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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구루 Jan 22. 2024

사과를 받는데요, 전 왜 도망가야 돼요?

영화 <한공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제일 배려하는 세상]

 공주는 보호받지 못한 아이였다. 도망치듯 전학을 가고, 보고 싶은 엄마는 더 찾아오지 말라고 하고, 이제껏 연락 없던 아빠는 돈을 받고 탄원서에 사인하기를 종용했다.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던 공주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배려받았다.

불륜을 들킨 조 여사는 자신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는 공주에게 짐을 풀라고 말한다.

왜 어른들이 자기 집 장만하려고 기를 쓰는 줄 아니? 그렇게 맨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으면 불안해서 살 수가 없어. 내가 네 속사정은 잘 모르겠는데, 뭐, 알 필요도 없고.. 짐 풀어. 내가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 아니야.

 그렇게 불안에 날카로워진 공주는 조 여사의 배려로 짐을 풀고 자리를 잡아나갔다. 공주의 숨통이 작게나마 트인 것이다. 자리를 잡은 공주는 나아가기 위해, 계속 다가왔던 은희에게도 조금씩 곁을 허락해 줄 수 있었다.

 아카펠라부에 들게 되고, 노래도 하고 수영도 하며 나아지던 공주. 그녀에게 배려를 해준 두 번째 사람이 은희다. 은희는 공주가 성질을 부리고 거리를 둬도 공주에게 손을 뻗었다.

나한테 왜 그래? 왜 잘해주냐고
몰라, 이유가 어디 있냐? 그냥 좋으니까 그런 거지

 키스를 해봤냐고 물어보는 순수한 은희에게 자신의 어둠을 눈치챌까 전전긍긍하면서 공주는 43명과 키스를 해봤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때 묻지 않은 은희는 그 대답에 그저 웃으며 뽀뽀를 해주었다.

(쪽) 마흔네 번째. 44는 재수 없으니까 한 번 더 (쪽) 이렇게 매일 해서 천 번을 채워주리라!

 지옥 같은 43번의 키스의 감각을 은희의 순수한 행동으로 공주는 치유받을 수 있었다. 공주의 아픔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만, 공주의 아픔을 몰랐던 사람들은 공주를 그 자체로 바라봐주었다.


[결국 물에 젖은 나비가 된 공주]

 배려는 은근하고 조심스럽다.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감각이다. 하지만 욕망은 뚜렷하고 직선적이며, 사포처럼 거칠다. 알듯 모를듯한 배려에 공주는 실낱 같은 희망을 얻어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여러 욕망이 공주에게 뻗쳤다. 물욕에 빠진 아빠는 가해자에게 돈을 받고 공주에게 탄원서에 사인하라고 시키면서 이건 세상이 더러운 탓이라 말한다. 가해자의 부모는 공주를 찾아와 공주를 비난하며 사인을 받아 가려는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거칠고 날카로운 욕망을 온몸으로 받은 공주는 더 이상 배려에 기대어 살아갈 수 없었다.

공주야 왜 그렇게 수영을 열심히 해?
다시 시작해 보고 싶었거든. 내 마음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극복할 자신을 위해 수영을 시작했던 공주. 공주는 만약 괴롭고 지쳐 한강에 떨어지는 선택을 하더라도, 그 선택을 바꿀 힘을 얻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노력의 시간이 축적되기 전, 시련이 너무 일찍 찾아왔다. 그렇게 공주는 서서히 가라앉았다.


[오늘의 질문]

마지막 장면은 상상이었을까요, 실제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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