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은 특별한 징조 없이 찾아온다. 굳이 뭔가를 찾아봐야 한다면 아침에 일어나기가 어렵다. 머리가 무겁다. 마음속에서 뭔가 스멀스멀 올라오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징조가 많다.
이런 날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사람'이다. 평소 건네는 말에 없던 가시가 이런 날에는 장착되어서 상대방에게 날아간다. 그 미세한 가시를 별생각 없이 받아넘기거나, 특별한 보호막이 있어서 모든 가시를 튕겨내는 사람도 있지만 그 가시를 눈치채는 사람도 있다. 그럼 나의 짜증이 그 사람에게 전염된다. 그럼 문제가 커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날은 사람을 안 만나는 게 상책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심연에 묻어두었던 말들이 가시를 내보이며 고개를 내민다. 그리고 속삭인다.
'그때 그 말이 정말 너를 걱정해서 한 말이었을까?'
'그 말 너무 기분 나쁘지 않았어?'
그런 말들이 자꾸 들리면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해야 한다. 내 감정의 찌꺼기를 털어내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 빨리 구해지면 다행이다.
오늘 아침엔 그런 사람들이 빨리 구해지지 않았다. 평소 내 말을 잘 들어주던 두 사람은 아침부터 바빴고 남편에게 털어놓으니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 언니와 통화하며 마음이 조금 정리되는 듯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수업에 들어가기 한 시간 전 밀린 책 발췌 정리를 시작했다. 평소에는 이런 상황에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는데 발췌 정리는 글을 옮겨 적는 일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잘 되었다. 그러면서 내 마음도 가라앉았다. 발췌를 마무리하면서 시간을 보니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순간 감사했다.
그 감사가 찾아온 순간, 내가 잠시 그것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를 잊으니 그곳에 불만, 짜증,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것들이 채워졌다. 감사를 기억하며 가라앉은 마음으로 수업을 잘 마무리하고 나왔다. 하늘이 참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