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곗바늘이 가리키는 진실
어릴 적 아버지의 서재에는 낡은 시계가 하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그 시계는 10시 10분을 가리킨 채 멈춰 있었다. 아버지에게 "시계가 고장 났어요"라고 말하면,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하셨다.
"시계는 고장이 난 게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머물러 있는 거야."
그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나 시계 광고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 지금에서야 아버지 말씀의 의미를 알 것 같다.
롤렉스든 오메가든, 브랜드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시계 광고에서 바늘은 10시 10분을 가리키고 있다. 우연이 아니다. 10 pass 10이라 불리는 이 마케팅 기법은 스위스 시계 제조업체들 사이에서 하나의 불문율처럼 자리 잡았다.
Y자 모양으로 뻗은 두 바늘이 만들어내는 120도의 각도. 그 완벽한 기하학적 균형 속에서 시계는 마치 미소 짓는 얼굴처럼 보인다. 브랜드 로고를 떠받치듯 서 있는 바늘들은 제품에 품격을 부여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시간 뒤에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다.
조선시대 한양에도 시간은 흘렀다. 다만 지금처럼 분초를 다투는 시간이 아니었을 뿐이다.
해시계와 물시계로 대략의 시각을 가늠하던 그 시절,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정확한 시각이 아니라 하루의 리듬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드는, 자연스러운 흐름 말이다.
그런 한양에서 가장 분주한 시간대는 언제였을까. 아마도 저녁 무렵이었을 것이다. 골목마다 소고기 굽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장터에서는 하루 장사를 마무리하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요란했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를 들여다보면 한양 사람들의 소고기 소비량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청빈한 선비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배고프면 먹고, 맛있는 게 있으면 즐기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저녁 시간에는 지금과 다른 긴장감이 흘렀다. 해가 지면 인왕산에서 호랑이가 내려왔기 때문이다.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에 따르면 18세기 한 해에만 140여 명이 호랑이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상상해 보라. 오늘 저녁 치킨을 사러 나가는 길에 호랑이와 마주칠 수도 있다면, 편의점에서 야식을 사려다가 맹수에게 물려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은 공포감이 들끓기도 한다.
시간은 때로 잔인하다.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것 중 상당수는 궁궐의 기록일 뿐이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임금과 신하들의 대화는 상세히 적혀 있지만, 호랑이를 무서워하며 집으로 달려가던 한양 시민의 심정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골목에서 들려오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장터에서 흥정하던 아낙네들의 목소리, 소고기 굽는 냄새에 섞여 풍겨오던 삶의 체취들. 그 모든 것이 일제강점기 도시 개발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마치 고장 난 시계처럼, 우리의 역사도 특정 순간에 멈춰 서 있는 건 아닐까.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시간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시계가 재는 물리적 시간과 의식이 경험하는 심리적 시간. 전자는 균등하게 흘러가지만, 후자는 상황에 따라 늘어나기도 줄어들기도 한다.
한양 사람들에게 호랑이와 마주친 그 순간은 영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반면 가족과 함께 소고기를 구워 먹던 평온한 저녁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으리라.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다. 지하철 출근 시간의 아수라장은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 같지만, 주말 오후 한강에서 보내는 여유로운 시간은 금세 흘러간다.
역사는 멈춰진 시곗바늘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시간의 흐름이다. 10시 10분에 고정된 광고 속 시계처럼 아름답게 정리되어 있지도 않고, Y자 모양의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지도 않다.
한양의 소고기 연기 속에서,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는 어둠 속에서,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치킨 냄새가 풍기는 골목에서 역사는 여전히 흘러가고 있다.
시곗바늘은 10시 10분에 멈춰 있을지 몰라도, 삶은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아버지가 말씀하신 '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