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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너머 Oct 22. 2023

쓸쓸한 날엔 바투페링기

  여름방학 2주 동안 동생과 조카가 다녀갔다. 그들이 와 있는 동안 차를 빌려 여기저기 페낭 곳곳을 돌아다녔다. 페낭 공항에서 피붙이를 배웅하고 돌아서는데 눈물이 났다. 우울한 마음이 가시지 않던 토요일에 아이가 축구를 하고 싶대서 축구장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차가 없을 때는 항상 겸이 친구네 차를 타고 같이 갔었는데, 가면서 원이 엄마에게 전화를 해도 통화가 안된다. 축구장에 도착해서 보니 원이네 차가 없다. 원이 없어도 축구를 하겠냐고 물으니 안 하겠단다. 학교에서도 그렇고 아직 한국 친구들에게 너무 의지하는 게 문제다. 운동장 근처에 가서 원이가 있는지 살펴보고 실망한 표정으로 아이가 그냥 돌아온다. 속에서 화 낼 일도 아닌데 치밀어 오르는 마음을 누르고 아무말없이 아이를 태우고 바투페링기로 갔다. 


 노을 맛집으로 유명한 바투페링기 해변에 있는 스타벅스는 반대편 문으로 나가면 바로 모래밭이 있는 해변으로 나갈 수 있다. 민소매를 입고 왔더니 커피숍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에어컨 냉기가 소름을 돋게 한다. 커피와 승겸이가 마실 쵸콜렛 음료를 주문하고 실내에 좀 앉아 있자니 추워서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커피를 들고 바닷가로 나갔다. 해변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축구화를 신고 긴 축구 양말 속에 정강이 보호대까지 하고 온 승겸이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해변에 뛰어들어 한참을 신나게 놀았다.          


 밀물 때인지 몰려오는 파도와 놀던 승겸이 갑자기 세게 밀려온  파도에  옷이 다 젖어버렸다. 큰 파도는 아니어서 가슴까지 물이 튀었지만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아이가 좀 놀라고 당황해 다리가 떨린다고 했다. 여벌 옷을 가져온 것도 아니어서 옷을 벗겨 물을 짜내고 다시 입혔다.  더 놀고 싶어하는 아이와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변에서 시간을 보냈다. 

   

  옷도 어느 정도 말라서 근처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을 검색하니 전에 지인이 추천해준 아랍음식을 잘 한다는 레바논 이라는 식당이 바로 근처에 있었다.  스타벅스에서 차로 2분 거리인 식당에 도착해 주차를 하면서 보니 정원도 넓고 아름답게 잘 꾸며놓았고  주차장에 비싼 외제차가 즐비했다. 너무 비싼 식당에 온게 아닌가 싶었지만 가격도 적당하다는 말을 했던걸 믿고 들어 갔다. 식당 안에 들어서니 아이들을 데리고 온 아랍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아랍인 가족은 부부가 다섯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반대편 테이블엔 어느 영화에서 보았던 아랍의 배우들처럼 잘생긴  부부가 어린 아이 둘과  식사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마치 아랍에 여행이라도 온 기분이 들었다.  


 여러종류의 고기를 구워 샐러드와 내 주는 그릴플래터를 하나 시키고 승겸이 좋아하는 페러로니 피자를 시켰다. 음식 맛은 좋았으나 생각보다 고기가 너무 많이 나와서 다 먹지 못했다. 디저트로 시킨 이름을 잊어버린 코코넛 피자 비슷한 디저트는 한 입 떼어 맛만 보고 포장을 해 왔다. 다행이 가격도 많이 비싼 편이 아니어서 만족스러웠다. 식사를 끝내고 화장실엘 가겠다는 아이를 따라 뒷문으로 나가니 잘 가꾸어진 정원이 있었다.      

   아이와 사진도 찍고 차를 타고 식당을 나오며 어제 페낭 정보 카페에서 본  Garage sale 을 하는 근처 아파트에 들러 보려고 전화를 했다. 이곳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자신이 쓰던 물건들을 이렇게 싸게 처분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 동안 차가 없어 같은 아파트가 아니면 세일하는 곳에 가 볼 생각도 못했는데, 마침 시간도 맞고 바투페링기 쪽 아파트는 가본 적이 없어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주인과 통화를 하고 가드하우스에 면허증을 맡기고서야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가 그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먼저 다녀간 사람들이 좀 있었던 모양이다. 물건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내가 필요로했던  옷걸이와 주방용품, 청소용품, 운동용품들을 몇 가지 사가지고 왔다. 최대한 물건을 사지 않으려 마음 먹었는데, 또 물건을 늘렸다. 그러나 싼 값에 사고 싶은 유혹이 많았으나 나름 열심히 마음에서 잘라내고 꼭 필요한 것들만 들고 왔다. 차가 있어 가능한 일이니 이제 다음 주에 차를 반납하면 이런 일도 끝이다. 생각하며.      

 맛있는 것도 먹고 쇼핑도 하면서 동생네를 보내고 쓸쓸하던 기분이 좀 나아졌다. 긴 여름방학이  끝났다. 이제 다시 일상을 꾸려나가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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