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조지타운 여행기
이곳 영국식 학교는 학기 중간에 일주일 간의 짧은 방학이 있다. 오늘부터 미드텀 브레이크가 시작됐다.
이 곳 학교에서 내가 가장 맘에 안 드는 것 중의 하나가 노는 날이 많다는 것이다.
4월 25일 입학한 후 일주일 학교에 가고 5월 1일부터 이슬람 최대 명절인 하리라야와 노동절이 끼어 거의 일주일을 놀았다. 그리고 딱 4주 등교하고 또 오늘부터 일주일 방학, 중간에 부처님오신 날 하루 쉬고, 아파서 하루 쉬고, 학교 간 날보다 노는 날이 더 많은 느낌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직장 다닐때는 휴일이 그렇게 달콤하더니 온전히 학부모로 살아보니 중간에 쉬는 날이 생기면 한숨이 나온다. 사람 마음이 그렇다.
방학을 하니 친구들도 대부분 어딘가로 짧은 여행을 떠나서 같이 놀 친구도 없는 터라 어디라도 나가야 했다. 이곳에 도착하고 아직 조지타운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한 터라 아고다에 들어가 급하게 조지타운에 있는 작은 호텔을 예약했다.
늦은 아침을 먹고 작은 배낭을 아이 등에 지우고 조지타운행 101번 버스를 타러 나갔다. 종점인 조지타운 제티(Jetty)까지 표를 끊고 버스 뒷자리에 앉아 느긋하게 창밖의 풍경들을 보며 모처럼 관광객 모드가 되니 기분이 새로웠다. 종점에 내려 바다 위에 집을 지어야만 했던 이민자들의 애환이 남아 있는 제티를 구경했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한 낮의 페낭 거리를 열심히 따라다니는 아이는 이제 늙은 엄마 대신 구글맵을 켜고 길도 찾아 주며 의젓하게 행동하다가도 장난감 가게나 아이스크림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길거리 타투샵을 지나다가 타투를 해보고 싶다기에 가격을 물어보니 10링깃이라고 한다. 바로 옆에 세워 놓은 배너에는 단 1분, 5링깃이라고 크게 써 있다. 배너를 가리키니 자기가 알아서 그려주면 5링깃이고 우리가 문양을 선택하면 10링깃이란다. 10링깃을 내고 아이가 고른 공룡뼈 문양을 오른쪽 팔목에 그렸다. 정말 타투는 1분 만에 끝났다.
페낭 거리의 유명한 벽화들 앞에서 사진도 찍고 작은 기념품 샵들도 구경하며 구글맵을 켜고 천천히 숙소를 찾아가다 더위를 식히고 화장실도 해결할 겸 카페를 찾아들어가 아이는 좋아하는 초콜릿아이스크림도 먹고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니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숙소가 가까워 질 무렵 우연히 발견한 UPSIDEDOWN 박물관, 거의 문닫을 시간이 가까워 오는데도 사람들이 많다. 서둘러 입장을 하려고 표를 사는데 국적을 묻는다. 외국인은 입장료가 비싸다. 우리돈 만오천원 정도. 순서를 기다리다 안으로 들어가니 바닥에 세팅을 거꾸로 해놓고 우리가 취할 포즈를 알려준다. 코너마다 직원들이 안내하며 사진을 찍어준다. 나중에 사진을 돌려서 저장하면 거꾸로 천장에 매달려 있는 것 같은 사진이 나온다. 뭔가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코너가 다양하고 사진은 재밌게 나왔다.
거꾸로 박물관에서 나와 5분도 안되는 거리에 오늘 밤 우리가 묵을 남경호텔에 도착했다. 체크인 카운터에 앉아 있는 인도계 여직원에게 예약을 했다고 말하자 여권을 달란다. 아차차 근데 여권이 없다는 걸 깜박했다. 승겸이 학생비자 신청 중이라 내 여권과 함께 학교에 제출한 지 좀 됐다. 어딘가 휴대폰에 사진 찍어 놓은 것이 있을 것 같아 휴대폰을 여니 배터리가 거의 없어 화면이 흐리다. 당황스런 마음이 되니 사진도 잘 보이지 않는다. 승겸이에게 여권사진을 찾아보라고 휴대폰을 넘기고 기다리고 있는 여직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서 오늘밤 그냥 집으로 가야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러다 금방 배터리가 나갈 것 같은 순간에 사진 앨범에 검색 기능이 생각났다. 승겸이에게 검색에 여권을 써보라고 하니 여권 사진들 여러장이 뜬다. 근데 승겸이를 비롯해 남편과 남편 친구들 여권까지 뜨는데 내 여권이 없다. 헐~~. 화면이 흐려져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얼굴 부분이 없이 여권 정보만 나온 사진이 있어 자세히 보니 내 여권이다. 기다리던 직원에게 그 사진을 내밀었다. 사진이 없네, 하면서도 다행이 그녀가 겸이 여권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체크인을 해 준다. 거의 꺼지기 직전의 휴대폰에서 직원의 메일로 얼굴 없는 여권 사진을 보내 인쇄를 하고 방 열쇠를 받았다.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중국풍 여관의 모습이 남아있는 작고 오래된 호텔이다.
빨간 카펫이 깔린 계단을 올라가 방을 확인하고 내게서 열쇠를 받은 아이가
" 엄마 눈 감아 봐!, 내가 뜨라고 할 때까지 절대 뜨면 안 돼!, 아 떨려~~"
"짜잔, 엄마 여기 오성급 같은데?"
그 정도는 아니지만 싼 가격에 비해 깔끔하고 고풍스런 분위기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어서 시간을 거슬러 식민지 시대로 온 듯한 느낌이 드는 호텔이었다. 조지타운 한 가운데 있어서 주변을 걸어서 여행하기에도 좋았고하루밤 묵기엔 그럭저럭 괜찮았다.
저녁을 먹으러 나가려고 다시 로비로 내려오는데 사방이 너무나 조용하다. 우리가 오늘밤 이 호텔에 유일한 손님인 것 같다. 아까 호텔을 찾아오면서 봐 두었던 딤섬집에 오니 사람이 이미 꽉 차서 자리가 없다. 거리에서 열심히 차꿰띠아오(볶음국수)를 만드는 할아버지 리어카에도 줄이 길다. 페낭의 랜드마크인 꼼따로 들어가 결국 겸이가 좋아하는 치킨을 시켜 저녁 해결. 돌아오는 길에 대기가 짧아진 할아버지 리어카에서 차꿰띠아오를 사들고 호텔로 돌아와 차를 우려 볶음국수를 먹었다. 기대와 달리 너무 짜다. 유튜브를 보던 아이가 잠들고도 오랫동안 잠이 오지 않던 여행지의 밤이었다. (2022. 6. 6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