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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구루 Jan 08. 2024

사랑이야, 성욕이야?

영화 <미성년>

[성숙하게 자란 미성년]

 아빠의 외도를 알게 된 주리는 엄마가 걱정된다. 분명 엄마는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데, 엄마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자신에게도 티를 내지 않는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주리에겐 의아하다.

 한편, 주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도망가기 급급한 아빠의 모습을 계속 부정했다. 사실 아빠가 그런 아빠가 아니길 바랐고, 주리는 아빠가 합당한 설명을 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병원에서 도망치는 아빠의 모습은 정말 추하고 못났다. 그때 주리는 알게 되었다. 아빠의 외도엔  그 어느 사정도 없었구나. 그저 모두를 기만한 어른이었을 뿐이었구나. 주리는 더 이상 아빠를 뒤쫓지 않았다.

 윤아는 무책임한 아빠와 철없는 엄마 아래에서 자랐다. 어른을 믿지 못하는 윤아는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미성년자로서 버거운 삶을 살고 있는데, 엄마가 상간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모르냐? 배가 불러오는데?

 윤아는 현실을 뼈저리게 알기에 엄마에게 애를 지우라고 닦달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환상 속에 사는 엄마의 서러운 울음이었다. 윤아는 답답하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있을 순 없다. 계속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윤아의 모습은 강인해 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위태로워 보였다.

 윤아는 사랑을 받고 싶은 17살이었다. 언젠가 엄마아빠가 자신을 돌아봐주는 상황이 왔으면 하고 바랐다. 그 일말의 희망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 이름으로 현금서비스를 받으려고 하는 아빠에게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보기도 하고 병실에서 자리를 지키기도 한다.

 가장 성숙해지려고 애쓰는 윤아였지만, 윤아도 역시 미성숙했다. 현실을 제일 잘 아는 윤아가 현실을 외면한 채, 학교를 그만두고 동생을 키우려고 했다. 그리고 동생이 죽자 받아들이지 못했다. 윤아는 그저 많이 지쳐있었다.

이제 그만하고 싶어.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거야?

[제일 성숙해서 가장 외로운 어른]

 영주는 주리에게 미안했다. 어른들의 일에 어린 주리와 윤아가 상처 입고 있었다. 영주는 어른으로서 버텨야 했다. 그래서 영주는 평소대로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맨발로 뛰쳐나온 것을 모를 정도로 이미 무너져있지만, 영주는 주리를 더 이상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이 너희들 인생에서 너무 중요한 시기야.

 어쩌다 상간녀이자 임산부를 밀쳐 조산하게 만든 영주. 조산하게 만든 것에 죄책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남편과 상간녀에게 내린 천벌이기를 바랐다. 이중적인 감정에 영주는 혼란스러웠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고백한 지 6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저는 사람을 다치게 하였습니다. 고의로 그런 건 아니지만 임신한 사람을 밀쳐서 그 사람이 조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선 다른 이유라고 하지만, 저는 여전히 죄책감이 듭니다. 그 아기는 제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워서 생긴 아기입니다. 저는 지금 이 상황이… 용서가 안됩니다.. 제 딸이 고등학생인데, 이 모든 일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마음이 너무 힘듭니다. 더러운 짓을 저지른 건 그 사람들인데… 제가 미워하는 사람들이 정말.. 나쁜 인간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아이가 아픈 게 하느님이 내린 천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영주는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없었다. 외도한 남편은 그 자격을 잃었고, 주리에게 기대기엔 영주는 주리의 엄마이자, 어른이었다. 그래서 영주는 혼자 울고, 혼자 힘들어했다. 본인을 위해, 본인이 살기 위해, 상간녀 미희를 찾아가기도 했다.

난 환자복 입고 얼굴도 좀 푸석푸석하고, 머리는 떡져서 누워있을 줄 알았어요. 그거 보려고 왔는데… 전복죽도 끓여서 먹이고, 안 되는 위로도 좀 해주고.. 그래야 내가.. 숨도 좀 제대로 쉬고.. 앞으로 사람구실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이 영화에서 가장 어른다운 사람, 가장 성숙한 사람. 하지만 영주는 정말 성숙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미성숙한 사람 속에서 가장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사랑받고 싶은 철없는 어른]

 미성숙한 사람은 어떠한 일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미희는 ‘책임’이라는 단어를 모르고 살았다. 미희에겐 그저 자신은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이고, 대원은 그런 자신을 받아준 백마 탄 왕자님이었다. 그녀는 마치 대원과의 행복한 삶을 위해 그동안 자신의 인생이 힘들었었다고 믿었다.

너는 엄마가 불쌍하지도 않냐? 엄마 진짜 여자로서 불행한 사람이야. 열아홉에 너 낳고 네 아빠 그렇게 되고 빚 갚고! 지금까지 너 키우느라고 내 인생 없었어, 알아?!! 너도 내 딸이잖아! 근데 어떻게 남들보다 나를 더 이해를 못 해줘!!!

 미희는 그 어느 죄책감도, 부끄러움도 없었다. 그녀는 당당하게 사는 게 인생의 모토였다. 당당하지 않으면 빚도 갚을 수 없었고, 식당을 할 수도 없었다. 그녀에겐 아무것도 없었기에 뭐라도 있어 보여야 버틸 수 있었다. 그래서 미희는 한없이 자기 연민을 하고, 한없이 염치가 없었다. 그렇게 자란 미희는 미안하다는 말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17살인 자기 딸처럼, 미안하다고 말할 상대에게 차라리 때리라고 한다. 남을 전혀 배려하지 못하는 그런 미희의 태도는 오히려 그녀의 처절한 삶을 보여준다.


[미성숙한 어른]

 책임을 지지 않는 또 다른 한 사람, 대원. 하지만 미희와 대원은 다르다. 미희는 ‘책임’을 몰라 책임지지 못했고, 대원은 ‘책임’을 알지만 회피한 사람이었다. 아내가, 딸이 자신의 외도를 알았다는 것을 알게 된 대원은 헐레벌떡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이런 미래까지 상상하지 못했고, 그저 현재의 짜릿함을 즐기려고 했던 것이다. 책임 없는 쾌락의 말로를 대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의사랑 통화했어요. 내가 옆에 있어줘야 하는데..
내가 지금… 하.. 좀 힘들겠지만, 지금은 우리가 시간을 가지고…

 대원은 그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했다. 만약 외도를 들키지 않고 미희가 아이를 낳았더라도, 대원은 책임지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책임을 회피한 한 가정의 가장은 모든 사람을 기만하고, 모든 이에게 버려졌다.


[오늘의 질문]

대원은 이후에 어떤 선택을 할까요? 계속해서 영주에게 용서를 빌고 가정을 유지하려고 애쓸까요? 아니면 미희에게 갈까요? 그것도 아니면 아무런 선택을 하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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