금자 씨는 원모의 부모에게 찾아갔을 때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손가락을 자른다. 금자 씨는 '나도 내가 마냥 피해자가 아님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라도 보여주고 싶을 것이다
누나라고 불러도 되냐는 근식에게 금자 씨는 거절한다. 더 이상의 인연과 친분은 금자 씨에게 불필요하다. 그냥 금자 씨라고 부르라는 금자 씨의 표정은 시큰둥하다. 근식이 자신에게 반하든 말든 나는 내 할 일만 하면 된다는 식이다.
친절해 보이면 뭐가 문제일까? 친절하면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친절한 사람이 이렇게 하는 건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저렇게 친절하고 착한 사람인데 나쁜 일을 하겠어? 금자는 자신이 하는 일이 살인이고 얼마나 나쁜 일인지 알고 있다. 그리고 친절하다는 이미지에 신물이 난다. 친절함 때문에 이 모든 게 시작된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친절함이라는 수식어를 빼고 싶어서 눈만 시뻘겋게 칠하고 다닌 것이다.
금자 씨는 기쁘기도 슬프기도 하다. 드디어 복수를 하게 됐다는 기쁨, 내가 13년 동안 준비한 복수가 막을 내렸다는 기쁨, 유족들에게 자신의 방식으로 위로를 할 수 있게 됐다는 기쁨. 하지만 금자 씨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자식을 잃은 사람으로서 고작 백 선생의 목숨이 유족들을 위로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삶의 목적이 끝났다. 그렇지만 과거를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슬퍼한다.
금자 씨는 피해자이지만 가해자이기도 하다. 백 선생을 숨겨두고 방관을 했으니까. 그런 금자 씨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범죄자인 백 선생을 죽였지만 아직 자신은 원모에게 있어서 가해자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죄책감을 없애기 위해 백 선생에게 복수를 했지만, 결국 금자 씨는 구원받지 못했다.
제니는 왜 손가락으로 숫자를 셌을까요? 용서하기 위해서? 아니면 용서하지 않기 위해서?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