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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구루 Nov 10. 2023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영화 <아가씨>

[관계의 솔직함]

뭐든 훔쳐도 되지만 거짓말만 하지 마
아가씨는 수줍게 떨며 앉았고 신사분은 짓궂게 다가가고 눈치 빠른 하녀는 두 상전을 위해 자리를 비켜줬고 잘들하고 있어, 숙희야. 모두가 빌어먹게도 제 역할을 잘하고 있어. 니미럴

 옥주가 숙희인 줄 알고 있었던 히데코. 숙희의 행동은 눈에 빤했다. 무엇을 탐내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너무나 잘 보였고 그만큼 투명한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숙희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히데코는 눈치채지 못할 수 없었다.

 숙희는 아가씨 히데코가 정말 신경 쓰였다. 야한 거 하나 모르는 아가씨. 인형 같은 아가씨. 가짜에게 마음을 빼앗긴 가여운 아가씨. 그런 아가씨를 사랑하게 된 숙희. 계속 갈등한다. 아가씨를 팔아넘겨야 하는데.. 처음 잠자리를 가졌을 때, 나를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라는 히데코 아가씨의 말에 차마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말에 완전히 대답하지 못했다.

 여전히 거짓말하는 숙희가 미운 히데코. 날 좋아하면서 솔직하지 못한 아이. 날 진정으로 걱정해 줘서 좋아하게 된 아이. 하지만 히데코는 자신이 좋아한다고 바보처럼 숙희의 덫에 걸려들고 싶지 않았다. 그 덫은 히데코의 덫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숙희에게 상처받고 숙희가 상처받느니 죽음을 택하기로 한 히데코. 밧줄을 들고 죽은 이모가 발견됐던 벚나무로 향했다.

 결국 숙희는 울면서 다 말해버린다. 이 관계는 숙희의 솔직함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도둑의 딸. 그리고 아가씨를 사랑하게 된 타마코. 이 솔직함이 없었다면, 이 이야기는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욕망]

 숙희는 도둑의 딸이지만, 도둑의 삶을 살고 있지 않는다. 젖이 나왔다면 제 아이만 물려주지 않을 거라던 숙희는 자신을 통해 무언가 가치 있는 걸 얻는 게 중요했다. 그런 그녀가 히데코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녀의 욕망으로부터였다.

여지껏 내 손으로 씻기고 입힌 것들 중에 이만큼 이쁜 것이 있었나?

 너무도 고운 히데코가 숙희의 욕망을 깨웠다. 그 욕망은 품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고 가지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서 동시에 죄책감을 느낀다. 아무리 내 손으로 곱게 만들면 뭐 해. 히데코는 미쳐버렸다는 허상으로 인해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될 텐데. 그 사이 숙희의 욕망은 사랑으로까지 번진다. 어디서부터 번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사탕을 물고 키스를 가르쳐줬을 때 사랑의 존재가 있었을 뿐이다.

 히데코는 정상적이지 않은 집안에서 길러졌다. 음담패설을 하지 않으면, 말을 듣지 않으면 맞고 학대당하는 집안에서 그녀는 책으로 사람을 배웠다. 자신을 능욕하는 눈빛만 보았던 히데코는 책에서 본 동무에게서의 감정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그런 감정은 평생 알지 못할 것이라고 깨달아버린 그녀는 욕망 없이 자라게 되었다. 그리고 숙희를 만났다. 자신을 보는 눈빛이 여타 사람들과 다른 숙희. 숙희는 히데코의 욕망이 되었다.

책에 나오는 동무라는 것은 이런 것일까? 얘 왜 이럴까 왜 이렇게 쿵쾅거리면서 제가 화났다는 걸 표시내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한숨 쉬고. 백작하고 마주칠 때마다 숙희의 눈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당신 싫어요.


[오늘의 질문]

백작은 정말 히데코를 사랑해서 결혼하자고 했을까요? 백작이 마지막까지 초야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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