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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너머 Oct 22. 2023

어느 휴일의 페낭 버스

페낭에서 버스타기

  일요일 오전에 점심도 먹고 겸이 축구화를 사기 위해 거니프라자라는 쇼핑몰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조지타운으로 나갈 수 있는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다. 페낭에 와서 얼마 동안은 거리에서 버스를 거의 못 봤다.  좀 적응이 되니 눈에 띄지 않던 버스도 종종 보이고 좀 멀리 이동할 땐 버스와 이곳에선 그랩이라 부르는 택시를 적절히 이용하고 있다.      

  페낭에서 버스를 이용하려면 Pulse 라는 앱을 깔아야 한다고 먼저 와서 자리잡은 엄마가 친절하게 휴대폰에 앱을 깔아 주었다.  페낭 시내 공공버스 노선과 실시간 버스의 위치를 알려주는 앱이다.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는 시간을 알려 주기 때문에 차가 없는 사람들에겐 구글맵과 함께 사용하면 매우 유용하다.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는 시간을 모르면 뜨거운 햇빛 속을 걸어가서 땀을 줄줄 흘리며 정류장 의자에 앉아 삼십분 이상을 기다리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휴대폰에 깔아놓은 앱이 밖에 나오면 잘 작동하지 않을 뿐아니라 버스가 도착하는 시간도 갑자기 왔다갔다 바뀔 때가 많다. 다른 사람들은 잘 작동한다는 걸 보니 아마도 내가 쓰는 휴대폰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데이터 사용 요금이 저렴한 걸 쓰고 있어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서 30분 후에 버스가 도착한다는걸 확인하고 나왔으니 남은 시간을 정류장 근처 쇼핑몰 안에 들어가 더위를 식히며 앱을 다시 열었다. 그러나 오늘도 밖에 나오니 한없이 로딩 중이라는 신호만 돌아가는 앱. 휴대폰을 종료 시켰다가 다시 켜도 접속이 안된다. 앱을 지우고 다시 깔아볼까 하다가 시간이 다 된 것 같아 밖으로 나가니 버스가 이미 정류장에서 출발하고 있다.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와  앱을 다시 설치하고 로그인을 하니, 우리가 타려는 101번 버스가 10여분 후면 도착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번에는 조금 미리 나가서 기다리자 싶어 다시 뙤약볕에 정류장으로 가니 전광판에 20분 후에 버스 도착이 떠 있다. 짜증이 밀려온다.  그나마 정류장의 전광판은 거의 정확한 편이다.  다시 햇빛 속을 걸어갔다  오는 것도 힘들어 그냥 정류장에서 20분을 기다리기로 한다. 한낮의 버스 장류장은 그늘이 있지만 가만히 앉아 있어도 다리에서 땀이 발등으로 뚝뚝 떨어져 내린다.      


 버스 정류장이 큰 사거리 가까운 곳이어서 지나던 차들이 멈췄다 지나가길 여러번 반복하는 사이 겸이가 덥다고 보채기 시작한다.  그랩을 부르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바로 길 건너 보이는 노란 담장으로 둘러싸인 초등학교 건물을 가까이서 휴대폰으로 찍어본다. 아침마다 30층 발코니에 앉아 차를 마시며 내려다 보던 예쁜 로컬 초등학교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눈이 부시게 밝다. 가방에서 썬그라스를 꺼내는데 어디선가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드는 걸 보니 버스 올 때가 가까워졌나 보다. 그들의 앱은 잘 작동되는 게 틀림없다. 다음 달부터는 휴대폰 요금제를 45링깃으로 올려야 겠다고 마음 먹는다. 지금은 35링깃(한달에 만원정도) 요금제를 쓰고 있다.  휴대폰 요금이 정말 싸다.     

     

  버스에 오르며 목적지를 말하면 기사가 요금을 알려 준다. 거리에 따라 요금이 조금 차이가 난다. 요금을 내면 기계에서 티켓이 인쇄되어 나온다.  다섯 정류장 쯤 가면 되는 거니프라자는 1인당 1링깃40센트(420원)인데 이곳에서는 거스름돈을 주지 않아 미리 잔돈을 준비하지 않으면 그냥 다 내고 타야한다. 사실 초등학생은 더 적게 받는다는데 탈 때마다 두명 요금을 3링깃 받는 기사도 있고, 2링깃 받는 때도 있었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버스에 빈자리가 없다. 잠시 후 버스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던 겸이가 다리가 아프다며 결국 짜증을 낸다.  금방 내릴거라고 아이를 달래는데 신호 대기가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신호를 받고 다시 출발한 버스가 이번엔 주유소로 들어간다. 버스가 주유기 옆에 정차를 하고 운전기사가 차에서 내리자 사무실에서 공책을 한 권 옆구리에 끼고 직원인 듯한 남자가 느릿느릿 걸어오더니 운전석으로 올라와 공책에 뭔가를 적고 다시 차에서 내려 운전기사와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는 다리 아프다고 징징거리고 있는데 아직 주유는 시작도 안하고 두 남자가 수다?를 떨고 있다. 드디어 직원이 아닌 운전기사가 주유기를 들고 버스에 연결하자 계기판의 숫자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노란 제복의 운전기사가 다시 운전석에 올라와 시동을 걸기까지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차 안의 승객들은 아무도 말이 없다. 그나마 이 나라는 어딜가나 공공시설의 에어컨은 추울 정도여서 다행이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는 사람은 없고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또 올라온다. 바퀴가 달린 장바구니를 든 중년의 인도 여자가 버스에 오르며 기사에게 뭔가 큰소리로 물어보다가 버스비를 내고 표를 받는다. 물건이 가득 들어 무거워보이는 빛 바랜 장바구니는 윗부분이 찢어져있다. 바구니의 바퀴를 밀며 그녀가 버스 안 쪽으로 들어오자 사람들이 거리를 좁히며 비킨다. 뒤로 더 들어갈 자리가 보이지 않자 그녀가 내 앞에서 멈춰섰다. 뒤 따라 들어온 좀 젊어보이는 인도 남자와 뭔가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조용하던 버스 안이 그들의 대화로 시끄러워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큰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그녀 옆 쪽에 있는 남자에게 뭔가를 물어본다. 그 남자가 고개를 살짝 흔들자 그녀가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야에뺀?” 이라고.... 내 귀에는 들렸다. “쏘리?”라고 말하려는데 그녀가 내 표정을 보더니 그녀 뒤 쪽에 배낭을 손에 들고 서 있는 머리가 노란 늙은 서양 남자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 그가 기다렸다는 듯 셔츠 윗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펜을 받아들고 돌아서서 인도 남자와 계속 말을 주고 받으며 버스티켓 위에 뭔가를 적는다. 볼펜을 돌려주고도 계속 이야기가 이어지는 사이 다음 정류장이 다가왔다. 그녀는 갑자기 버스기사에게 뭔가 소리를 질렀고 버스가 멈추자 느릿느릿 가운데 문쪽으로 장바구니를 밀고 가서 천천히 버스에서 내렸다. 보도에 내려선 그녀가 버스 안을 향해 또 뭔가 소리를 질렀다. 기사가 알았다는 듯  문을 닫고 출발했다. (물론 버스 안에는 내릴 때 누르는 벨들이 설치되어 있다) 두 정거장을 더 가서 우리도 버스에서 내렸다. 다시 5분 쯤  따가운 햇볕 속을 걸어 차 들이 북적이는 큰 길을 무단 횡단(큰 사거리가 아니면 신호등이 없다) 하여  드디어 시원한 거니프라자 안에 들어설 수 있었다.     

   사실 이 더위에 아이를 데리고 걸어갈 생각도 못하지만 구글맵을 보니 걸어도 30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이고 택시를 타면 십여 분이면 올 수 있는 곳인데 집에서 나온지 한 시간 반이 지났다. 버스는 당분간 안타는 걸로.  시원한 쇼핑몰로 들어와 점심도 먹고 아이가 원하는 축구화도 사고 차도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올 때는 마침 비도 내려서 그랩을 잡아 타고 왔다. 그랩도 앱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목적지를 찾아 선택하고 confirm pick-up을 누르면 요금이 제시된다.  차가 선택되면 차 번호와  지도 위에 우리가 있는 곳까지 오고 있는 경로와 소요시간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주말 저녁이라 그랩비도 비싸게 올라왔다. 평소에는 12링깃(삼천오백원) 쯤 나오는데 오늘은 17.90링깃(5천4백원)에 잡혔다. 창가에 흘러내리는 빗방울 사이로 하나 둘 불빛이 켜지는 이방의 거리를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 젊은 그랩 기사가 켜 놓은 라디오에서 반가운 한국 노래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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