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라 드 브레트빌과 우먼스 빌딩의 페미니스트 디자인이 준 질문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때, 자주 소환하는 장면이 있다. 다빈치의 “마지막 만찬”을 올려다보던 순간이다. 그때 나는 600년 전 그곳에서 그림을 그렸을 다빈치의 생생한 존재감에 압도당했다. 그림에 감동을 받은 게 아니었다. 그곳에서 15분 정도 트램을 타고 가면 나오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곳 디자인과에서 필수과목으로 수학을 배우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다빈치가 정립한 원근법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때 내가 목격한 연결감을, 뿌리가 있다는 감각을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확실한 건 너무 부러웠다. 나도, 역사가 가지고 싶었다.
역사는 특권이다. 역사가 있다는 건 내가 이어나갈 이야기의 어디에 내가 서 있고, 그렇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 할지 안다는 뜻이다. 나의 많은 부분이 정립되어 가던 시절 나는 늘 바닥에서 5cm 정도 떨어져 있다는 감각에 시달리곤 했다. 나에겐 발 붙일 땅이 없다는 감각. 그래서 나는 부러움을 느꼈고, 내가 부러움을 느꼈다는 게 너무 분했다. 그래서 그게 뭔지 잘 모르면서도 약간의 오기를 부리며 말하고 다녔다. 나는 ‘오늘,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고.
내가 뱉은 말의 의미가 뭔지 조금씩 감이 잡히기 시작한 건 아주 최근의 일이다. 작년부터 영어로 된 (그 점이 못내 분하지만) 디자인계의 페미니즘-퀴어-탈식민-장애-반자본주의 담론을 닥치는 대로 읽고 있는데 그 안에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곳에는 ‘역사가 없는 디자인은 어떻게 디자인 역사에 포함시킬지' 따져 묻는 사람들이 있었고, 주류 디자인 역사론에 내포된 가부장제와 차별을 짚어내고 이를 무효화시킬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역사와 언어의 공백을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상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세계가 열리는 기분이었는데 동시에 너무도 후련하고 반가운 말들이 많았다. 그리고 나에겐 모든 글이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사는 사회의 기저에서부터 끓어오른 운동을 이해하고 그 인식론을 바탕으로 디자인의 개념을 새로 쌓아 올려야 한다. 동료와 함께.
글을 읽는 만큼 내 머릿속에서 굴러다니는 질문도 늘어난다.
나는 요즘 이런 질문을 머릿속에서 굴려보며 고민한다.
가령, 탈코 운동은 디자인이 될 수 있을까?
가령, 역사의 밖에서 역사 쓰기란 어떻게 가능한가?
가령, 한국에서? 가능할까?라는 지겨운 질문을 어떻게 없애버릴 수 있을까?
…
이게 뭔 소린가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차근차근 풀어보려고 한다.
우선 이번 글에서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해. "가령, 탈코 운동은 디자인이 될 수 있을까?'
70년대 초 미국에서는 제2물결 여성운동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당시 여성들이 조직하고 운영하던 다양한 활동을 모아 소개하는 ‘The New Woman’s Survival Catalogue’(1973)는 224페이지에 달하는데 매 페이지마다 3-4가지 장소나 잡지가 소개되니 적어도 거의 900여 곳에 달하는 크고 작은 조직이 존재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 시기를 이야기할 때 거론되는 ‘대표' 페미니스트들의 이름이 있기는 하지만, 이 현상은 몇몇 특출 난 리더의 카리스마 따위로 이뤄낼 수 있는 성취가 아니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의식-고양’(consciousness-raising / CR) 모임이다. 한 주에 한 번, 여성들은 누군가의 부엌이나 거실에 모여 위계를 내려놓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각자가 삶에서 겪은 시시콜콜한 불평등을 공유하던 자리는 머지않아 어린 시절 겪은 친족성폭력이나 강간 등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해 내면을 곪게 했던 상처들을 드러내고 치유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그야말로 ‘세상이 터져버리고’만 것이다. 그곳에서 여성들은 생존자이자 투쟁가로 다시 태어났다. 그래서 이 시기 페미니스트들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고 외친 것이다.
뉴욕에서 시작된 의식-고양 모임은 곧 전국으로 퍼져 1973년에 이르러서는 각 지역 의식-고양 모임에 참여하는 여성이 약 100,000명에 달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던 디자이너 쉴라 르브랑 드 브레트빌Sheila Levrant de Bretteville도 이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그는 이 시기 “디자인이 태도라면 태도를 바꾸어야 새로운 형태를 탐구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제2물결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디자인의 형태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주디 시카고 Judy Chicago와 함께 캘리포니아 프레즈노에서 여성을 위한 미술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 미리엄 샤피로 Miriam Shapiro로부터 의뢰받아 디자인한 ‘에브리우먼 Everywoman’(1970)의 편집 디자인이 그 예시다. 쉴라는 모두의 이야기를 존중하는 '의식-고양' 모임 형식을 반영해 편집디자인 구성 상 위계를 없앴다. 모든 꼭지에 같은 분량의 지면을 할애한 것이다. (참고: 인물의 이름이 2회 이상 등장할 경우 성이 아닌 이름으로 표기했다)
다수의 참여자와 함께 상호작용하며 디자인을 완성해가는 공동체적 접근법을 도입한 ‘핑크!(Pink!)’ 역시 자발적으로 모인 모두의 이야기가 같은 무게로 존중받는 의식-고양 모임을 닮았다. 30인치 정사각형 포맷으로 만들어야 했던 작업에서, 쉴라는 핑크를 선택하고 지면을 36조각으로 쪼개 다양한 연령과 배경의 여성에게 자신에게 핑크라는 색이 어떤 의미인지 표현해주길 부탁했다. 몇몇 조각은 빈채로 두었는데 지면에 담지 못한 더 다양한 뜻을 위해 남겨둔다는 의미였다.
그는 참여자들의 작업을 디자인으로 정돈하지 않는다. ‘단순화는 우리 삶에서 체현되는 복잡성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바로 앞 세대가 ‘중립’과 ‘객관성'을 이상향으로 두고 헬베티카와 단순한 기하학적 모양을 적극 활용하던 ‘인터내셔널 스타일'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관점이었다. 간결성 simplicity과 형태의 명확성 clarity을 추구하는 모더니스트 디자인은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배제할 수밖에 없다. 쉴라는 그 한계를 지적하며 디자이너는 이러한 ‘비주얼 파시즘 visual fascism'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스타 디자이너 서사가 여성이나 사회적 소수자를 누락해왔다며 디자인은 협업임을 강조하는 페미니스트 디자인 관점의 시각적, 방법론적 확장으로도 읽어볼 수 있다. (여담: 쉴라의 예일대 교수 임용시 모더니스트 디자인의 대표주자였던 폴랜드 Paul Rand가 펄쩍뛰며 사직서를 제출하고 그것도 모자라 친구인 아르민 호프만 Armin Hoffman에게도 사직서를 제출하기를 요청했다는 일화에서 당시의 긴장감을 짐작할 수 있다. 엘런 룹튼 Ellen Lupton과의 인터뷰 마지막에서 쉴라가 한 말도 인상적이다. "Good design is feminist design". 유명한 문구인 "Good design is good business’를 상기시킨다.)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기 위해 전기회로의 연결과 저항 개념을 활용하곤 했던 쉴라는 디자인 작업을 통해 삶의 복잡성을 디자인과 연결시킴으로써 주류 문화에 저항했다. 그가 1973년 예술가 주디 시카고 Judy Chicago, 평론가 알린 레이븐 Arlene Raven과 공동 창립한 여성을 위한 학교 ‘우먼스 빌딩 Women’s Building' 활동은 그의 연결과 저항을 더욱 잘 보여준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의식-고양 모임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탐구했으며 기능 function이 아닌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감정 feeling to form에서 형태를 끄집어내는 연습을 했다. 이들은 전시나 작업을 공공공간에 적극적으로 침투시켰다. 제2물결 페미니즘이라는 새로운 태도를 수행함으로써 새로운 형태, 그러니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디자인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쉴라가 진행한 '사적인 대화와 공적인 선언 Private conversations and public announcement' 수업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공간을 지도에서 찾고, 그에 관한 포스터를 만든 후 그 포스터를 그 장소에 붙이는 과제를 해야 했다. 위 사진은 당시 학생이었던 헬렌 리 Helene Ly의 작업으로 캘리포니아 시내 곳곳과 차이나타운에 설치 됐다.
몇 해 전에 페미니즘 디자인 관련 강연을 청탁받고 ‘페미니즘 디자인은 없습니다만…’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었다. 거기서 나는 ‘페미니즘 디자인’이라는 것을 스타일적으로 규정할 수 없으며 페미니스트 디자이너들이 더 많이, 더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그래야 다양한 시도가 가능할 테니까. ‘페미니즘 디자인’이라 불릴 만한 것은 그 시도들 위에서 실현될테니까 말이다. 물론 세상엔 '여혐 디자인'이 가득하다. 여성을 묘사할 때 가슴과 엉덩이를 부각하거나 치마를 입히는 것, 직업을 표현할 때 성별 고정관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 여성을 표현하기 위해 핑크를 사용하는 것 등. 왜 '페미니즘 디자인'에 대한 강연을 청탁하는 지 모르는 바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야기하느 건 성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여혐 디자인을 비판하는 것이지 페미니즘 디자인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또 이를 피해 디자인한다고 해서 꼭 ‘페미니즘 디자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페미니즘 디자인은 없습니다만…’이라는 강연 제목은 그래서 나왔던 것이다.
얼마 전 공공기관의 홍보물 성별영향평가에 참여하면서도 비슷한 딜레마에 빠졌다. 그곳에서 100 건이 넘어가는 이미지를 2-3분 안에 평가하며 ‘캐릭터의 성비가 반반이어야 한다’, ‘여성 캐릭터의 가슴이 부각되지 않게’, ‘핑크 말고 다른 색’, ‘치마 말고 바지’를 반복하는 게 너무 답답했다. 답답함이 극에 치달은 건 지하철 캐릭터가 장애인들과 친구라며 휠체어에 앉아 웃고 있는 ‘캠페인' 포스터를 평가할 때였다.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는 게 시위가 되는 곳에서 캐릭터의 성비를 맞추거나 여성 캐릭터가 핑크가 아닌 초록이면 ‘성별 영향’에는 지장이 없으니 괜찮은 ‘홍보물’인 건가? 기획부터 잘못되고, 설계부터 잘못된 이미지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그런 부분을 지적하면 ‘지금 이 자리와는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나는 어떻게 그게 동떨어진 이야기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회 구조는 그대로인데 여성 개개인이 해방되는 시나리오는 불가능하다. 나는 한국에서 페미니즘과 디자인을 엮어 말하는 담론에 매우 불만이 많다.(3박 4일 얘기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시각적 형태나 디자인이 다루는 주제에만 논의가 머물 때 가장 갑갑하다.
그러나 쉴라의 작업과 우먼스 빌딩 사례를 보고 ‘아닛 페미니즘 디자인 있었네ㅋㅋㅋ’라는 생각이 들면서 ‘페미니즘 디자인은 없습니다만…’ 강연 제목이 민망하게 느껴졌다. 그 당시 나는 페미니즘과 디자인을 떨어뜨려 생각하는 데 그쳤다. 쉴라는 그 둘이 한 몸처럼 작동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페미니즘 디자인'이라는 카테고리는 성립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카테고리의 경계는 무엇을 기준으로 나눌 것인가? 더 적확한 표현은 ‘페미니스트 디자인’이다. ‘페미니즘 디자인'이라는 프레임에서 디자이너라고 시각적 작업에 한정해 이야기해야 한다면 쉴라의 경우 우먼스빌딩 활동은 제대로 논의될 수 없다. 그는 그의 시대의 페미니스트 인식론을 활용해 ‘새로운 태도로 새로운 형태’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디자인-하기’의 범주를 넓혀 페미니스트 디자인이 움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했다. 페미니스트 디자인이라는 것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디자인 결과물뿐만 아니라 디자인의 과정과 환경, 맥락을 모두 살펴야 한다.
시각적 요소에만 집중하는 답답한 "페미니즘 디자인"의 해악은 ‘페미니스트 디자이너'의 범주를 한없이 좁게 축소시킨다는 점에 있다. 굳이 페미니즘을 주제로 디자인을 하지 않아도 (그런 기회가 모두에게 가지도 않고, 사이드 프로젝트로 힘들게 자신을 증명할 필요도 없다)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디자인 과정의 가부장적 관습을 파악하고 새로운 접근법을 실험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많다. 꼭 쉴라처럼 학교를 설립하지 않아도 된다(기억해 70년대와 지금의 부동산 가격은…). 클라이언트나 동료와의 피드백/논의 방식을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개선한다거나, 협력자를 구할 때 좀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기회가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한다거나, 디자인에 절대적 룰이 있다는 태도를 버리고 ‘삶의 복잡성'을 포괄하는 시도를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각자의 위치와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 - 만연한 가부장제에 균열을 내는 시도 - 은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찾으면 반드시 있다.
이러한 관점은 디자인계의 모두에게 페미니스트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그러니까 페미니스트 디자인은 그것의 전문가에게 맡기고 나는 한발 물러나 팔짱 끼고 응원하면 되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굳이 그걸 어떤 스타일로 양식화 해서 일부의 영역으로 가둬버릴 필요가 있을까? 이름을 남기지 않은 수많은 여성들의 의식-고양 모임을 통해 제2물결 페미니즘의 움직임이 만들어졌듯 각자 자기 자리와 맥락에서 페미니스트로 행동하는 디자이너가 많아지는 편이 몇몇의 소위 ‘페미니즘 디자인’보다 훨씬 큰 변화를 가져오리라 생각한다.
이 질문이 떠오른 지점을 보여주기 위해 멀리 다녀왔다. 1970년대의 캘리포니아까지. 앞서 살펴보았듯 쉴라는 디자이너로서 동시대 페미니즘을 운동에 동참했다. 그의 실천은 디자인 지면에 머무르지 않고 삶과 구조를 바꿔내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디자인-하기의 범주로 포괄하여 이해할 때 비로소 오늘에도 유효한 앎으로 전달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탐구할 수 있는 동시대의 새로운 태도, 즉 우리의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구호와 우리의 ‘의식-고양 모임'은 무엇일까? 그곳에서 우리의 새로운 형태가 탄생할 테니 말이다. 그러다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이 바로 ‘탈코 운동은 디자인이 될 수 있을까?’였다. 예를 들어 포장을 벗기고 본질을 드러내는 디자인으로 적용될 수 있을까? 디자이너의 쓸데없는 잘난 척과 에고를 덜어낸 디자인? 현대의 미감에 도전하는 디자인? 꼭 탈코 운동이 아니어도 괜찮다. 동시대에 사는 우리가 우리의 움직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거기서 우리는 어떤 가치를 발견할까? 그건 우리에게 어떤 디자인을 가능케할까? 그러니까, 오늘,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페미니스트 디자인은 무엇일까? 나는 가능한 많은 디자이너들과 함께 이 논의를 이어가고 싶다.(끝)
우먼스 빌딩의 일원이기도 했던 작가 비아 로우 Bia Lowe의 디자인 작업. 그는 ‘친족성폭력에 대한 침묵을 깨는 것만이 친족성폭력을 멈출 수 있다’는 기조 아래 친족성폭력 생존자들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기획된 전시 'Bedtime Stories' 포스터를 더 이상 작은 여자아이 혼자 친족성폭력이라는 거대한 짐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담아 디자인했다. 'Oral Herstory of Lesbianism'퍼포먼스를 위한 포스터는 퍼포먼스 출연진이 포토부스에서 ‘레즈비언’을 말하는 장면을 촬영해서 디자인에 활용했다.
우먼스 빌딩 더 알아보기
(책) Sondra Hale&Terry Wolverton, 2011, From Site to Vision: The Woman’s Building in Contemporary Culture, Otis College of Art and Design
(책) Terry Wolverton, 2002, Insurgent Muse: Life and Art at the Woman’s Building, City lights Publishers
(영상) ‘Doin’it in Public’ 전시를 위해 Otis College에서 진행한 인터뷰 시리즈 https://vimeo.com/user18202054
(이미지) Center for the Study of Political Graphics 디지털 아카이브 http://collection-politicalgraphics.org/results.php?term=+Woman%27s+Building&module=objects&type=keyword&x=7&y=9
쉴라 르브랑 드 브레트빌 더 알아보기
(웹사이트) http://sheilastudio.us
(영상) Insights 2018: Sheila Levrant de Bretteville, Yale University/SheilaStudio, 2018, Walker Art Center https://www.youtube.com/watch?v=QY8d80tGal4
(블로그) Izzy Berenson & Sarah Honeth, 2016, Clearing the Haze: Prologue to Postmodern Graphic Design Education through Sheila de Bretteville, Walker Art Center, https://walkerart.org/magazine/clearing-the-haze-prologue-to-postmodern-graphic-design-education-through-sheila-de-bretteville-2
(인터뷰) Meg Miller, 2017, Riposte magazine meets graphic designer Sheila Levrant de Bretteville, https://www.itsnicethat.com/features/riposte-9-publication-23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