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데 뭐하러 오나

나는 매일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by 읽고걷는 최선화

“엄마, 그럼 다음 주에 뵐게요.”

“바쁜 데 뭐 하러 오나.”

“엄마가 보고 싶으니까 가죠.”

“그래도 애들도 봐야 하고 이서방 밥도 해 줘야 하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 이서방이 나보다 밥 더 잘 해.”


어버이날 무렵이면 고추를 심는다. 엄마의 한 해 농사 가운데, 가장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한 일이 고추 심기다. 다른 일들은 엄마가 이른 아침 사부작사부작 혼자 해내시지만, 고추 심기는 다르다. 비닐에 구멍을 뚫고, 하우스에서 자란 모종을 옮겨 심고, 물을 주고 흙을 덮는 일은 여러 손이 함께 움직여야 가능하다.


그건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엄마의 사 남매가 출동하기로 했다. 네 집 모두 맞벌이라 토요일에도 일하는 집이 있고, 배우자들 역시 각자의 일정이 있었다. 이번에는 사 남매만 모이기로 했다. 고추도 심고, 어버이날도 함께 보내기로.


꽃집에서 직접 만든 꽃바구니를 차에 싣고 오빠 차를 타고 원주로 갔다. 거기서 다시 언니 차로 갈아타 사 남매가 함께 친정으로 향했다. 배우자들과 함께 가는 친정길도 좋지만, 이렇게 형제들만 모이는 시간도 각별하다. 어릴 적 이야기와 지금 사는 이야기를 쉼 없이 주고받다 보니 한 시간 반은 금세 지나갔다.


도착하자마자 모두 일복으로 갈아입고 집 앞 고추밭으로 향했다. 오빠는 비닐에 구멍을 뚫고 물을 주는 일을 맡았고, 언니와 나는 모종삽으로 흙을 덮었다. 남동생은 고추 모종을 구멍에 맞춰 넣는 역할이었다. 열 골쯤은 거뜬하겠지 싶었다. 하지만 골이 늘어갈수록 모종삽 끝에 커다란 추가 달린 것처럼 흙을 퍼 올리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열 골을 다 심고 나니 땅바닥을 기고 있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 어렸을 때 골골대던 내가 아니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농사일은 여전히 힘들었다. 밭 사이사이에 고춧대를 하나씩 박아 넣는 오빠와 남동생의 모습을 보며, 엄마의 농사가 떠올랐다. 한 해가 지날 때마다 농사 규모를 조금씩 줄여 온 시간도 함께.


줄어드는 건 엄마의 농사만이 아니다.

엄마의 마음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엄마 보러 간다고 하면

“바쁜 데 뭐 하러 오나”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제는

“엄마, 뭐 필요한 거 없어요?” 하고 물으면

“딸이 없지.”가 되고,

간다는 말에는

“안 바쁘나.” 하고 되묻는다.


혼자 계신 엄마를 좀 더 자주 찾아뵈어야 하는데, 세 시간이라는 거리는 여전히 만만치 않다. 얼마 전 엄마와의 통화에서 넷 중 하나쯤은 엄마 근처에 살았어도 좋았겠다는 말씀도 들었다. 그나마 언니와 남동생이 한 시간 반 거리에 살아 자주 찾아뵐 수 있어 다행이다.


세 시간이라는 거리는 여전히 길지만, 엄마의 말이 바뀌는 속도는 그보다 더 빠르다.


꽃바구니에 사남매가 감사인사를 적었다. 종이를 준비해가서 현장에서 한 문장씩 적어보았다.

사진이 필요한 이유 ㅡ 이렇게 잠시 쉴 수 있다. ㅋ 절대 농땡이가 아니다.

끝!이 아니었다.

고춧대 세우기. 나도 망치를 들고 따라해 봤는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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