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입 안에 남는 달콤함은 사실

양갱의 시간 여행

by 안도현



오늘 오후, 찻잔 옆에 놓인 양갱 한 조각을 바라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투명한 호박빛 안에 담긴 시간은 과연 얼마나 깊을까.

어린 시절 할머니가 손수 끓여주시던 팥죽을 떠올린다. 할머니는 팥을 삶으며 이런 말씀을 하시곤 했다. "팥이란 게 참 신기해. 딱딱한 알갱이가 부드러운 앙금이 되지." 그때는 그저 달콤함에 취해 할머니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양갱의 진짜 이야기는 우리 상상보다 훨씬 극적이다. 춘추전국시대,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 '양갱(羊羹)'은 말 그대로 양의 국물이었다. 양고기를 끓인 걸쭉한 국물 요리. 추운 겨울날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뜨거운 국물 한 대접은 그들에게 생존을 위한 영양이자 추위를 이기는 온기였으리라.

『전국책』에는 "내가 한 그릇 양갱으로 나라를 망하게 했구나"라는 기록까지 남아 있을 정도로, 양갱은 당시 사람들에게 소중한 음식이었다.



시간이 흘러 불교가 전래되면서 이야기는 전환점을 맞는다. 승려들은 계율에 따라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양갱이라는 음식의 형태는 유지하고 싶었다. 그들이 선택한 해답은 팥이었다. 양고기 국물의 붉은빛을 팥의 붉은빛으로, 고기의 영양을 식물성 단백질로 바꾸는 일종의 '요리적 번역'이 시작된 것이다.

이는 단순한 대체가 아니었다. 승려들은 종교적 신념을 지키면서도 음식 문화를 포기하지 않는 창의적 해법을 찾아낸 것이다. 뜨거운 국물 요리가 차가운 달콤한 디저트로 변신하는 순간, 완전히 새로운 미식의 세계가 열렸다.



오늘 우리가 먹는 양갱 한 조각에는 이 모든 시간이 압축되어 있다. 춘추전국시대 혹독한 추위를 견뎌낸 사람들의 생존 의지, 종교적 금기를 슬기롭게 우회한 승려들의 지혜, 그리고 오랜 세월에 걸쳐 완성된 제조 기술까지. 한 입 베어 물 때마다 우리는 사실 천 년의 시간을 맛보고 있는 셈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이 이와 같다.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중 상당수가 과거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커피는 종교의식용이었고, 초콜릿은 쓴 음료였으며, 토마토는 독이 있다고 여겨졌다.

양갱이 국물에서 과자로 변한 것처럼, 우리 일상 속 달콤함 들도 각자만의 변신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달콤함 뒤에 숨은 국물의 기억, 시대를 초월한 음식의 진화, 그 모든 이야기가 혀끝에서 천천히 녹아내린다.

오늘 오후 간식 시간, 양갱 한 조각과 함께 시간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의 사소한 즐거움 속에는 종종 잊힌 시간들의 무게가 스며들어 있다. 그 무게를 혀끝으로 천천히 음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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