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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구루 Jan 01. 2024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영화 <인터스텔라>

[자식을 위해 우주로 떠난 아버지 쿠퍼]

 이 감정은 어떤 감정일까? 감정을 논하기 전에 정말 쿠퍼가 오롯이 ‘자식’과 ‘후손’을 위한 선택을 한 것인지 볼 필요가 있다. 난 그렇지 않다고 본다.

 나사에서 일한 만큼 알 거 다 아는 쿠퍼가 딸에게 “내가 돌아왔을 때 우리가 동갑일 수도 있어”라고 말한다. 그 말은 머피가 말했듯 언제 돌아올지 그도 확신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쿠퍼의 선택 목적은 무엇일까?

쿠퍼는 이 세상, 정확히는 지구에 불만을 가진 이상주의자였다.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시기에, 하늘을 바라보고 우주를 갈망했다. 그러던 와중 그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난다. 심지어 그를 원하고, 현재로선 그밖에 할 수 없었으며, 지구를 위한 일이라는 명분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랑하는 가족은 결정을 망설이게 만드는 존재다. 때문에 우주로 가고픈 쿠퍼는 ‘자식을 위해서’라는 변명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마치 유일무이한 이유라고 합리화하고 싶은 것인지 반복해서 ‘어쩔 수 없어. 자식을 위해선 가야 해’의 태도를 취한다.

 이때, 쿠퍼의 감정은 죄책감벅참이다. 자신이 꿈꿔왔던, 현재 지구에선 터부시되는 일을 인류를 위해 할 수 있다는 벅참과, 가족과 헤어지는데 벅찬 감정을 느꼈다는 죄책감 등이 있다. 아마 머피가 울고 “네가 이러면 아빠 못 가”라고 말하는 쿠퍼의 마음속에선 ‘이건 내 이기심 때문이 아니야’를 되뇌고 있었을 것이다.

변명이라고 말했지만 쿠퍼의 이기심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의 선택은 그의 인생에서의 1순위와 2순위를 고려한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친구랑 ‘사랑’을 주제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사랑을 위해서 그 상대에게 배려하고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물음을 받았다. 또 친구는 인생에 있어서 1순위가 어떻게 ‘나’가 아니라 ‘사랑하는 상대’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해했다.

 나는 이 물음을 듣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또한 나를 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으로 인해 내 내면에서 혼자서는 채워지지 않는 것이 충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랑도 자신이 인생의 1순위여야 가능한 것이다. 다만 시점의 차이가 있다.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 즉, 나와 친구는 ‘미래의 나’가 1순위이기에 ‘현재의 나’가 행복한 사랑을 하기에 불안함을 느꼈다. 하지만 미래의 나조차도 충족해 줄 수 없는 것을 채워주는 상대를 만나면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쿠퍼도 본인이 1순위다. 때문에 그는 미래의 쿠퍼와 현재의 쿠퍼를 고려했을 때,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선택을 했다.


[거짓말을 밝힌 브랜드 교수]

 인류 존속을 위해 용감한 이들을 우주로 보낸 브랜드 교수. 그는 이미 난제를 풀어놓았지만, 이를 숨겨왔다. 그는 왜 죽음이 다가왔을 때, 이 진실을 머피에게 알려주었을까?

 이기심 때문이다. 아무런 죄책감을 남겨두지 않고 편안하게 죽고 싶다는 이기심. 이것 외에도 브랜드 교수는 계속해서 이기적인 선택을 해왔다. 그의 결정에는 타인에 대한 고려가 안 담겨있다. 쿠퍼와 확연히 다른 이기심을 펼친 인물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브랜드 교수의 1순위는 브랜드 교수 본인이 아니다. 그는 그저 1순위에 끌려가는 객체였을 뿐이다. 뛰어난 머리에도 불행한 삶을 살다 간 브랜드 교수를 보며 한 인물이 떠올랐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주인공, 엘런 튜링. 자기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채 연구를 한 두 사람에게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과학으로 인해 자신이 증명해 낸 결과로만 도출된다. 즉, 브랜드 교수는 반쪽짜리 결과를 인정하지 못했고, 자신의 인생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회피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을 버리고, 딸을 버리고, 인류를 버린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을 선택하고 싶었던 브랜드]

 사고로 연료와 시간 둘 다 낭비한 대원들은 남은 두 행성 중 하나만 선택하려고 한다. 계속해서 데이터가 오는 만 박사 행성과 확실한 데이터가 왔었던 에드먼즈 행성. 이때 쿠퍼는 만 박사 행성에 가자고 하지만 브랜드는 에드먼즈 행성을 고집한다. 그 이유는 에드먼즈와 연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브랜드는 계속해서 미래의 자신을 위해 현재를 희생했던 인물이다. 아버지를 따라 젊음을 연구에 투자했다. 그러나 그녀는 지쳐있었다. 불투명한 미래. 그뿐만 아니라 이렇게 우주에서 죽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그를 더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브랜드는 처음으로 감정을 따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곁으로 감으로써 앞서 말한 현재의 자신에게 집중하고 싶었다.

이때 그녀가 느꼈을 감정은 절박함, 고독함, 지긋지긋함, 초조함 등이다.


[거짓말을 한 만 박사]

 쿠퍼 일행보다 똑똑한 만 박사의 행성은 ‘부적합’이었다. 만 박사는 도착하자마자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절망에 빠졌다. 브랜드 박사의 계획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행성이 인간이 살 수 없는 환경이라는 데이터를 보내게 되면, 만 박사는 그곳에서 홀로 죽게 된다.

 가족도 소중한 사람도 없었던 만 박사는 자기 자신만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현재든, 미래든 1순위인 자신을 위해 이기심을 부린다. 바로 거짓으로 데이터를 보낸 것이다. 사람들이 이곳이 적합한 곳임을 착각해 자신을 구하러 와주길 바라면서.


[90% 솔직해지기]

 거짓말이란 존재는 그냥 내뱉는 말보다 힘이 있기 마련이다. 평소의 말보다 의도와 목적이 명확하다. 초반에 나왔던 ‘90% 솔직해지기’는 쿠퍼가 자신을 위해 남인 브랜드에게 거짓말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가령 뼈 때리는 말이나 상대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은 말로 쿠퍼는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반면, 마지막에 나왔던 ‘90% 솔직해지기'는 브랜드를 위한 말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가고 싶은 브랜드와 그것을 들어주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쿠퍼. 이는 쿠퍼와 브랜드의 유대관계가 형성됐음을 보여준다.


[그들]

 아주 과학적인 영화 속 이과적인 인물들이 추구하기엔 너무 신적인 존재, 그들. 그들은 결국 미래의 본인들이었다. 광활한 우주 속에서 본성을 알아가고 있는 쿠퍼 일행은 각자 서로 다른 후회와 절망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후회로 인해 존재한다.

 주인공인 쿠퍼가 ‘그들'이 되어 과거의 쿠퍼에게 소리치는 장면은 판타지스럽지만 가장 공감이 많이 갔던 부분이다. 우리들도 가끔 인생에서 그들을 원한다. 실패를 겪기 전에 그들이 도와주길 원하고 위험의 증조를 알려주길 원한다. 그러나 그들의 입장에선 어떨까? 알려주려고 온갖 애를 다 쓰지만 결국 과거의 나의 선택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책장 뒤의 쿠퍼와 같은 감정을 갖는다. 후회와 자신에 대한 분노, 초조함, 목이 메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오늘의 질문]

우주에 가게 될 기회가 생긴다면 갈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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