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95%의 진실
얼마 전 편의점에서 5억 원짜리 위스키 판매 소식을 접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편의점에서 아파트 한 채 값에 해당하는 술을 파는 시대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을까.
학창 시절 생물 시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쥐와 인간의 DNA가 95% 동일하다는 선생님의 설명에 교실이 웅성거렸다. 바나나와도 60%나 닮았다는 말에는 누군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만 해도 그저 신기한 과학 지식 정도로 여겼을 뿐이었다.
그럼 모든 생물의 근원은 같겠네. 정도의 통찰만 가능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95%라는 숫자가 품고 있는 무게가 만만치 않다. 천연두는 한때 전 세계 사망 원인의 10%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 무시무시한 질병을 이겨낸 것도, 페니실린과 인슐린을 개발한 것도 모두 그 95%의 유사성을 믿고 진행한 동물실험 덕분이었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의 89%가 동물실험을 기반으로 한 연구 성과를 인정받았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요즘엔 편의점에서 5억 원짜리 위스키도 판다고 한다. CU에서 내놓은 '다이아몬드 쥬빌리'라는 블렌디드 스카치위스키였다. 바카라 크리스털로 병을 만들고 18K 금과 0.5캐럿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작품이라고 했다. 전 세계 한정 수량이라는 말도 덧붙어 있었다.
한편 실험실에서는 95%의 DNA 유사성을 근거로 오늘도 수많은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5억 원짜리 위스키 한 병과 실험실 쥐 한 마리. 둘 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존재일 것이다.
가치란 상대적인 것이다. 그래서 내 말이 옳니 틀리니 따지는 일이 무척이나 피곤하다.
본인이 중요시 여기는 생각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생각도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 당신의 의견도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매일 아침 복용하는 비타민, 두통이 있을 때 찾는 진통제, 감기에 걸렸을 때 의지하는 항생제. 이 모든 것들 뒤에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작은 생명들의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다.
이들은 실험실 속 작은 무명의 영웅이었다.
침팬지와 인간의 DNA는 98~99% 유사하다고 한다. 2%의 차이로 우리는 언어를 갖게 됐고, 문명을 이룩했으며, 윤리를 고민하게 됐다. 그 1%의 차이가 우리에게 '선택의 무게'를 안겨준 것일까.
그만큼 가까운 존재들이 우리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뜻이다.
1959년부터 과학계에서는 '3R 원칙'이라는 윤리적 기준을 세웠다고 한다. Replacement(대체), Reduction(감소), Refinement(개선). 동물을 대체할 방법을 찾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최소한의 동물을 사용하며, 그 과정에서도 고통을 최소화하자는 약속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가족이 희귀병에 걸렸는데 그 치료제 개발을 위해 동물실험이 필요하다면? 반대로 화장품이나 일상용품을 위한 동물실험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저마다 다른 무게의 윤리를 저울질하게 된다. 동물실험의 필요와 윤리,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은 단순한 찬반을 넘어섰다. 이제는 인간과 생명의 균형을 묻는 깊은 질문이 되었다.
견딜 수 없는 감사의 무게가 존재한다.
오늘 밤 약을 복용하기 전에 잠깐이라도 생각해봤으면 한다. 이 작은 알약 하나가 품고 있는 무수한 생명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우리가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지를.
매일 우리는 보이지 않는 작은 희생 위에 서 있다. 95%의 유사성이 증명하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같은 생명의 뿌리에서 나온 존재들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첫걸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작은 생명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며, 감사와 책임감을 동시에 품고 살아가는 것. 어쩌면 그것이 99%가 아닌 1%의 존재로서 우리가 져야 할 아름다운 짐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