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기업에서 사원으로 살아남기(4)
스타트업은 늘 그렇다. 어느 한 분야의 업무가 아닌 다방면의 업무를 도맡아서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몇십 명, 몇 명 규모도 아닌 직원이 나 한명 뿐인 이 회사에서는 기획, 영업, 마케팅, 디자인, 운영 등 경영지원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나의 업무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나를 소개할 때 종종 곤혹을 치르곤 한다. 예를 들면 "저는 작은 규모의 교육회사에서 기획이랑 영업, 마케팅도 하구요, 디자인도 하고 뭐.. 다해요" 이런 식이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의 갸우뚱한 표정은 덤이다.
여러 분야의 업무를 해왔지만, 그 중에 디자인 업무는 나에게 창작이라는 이름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디자인 업무는 세부적으로 여러 영역으로 나뉘겠지만 나의 경우는 주로 PPT로 제안서를 만들거나 교육 프로그램 운영에 필요한 현수막이나 입간판, 브로슈어 등을 디자인하는 일이었다. 현수막이나 입간판 같은 것들은 미리캔버스나 비즈하우스 같은 플랫폼의 도움을 받아 비교적 손쉽게 디자인을 했지만 제안서의 경우 처음부터 끝까지 쌩(?)으로 디자인할 수 밖에 없었다. 폰트부터 색상, 레이아웃, 표지 등 모든 장표를 직접 디자인하는 업무는 비전공자였던 나에게 유독 가혹한 느낌이었다. 입사와 동시에 첫 업무로 제안서를 만드는 일을 시작했고, 첫 출근과 근로계약에 대한 충격으로부터 반 년정도 지났을 때, 300여개의 제안서를 제작해야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나는 이 때 국내에 대학교가 몇 곳이나 있는지 처음 알았다. 대학이나 공공기관에 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또는 위탁 받아서 운영해야하는 작은 회사의 특성상 최대한 많은 곳에 우리 회사와 제품 서비스를 알리는 일이 우선이었고, 그를 위해서 전국의 일반대학, 전문대학을 포함해 300여곳 이상에 제안서를 보내야했다. 하나의 제안서를 만들어서 전단지처럼 무차별 난사를 하면 되는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당시에 입사 6개월 차, 알 수 없는 열정에 휩싸였던 나와 대표님은 전국의 300개 이상의 대학에 각각의 제안서를 디자인해서 보내기로 했다. 당연히 제안서를 받는 입장에서도 자기 대학의 특성을 분석한 내용이 포함된 제안서가 더 설득력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공통적인 내용은 그대로 두고 각 대학의 교육목표나, 정책에 해당하는 장표만 추가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 생각이 잘못됐다는 알았을 때는 이미 두 달이 지난 후였다.
이 제안서를 처음 제작할 때 제안서를 가로로도 만들어보고, 세로로도 만들어보고, 색상을 이걸 써보고 저걸 써보는 등 전체적인 레이아웃을 몇 번씩 갈아엎기를 반복하면서 겨우 기본적인 틀을 제작했다. 그리고 회사 소개, 회사의 프로그램, 운영방안 등 공통적인 내용이 담긴 페이지까지 제작하는데 거의 3주가 넘게 걸렸던 것 같다. 이렇게 만들어진 틀에 전국에 있는 대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각 대학의 교육목표, 교육정책을 보고 필요한 내용을 시각화해서 추가하는 작업을 진행했는데, 처음 하나의 대학의 제안서를 완성하기까지 꼬박 이틀이 걸렸다. 300여개의 제안서를 다 만들려면 2년은 족히 걸릴 일이었다. 그래도 이미 시작해버린 이상 그만둘 수는 없었고, 제작해두면 몇 년은 유용하게 쓰겠지싶어서 몇 달간 나의 매일 일과는 PPT로 시작해서 PPT로 끝났다.
속도가 붙어서 하루에 3개에서 많으면 5개의 제안서를 만들 수 있게 되기까지 두 달 정도 지났을 때였다. 두 달 동안 나는 다른 업무와 병행하며 수도권 일반대학 53곳과 전문대학 33곳에 해당하는 총 88개의 제안서를 완성했고, 어떤 경지에 오름과 동시에 소위 말하는 현자타임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내가 디자인 전공도 아닌데 이걸 왜하고 있지', '이렇게 해서 나한테 뭐가 남지'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서 의욕과 열정이 점점 희미해졌고 당연히 생산성도 떨어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사실 수도권의 대학은 이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교직원도 많고 인프라도 잘 갖춰져있기 때문에, 우리 회사의 서비스가 필요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정확한 시장조사 없이 무턱대고 시작한 사업의 결과였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뒤 약 세 달이 지나서야 대표님과 나는 사업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타깃고객층을 광범위하게 설정한 것이 화근이었다. 작디작은 규모의 회사였기에 맨 땅에 헤딩하는 것 말곤 방법이 없었지만 문제는 맨 땅이 아니라 콘크리트 바닥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하나의 범용적인 제안서를 만들고, 전단지 형식처럼 메일로 각 대학에 뿌리기로 결정했다. 그 후에 관심을 보인 대학에 맞춤 제안서를 제작해서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동안의 삽질은 나에게 경지에 오른 PPT 능력과 손목터널증후군 그리고 진한 현자타임을 남기곤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