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라는 작은 별에 대하여
어린 시절 여름 오후의 기억이다. 할머니는 마당 평상에 앉아 참외를 깎아주시곤 했다. 작은 칼날이 노란 껍질을 벗겨낼 때마다 달콤한 향이 뜨거운 오후를 가득 채웠다. 껍질 조각들이 소쿠리에 소복소복 쌓여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그저 입을 벌리고 기다리기만 했다.
그때는 몰랐다. 이 작은 노란 별이 품고 있는 놀라운 비밀을.
참외라는 이름의 유래가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가 당연하게 부르는 음식 이름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발견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호떡의 '호胡'가 오랑캐를 뜻하는 한자라는 것처럼 말이다.
호두, 호초(후추), 호면(당면)도 마찬가지다. 모두 중국을 거쳐 온 것들에 붙이는 한자였다.
우리가 중국당면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중국중국면'이라는 뜻이다. 당나라 당唐 자를 써서 당면이라 했으니 말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우리가 가장 한국적이라고 여기는 호떡마저 그 이름 속에는 '이방인'이라는 뜻이 숨어 있다니.
하지만 참외는 다르다.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된 이 작은 과일은 한국 땅을 만나 전혀 다른 존재로 거듭났다. 성주의 햇살과 바람이 빚어낸 '성주 참외'는 이제 한국 여름의 대명사가 되었다.
참외에게는 특별한 비밀이 있다. 따는 순간이 곧 완성의 순간이라는 것. 다른 과일들처럼 시간이 지나며 더 달아지지 않는다. 그 순간의 당도가 전부다. 그리고 10일이 지나면 그 아삭함도, 달콤함도 서서히 사라진다.
이런 특성 때문에 참외 수출이 어려운 것이다. 이 맛은 국경을 넘지 못했다. 머나먼 땅으로 가는 동안 그 완벽한 순간을 잃어버리고 만다. 결국 참외는 한국이라는 무대에서만 제 맛을 내는, 우리만의 여름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외국인들에게 참외는 그저 '밍밍한 과일' 정도의 존재일 뿐이다. 사과처럼 아삭하면서도 오이처럼 시원하고, 멜론처럼 달면서도 참외만의 독특한 향을 품은 이 과일의 진가를 그들은 모른다.
해외에서 생활해 본 한국인이라면 알 것이다. 마트에서 아무리 찾아도 없는 그 맛에 대한 그리움을. 멜론도, 수박도 있지만 참외만의 그 특별함은 어디에도 없다. 숙맥이라는 말이 있다. 콩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어쩌면 우리도 참외의 진짜 가치를 제대로 모르고 사는 건 아닐까.
여름의 끝자락에서, 참외 한 조각과 함께 그 답을 찾아봤으면 한다. 달콤하고 아삭한 그 순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만의 여름 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참외 한 조각에 담긴 한국 여름의 모든 것. 그 작은 우주를 우리는 달콤하게 씹어 삼킨다. 해외에서는 맛볼 수 없는, 우리만 아는 여름의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