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 요가하러 왔는데 해부학을 듣다 울어버렸다.
같은 경험을 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가장 큰 위로이지 않을까?
The Anatomy
대학교를 다니면서 해부학을 공부한 적이 있다.
선생님께서는 의사를 하다 번아웃이 와 요가티쳐가 되었다고 소개하고, 수업을 시작하셨다.
해부학 강의는 근육, 신경계, 골격 등의 운동에 관련된 우리 몸의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한 수업이다.
스무 명 남짓의 세계 각국의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있으니 나만 앉아있고 모두가 엎드리거나 누워있다는 것을 보았다.
별 건 아니지만 유럽이나 미국 친구들을 보면 자유롭게 질문하고 서로 웃으며 누워서 수업을 듣고, 선생님도 이런 분위기를 즐기는 이 분위기가 새로웠다.
수업 중 나는 평생을 규율이 잡힌 곳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나 스스로에게도 빡빡하게 굴어왔었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부러웠다. 그들은 열정적이다. 공부하는 것이 정말 알고 싶은 거에 대한 열정으로 보였다.
비록 누워서 수업을 듣지라도 손을 들어 질문을 한다. 거의 항상 궁금한 게 있어 손을 들고 있다. 질문하고 선생님께서 "Is it correct? Understand?"라고 물어볼 때마다. "No."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말한 것에 오류가 있거나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있어 콕콕 집어 물어보고, 개인적인 질문까지도 서슴없이 물어본다. 해부학이다 보니, 엄마가 무릎이 아프신데 어떻게 하면 나아질 수 있는지, 심지어 콜라겐을 먹으면 피부가 좋아지는 게 맞는지, 본인의 팔은 왜 다른 사람보다 많이 돌아가는지 등등 정말 천차만별의 질문들이 오간다.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특정 단어를 몰라도 일단 손을 들고 물어본다.
나는 한국에서 질문을 할 때면, 다른 친구들에게 방해가 될까 봐 정말로 궁금하다면 수업이 끝나고 질문을 했던 경우가 많았었다. 수업이 늦게 끝나서 같이 있는 학생들이 싫어할까 봐, 선생님께서 준비한 수업이 마무리되지 못할까 봐, 여러 사람을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는 역시나 수업이 끝나고 나서 선생님을 찾아갔다.
개인적인 질문을 해도 괜찮을까요?
어떻게 번아웃을 극복하셨어요?
이 말을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어버렸다. 괜찮지 않았던 거 같다. 항상 어딘가에 쫓기듯 나를 밀어붙이며 살아왔던 거 같다. 나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나눈 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시아 친구들이 요가를 하러 오는 이유는 대부분 어딘가에 쫓겨 사는 일상이 힘들어서 시작된다고, 본인도 응급실에서 일을 하면서 2번의 번아웃을 겪었고 첫 번째에는 병원에 돌아갔지만 이제는 요가 선생님으로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나는 괜찮아지고 싶었다.
발리에 와서 요가를 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
물론 요가를 하는 도중에는 나의 호흡에만 집중하고 더워서 땀으로 샤워를 하느라 한국에서의 삶을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기분이 우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수업을 듣고 나서 나는 울었고, 행복하지 않았다.
"누구나 겪는 감정이야. 그동안 열심히 해왔으니까 여유를 가져 봐."
어쩌면 이렇게 요가티쳐트레이닝에 다시 한번 등록한 것도 나를 해야만 하는 것으로 밀어붙이는 행동을 한 것은 아닐까, 하고 싶었던 거에 대한 열정으로 이곳에 왔는데 또 다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이해를 받는 거만큼 위로가 되는 순간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나와 가깝더라도 직접 겪어보지 못했다면 공감하기 어려운 감정이고, 어쩌면 현재 겪고 있지 않다면 이전의 감정은 무뎌지는 것이 사람 마음이니 말이다.
선생님께서는 번아웃을 극복하셨지만, 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회복하고 나아진 분의 마음을 듣고,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란 믿음만이 또 하루를 지나갈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