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이 이야기

by 산너머

“엄마, 소심이는 우리집 쓰레기 처리반이야”

일곱 살 어린 아들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왔을 때,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우리 집에서 기르는 개는 사료를 먹지 않는다. 남은 밥이 없어 개밥을 주지 못하는 날 아니면 사료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소심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물론 고기이지만, 남은 된장찌개에 물을 넉넉히 붓고 밥을 말아 주는 것도 무척 좋아한다. 개밥에는 자연히 남은 음식 뿐 아니라 승겸이가 뱉어놓는 고기조각, 상에 떨어진 밥풀이나 라면 줄기들, 만들어 놓은 지 오래 지나 먹기가 께름직한 음식들이나 약간 맛이 간 찌개까지 모든 게 들어간다. 게다가 승겸이가 먹다 남기는 간식까지 개밥그릇에 들어가니 그런 생각이 들만도 했다. 그 동안은 그런 음식들을 버리지 않고 먹어 치울 개가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이가 무심코 던진 그 말이 개밥을 줄 때마다 늘 떠오르곤 한다. “엄마, 소심이는 왜 눈이 슬픈 거야?” 라는 말과 함께. 사실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결혼 후 시골에 들어오니 집에 개가 있어 좀 난감했다.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지만 아직도 개들이 옆에 오거나 손이라도 핥으려고 하면 무의식적으로 “저리 가”하고 소리치며 쫓아 버리곤 한다. 그간에 집에서 기르던 개가 두 세 마리 정도 있었다. 모두 수캐들이었는데, 발정기가 되면 집을 나가기 일쑤였다. 일주일은 예사고 어떤 땐 한 달 후에 돌아오기도 했다. 영영 돌아오지 않는 개들도 있었다. 솔직히 돌아오지 않으면 속으로 잘 됐다 싶기도 했다.

한동안 개를 기르지 않다가 승겸이가 서너살 무렵 소심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동네에 같이 놀 친구 하나 없는 승겸이가 강아지와 함께 놀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소심이는 승겸이와 함께 뒷산을 뛰어다니고 엄마와의 저녁 산책에도 빠져서는 안 되는 단짝 친구가 되었다. 그동안 우리 집에서 기르던 모든 개의 이름은 ‘메리’였다. 구십이 넘으신 시어머니에게 ‘메리’는 이름이 아닌 그저 개의 대명사일 뿐이었다. 그러나 메리는 승겸이의 친구가 되고부터 ‘김소심’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순한 강아지였던 소심이는 낯선 사람이 오면 꼬리를 내리고 집 뒤로 슬슬 피하면서 몇 번 짖어 대는 게 다여서 소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 때 어린이집을 다니며 이름 쓰는 걸 배우고 있던 승겸이는 모든 이름 앞에 성을 붙여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소심이는 김씨가 되었다. 그러나 소심한 어린 강아지는 일이년 사이 큰 개로 자라 집 뒷산에 종종 나타나는 고라니를 잡으러 뛰어다니며 야생성을 회복했고, 집에 오는 친지와 낯선 사람을 구별할 줄 아는 제법 영리한 개로 성장했다. 그런데 소심이가 암캐라는 것이 나에게 큰 근심거리가 될 줄은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소심이가 첫 번째 새끼를 낳을 무렵 갑자기 집에서 사라져버렸다. 배가 늘어져 출산이 가까워 보이던 개가 보이지 않으니 걱정이 되었다. 소심이는 사나흘이 지나 배가 홀쭉해져 기진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밥을 한그릇 말아 주니 허겁지겁 먹고는 다시 슬그머니 사라졌다. 어딘가 새끼를 낳고 돌보러 가는 것 같아 다음 날 퇴근 후 밥을 먹고 가는 개를 따라나섰다. 소심이는 가끔 뒤를 돌아보며 산으로 올라가더니 순식간에 덤불 속으로 사라졌다가 골짜기 건너편에서 나타나곤 했다. 해가 질 때까지 산을 쏘다니다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다음 날은 설상가상으로 종일 비가 내렸다. 퇴근을 하자마자 우산을 쓰고 다시 새끼들을 찾아 산을 헤매고 다녔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새끼들은 거의 보름 만에 추석에 잠시 내려온 승겸이 큰 아빠에 의해 발견되었다. 배밭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덤불로 덮여있는 물이 마른 도랑 속에서 강아지 소리가 나서 찾아오셨다는 것이다. 집에서 백 미터도 안 되는 가까운 곳이었다.

소심이는 그 후로 꼬박 일 년에 두 번씩 산 어딘가에 대여섯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울도 담도 없는 집이라서 개를 묶어 놓아도 발정기가 되면 밤낮으로 수캐들이 집 주변에 진을 치고 있어 매번 임신이 되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늘 새끼를 산 어딘가에 낳으니 새끼를 찾으러 다니는 것도 일이었다. 그러나 산에다 새끼를 낳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요즘은 시골에서 기르는 잡종 강아지는 그냥 줘도 가져가는 사람이 없다. 어찌어찌 수소문을 하여 강아지들을 분양하고 나면 몇 달 지나지 않아 또 새끼들이 생기는 일이 반복되었다. 갓 태어난 예쁜 강아지들은 한 달 정도 지나 눈을 뜨고 걷기 시작하면 골치덩어리로 바뀌게 된다. 마루 밑을 들락거리며 식구들의 신발을 마당 여기 저기 물어다 버리고, 밥을 주면 저희끼리 서열 싸움을 하느라 서로 물고 뜯고 으르렁거리며, 여러 마리가 아무데나 똥을 싸 대기 시작하면 감당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조금 더 커지면 어미를 따라 동네를 돌아다니며 남의 집 마당에도 수시로 들어가 똥을 싸놓는 바람에 동네 사람들의 원성이 커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하는 수 없이 강아지를 묶어 놓으면 서로 줄이 엉키어 옴싹달싹도 못하고 있어 줄을 풀어주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고, 어미까지 대여섯 마리가 먹는 음식도 감당하기가 어려워진다. 더 끔찍한 일은 작년에 일이 있어 밤늦게 집에 들어오다 차 소리를 듣고 달려오는 어미를 따라온 강아지가 내가 운전하는 차에 깔려 죽은 일이었다. 그런 일들을 몇 번 겪고 나니 이젠 소심이 배가 불러오면 재앙처럼 끔찍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지난 여름 소심이는 다시 일곱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여름 방학 여행지에서 그 소식을 듣고 나는 낙담했다. 여행이 끝나기도 전에 그 많은 새끼들을 또 어찌해야 하나 싶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집에 돌아오니 두 마리가 죽고 다섯 마리가 남아 있었다. 안됐지만 속으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아직 무더위가 남아있던 팔월 중순에 소심이는 다시 새끼를 산으로 물고 갔다. 고무로 된 개집이 한낮에는 무더위로 달아올라 뜨거웠으니 새끼들을 살리기 위한 행동이었다. 소심이를 따라가 보니 집 뒤 수풀이 우거진 곳에 흙을 파고 들어 앉아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보기에도 시원하다 못해 서늘한 땅이 반들반들했다. 무더위가 갈 때까지 며칠 그대로 두었다가 새끼들을 데려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골치덩어리가 된 강아지들과 전쟁을 치르다 며칠 전 해결할 곳을 찾게 되어 얼른 차로 실어다 주고 돌아왔다. 큰 농장을 지키기 위한 개가 많이 필요한 곳이었다. 어미도 같이 데려오기를 원하기에 잘 됐다 싶어 승겸이 의사를 타진했다가 아이가 너무 완강하게 우는 바람에 소심이는 남길 수 밖에 없었다. 새끼들을 데려다 주고 돌아오니 소심이의 퉁퉁 불은 유두에서 하얀 젖이 떨어지고 있었다.

‘조화로운 삶’이란 책을 쓴 니어링 부부가 정한 삶의 원칙에 ‘집짐승을 기르지 않는다’는 이유를 인상깊게 읽은 적이 있다. ‘농부들이 집짐승을 돌보는 자질구레한 일에 시간을 빼앗기며 집짐승의 하인 노릇을 하다 나중에는 사형집행인이 된다’고 충고하던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사람에게 길들여지고 기생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집짐승들의 슬픈 현실을 소심이의 슬픈 눈이 대변하는 것 같다. 새끼들을 보내고도 밥을 얻어 먹기 위해 부엌 문 앞에서 기다리는 소심이를 보면 슬프고 화가 난다. 소심이에게 밥을 주며 쓸데없는 말을 주절거려본다. “소심아, 새끼 좀 그만 낳으면 안되겠니? 아니면 산으로 들어가서 돌아오지 말던가”. 요즘 소심이는 나의 큰 공부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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