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적자 대신 명예를 장부에 적는다.

적자라는 가면 뒤에 숨은 진짜 얼굴, KBO 프로야구

by 안도현

숫자 속에 숨은 체면과 상징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부산 사직야구장에 갔던 기억이 있다.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였는데, 9회말 끝까지 접전이 이어졌다. 아버지는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야구단은 돈 버는 사업이 아니야. 하지만 그래도 기업들이 포기하지 않지."

그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 말씀 속에 숨은 진실이 보인다.

프로야구단은 매년 적자를 낸다. 수십억 원의 붉은 숫자가 장부에 찍힌다. 그런데도 삼성, LG, 롯데, 한화 같은 대기업들은 야구단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투자를 이어간다. 왜일까?

적자라는 가면 뒤에 숨은 진짜 얼굴을 들여다보면 답이 보인다.






야구에서 투수는 1번이다. 포수 2번, 1루수 3번. 각 포지션마다 고유한 숫자가 있다. 투수가 1번인 이유는 모든 플레이가 투수에게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기업에게 야구단도 그런 존재다. 모든 마케팅이 야구단에서 시작된다. 9회까지 이어지는 경기 시간 동안, 구단명은 수만 명의 관중과 시청자들의 뇌리에 새겨진다. 광고비로 환산하면 수백억 원 규모의 효과를 낸다.

기업은 적자 대신 명예를 장부에 적는다. 숫자로는 손해지만, 상징적 가치로는 이보다 값진 투자가 없는 셈이다.



건물 옥상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벤츄레타를 본 적이 있다. 벤틸레이터라고도 하는데, 건물 내부의 공기를 바깥 공기와 교환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야구단도 기업에게는 벤츄레타 같은 존재다.

기업 내부의 딱딱한 이미지를 밖으로 내보내고, 친근한 이미지를 안으로 끌어들인다. 돈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환기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최근 NC 다이노스 같은 구단이 창원시와 갈등을 빚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구장 운영권은 지자체가 가져가고, 기업은 책임만 떠안는 불공정한 구조의 문제다. 권리는 빼앗고 책임만 떠넘기는 게 진짜 적자다.

야구단은 단순한 사업체가 아니다. 기업의 얼굴이자 시민들의 감정적 자산이다. 승리할 때는 함께 기뻐하고, 패배할 때는 함께 아파한다. 하지만 그 모든 책임과 비용은 기업이 혼자 감당해야 한다.

어쩌면 이것이 현대 자본주의의 민낯인지도 모르겠다. 기업은 적자 대신 명예를 장부에 적고, 우리는 그 명예를 보며 환호한다. 9회말 투 아웃에서도 역전을 꿈꾸는 것처럼, 적자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것이다.

오늘도 야구장에서는 돈과 명예가 빙글빙글 맞돌고 있다. 적자라는 숫자 뒤에 숨은 진짜 가치를 찾아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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