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표현하기를 금지당했었다.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아닌 것에 아니라고 말해서는 안 되며 나의 의견보다는 상사의 의견을 따르고, 자신의 감정과 기분 사적인 영역은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며 살아간다.
물론, 아닌 곳도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가 있는 부서에서는 적어도 그러한 경험이 다분했다.
울고 싶어도 울어서는 안 되며 억울한 상황이 있어도 일단 참아야 했다.
어느 날, 옆 자리 선배님께서 엉엉 우신 적이 있었다. 선배님은 40대 남성, 대기업 과장, 두 아이의 아버지, 프로젝트의 리더. 어느 날 갑자기 든든해 보이던 선배님께서 눈물을 멈추지 못하셨다. 스트레스가 쌓이다 못해 어떻게 해서든 해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을까, 하지만 이때에도 나는 어떠한 말을 건네지 못했다.
'많이 힘드셨을 텐데 그동안 참아내느라 얼마나 꾹꾹 눌러오셨을까.'
싸이 노래 중 아버지의 가사 딱 그런 느낌이었다.
요가수련 중에는 철학 수업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힌두와 불교의 철학도 함께 공부하며, 우리가 사회에서 고통받았던 것들을 해소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 시간에는 많은 친구들이 울고 눈물을 멈추지 못한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여러분들이 얼마나 사회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경쟁하며 살아왔는지 안다.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해 여기에 온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요가는 그런 태도를 지양하고 몸과 마음, 정신, 감정의 조화를 하기 위한 여정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또한 살기 위해 몸을 해치며 노력하는 것을 멀리하라는 글과 함께 현대 요가에서는 워커 홀릭의 태도를 멀리하라고 되어 있다. 중독은 모두 나쁜 것이라 말한다. '일 중독, 사회성 중독, 성공 욕구' 등등 해야만 하는 사회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일에만 취중 된 삶을 안쓰럽게 보는 철학 시간에 발리의 자연 소리가 들릴 때면, 유럽에서 온 친구들 중에 의사도 있고 변호사도 있었는데 정말 자신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친구들이 눈물을 보이며 오열을 한다. 그리고는 다른 친구들은 우는 친구에게 다가가 따뜻하게 안아준다.
나는 너무 울고 싶었지만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운다는 것은 나에게는 민망함, 그리고 무례함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들의 그런 감정 교류, 이런 것들이 얼마나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지 알게 되었다.
과거의 나는 회사에서 선배님이 우시던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만난 친구들은 서로 감정을 교류하며 인정하고 바라봐 주며 안아준다.
요가를 하러 와서 나는 유럽 친구들의 태도를 많이 배우고 있는 중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
발리에 요가를 하며 감정 표현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어머니, 아버지, 가족들과도 감정 교류가 쉽지는 않았다. 또한 회사에서는 더더욱 할 수 없었다.
조금 더 서로에 대해 많이 물어보고, 어떤 기분으로 살고 있는지,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물어보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도록 먼저 물어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