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요가수련 (3) 퇴사 소식

봄이 와도 달라지는 거는 없으니 기대하지 않게 되는 요즘,

by 구르미

로이킴의 봄이 와도 가사

봄이 와도 설레지 않을 것이고
여름이 와도 나는 흔들리지 않을 거야
가을이 오면 무너지지 않고 견뎌 왔음에 감사하며
겨울엔 나를 지켜 줬던 그대만을 내 맘에 새길 거야


로이킴의 '봄봄봄' 노래처럼 사소한 것에 설레고 에너지가 많던 때가 있었다.


20대 처음 입사했을 당시 나는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의욕도 넘쳤다. 반도체를 설계하며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고 있다고 믿었다. 재밌었다. 내가 설계하는 반도체가 실제로 기능을 잘하고 어딘가에 쓰이게 되면 헛된 노력이 아니라는 생각에 만족하는 일상이었다.


하지만 30대가 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무엇에도 설레지 않았다. 기쁘지도 않고 의욕도 없고 우울했다. 길을 잃었고, 그동안 공부하고, 일하며 이루어 놓은 나의 커리어를 버리고 싶었다. 더 이상 이 일을 하기가 싫었다. 답이 없었다. 하루하루 나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은 답이 아니었다.


"다른 선택을 하면 달라질까?"


여러 가지 방안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먼저 다른 회사 면접을 보고 합격을 했고, 회사 내 기획 부서로 이동을 지원해서 직무 이동도 가능하게 되었다.


두 가지의 선택 중에 나는 부서이동을 선택했다.

일단 이직을 하기 위해서는 적응하는 기간도 필요하고 또 한 번 에너지를 내고 공부를 해야만 한다. 그럴 의욕이 없었다. 연봉이 1.5배 정도 올라가는 기회를 포기하고, 회사에 남아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같았다.

기획이라고 해서 내가 의욕이 더 생기지는 않았다. 그냥 에너지가 소진된 번아웃이었을 뿐이다.


그 후 나는 1년 간의 휴직을 내고 발리로 오게 되었다. 그리고 요가에 대해 깊게 알고 싶어 ytt200이라는 yoga teacher training을 3주간 하는 요가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그러던 중 회사 선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전 부서에 있던 2명이 퇴사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자리를 옮기고 나서 2명이 퇴사를 하고 2명이 부서를 옮겼다. 이후 이번 달 2명이 또 퇴사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원래 같이 일하는 파트원은 10명 남짓이라 정도 들고 많이 배울 수 있던 선배님들이었다.


하지만 종종 '내가 선배님들처럼 될 수 있을까?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아.'는 생각을 하고 했었다. Role Model이 없는 곳에서 일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내 미래가 그들처럼 일해서 인정받는 것이라면 두려웠다.


하루는 선배님이 우는 것을 보았고 그것이 나를 괴롭게 했다. 어린아이가 엄마 아빠가 울면 무섭고 슬픈 것과 비슷한 마음일 거 같다.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하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것이 그분들을 위한 건지 모르겠어 마음속으로만 위로를 건네었다.



오늘 요가를 하던 도중 많이도 울었다.

퇴사한다는 선배님들과 함께 힘든 시간을 견뎌왔고, 같이 해내고, 같이 혼나면서 정이 들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그분들이 더 좋은 방향으로 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동안 수고하셨어요"는 말을 멀리서나마 전하고 싶었다.


어쩌면 나에게도 못했던 말이었을지 모른다.


"그동안 수고했어" 떠나는 선배님들의 소식에 발리에 오기 전의 내가 보여 한참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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