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와 살의 계몽
거리를 걷다 보면 이발소 앞에 걸린 삼색등을 마주한다. 빨강과 파랑, 하얀색이 나선을 그리며 끝없이 돌아간다. 어린 시절 나는 그 등을 보며 궁금해했다. 왜 하필 그 세 가지 색일까.
어머니는 "그냥 예쁘라고 그런 거 아닐까"라고 대답하셨지만, 나는 뭔가 더 깊은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도서관에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이란.
빨간색은 피를, 하얀색은 붕대를 뜻했다. 영국에서는 원래 이 두 색만 사용했다고 한다. 파란색은 대서양을 건넌 뒤 북미에서 더해진 색이다. 성조기의 영향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그 작은 간판 속에 중세 유럽의 기묘한 풍경이 압축되어 있었던 것이다.
중세의 이발소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이 간판은 중세 유럽에서 이발사가 외과의사를 겸했던 흔적이다.
머리를 깎으러 간 사람이 충치로 고생하고 있다면? 이발사가 치아를 뽑아주었다. 팔에 종기가 났다면? 역시 이발사의 몫이었다. 심지어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발사가 나섰다.
면도칼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난 이들에게 이런 일을 맡기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예리한 날을 정교하게 조절하는 기술은 머리카락이든 살점이든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런데 정작 '진짜 의사'로 대접받는 이들은 따로 있었다. 대학에서 라틴어로 된 의학서를 공부한 내과의사들이었다. 이들은 환자의 몸에 손 하나 대지 않고도 병을 진단했다. 맥박을 짚고, 소변의 색깔을 보고, 별자리를 관찰해서 처방전을 썼다.
당시 의학계에는 엄격한 위계가 있었다. 대학에서 학문을 배운 내과의사들은 엘리트로 대우받았다. 반면 기술을 익히는 장인으로 여겨진 외과의사들의 사회적 지위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기독교 세계에서 인간의 몸은 신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 작품을 칼로 가르는 것은 신성모독에 다름없었다. 의학을 가르치는 대학에서조차 해부학은 변방의 학문이었다.
그래서 의사들은 고대 그리스 시대 갈레노스의 의학서를 경전처럼 외워야 했다. 갈레노스가 1300년 전에 쓴 책을. 그것도 제대로 된 해부 없이, 원숭이와 돼지의 몸을 보고 추측해서 쓴 책을.
갈레노스도 훌륭한 의사였다. 하지만 그 역시 시대의 한계 안에 갇혀 있었다. 로마 법이 인체 해부를 금지했기 때문에 동물의 몸으로 인간을 유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 오류들이 중세를 관통하며 굳어졌다는 점이었다. 의심하는 것 자체가 불경이었으니까.
덕분에 그의 해부학은 오류투성이였지만, 천 년 넘게 절대적 권위를 누렸다.
이런 분위기가 바뀐 건 16세기부터다.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라는 젊은 의사가 나타났다. 스물여덟의 나이에 그는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라는 책을 펴냈다. 1543년의 일이었다.
베살리우스는 직접 시체를 해부하며 갈레노스의 오류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바로잡았다. 인간의 턱뼈는 원숭이처럼 두 개로 나뉘어 있지 않다고, 남자와 여자의 갈비뼈 개수는 같다고 당당히 선언했다.
당연히 엄청난 반발이 일었다. 그를 가르쳤던 스승까지 나서서 "갈레노스가 틀릴 리 없다. 고대 사람들에 비해 현대인이 퇴화했을 뿐"이라고 억지를 부렸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베살리우스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의학은 비로소 관찰과 실험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재미있게도 같은 해에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발표했다. 하늘과 땅에서 동시에 혁명이 일어난 셈이었다.
메스 한 자루가 세상을 바꾼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메스를 제대로 사용할 용기를 가진 사람이 세상을 바꾼 것이다.
베살리우스 이후 외과의사의 지위는 서서히 올라갔다. 이발사와의 경계도 뚜렷해졌다. 1745년 영국에서 공식적으로 이발사와 외과의사가 분리되었을 때, 천 년을 이어온 기묘한 동업이 막을 내렸다.
중세에 비해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의학 드라마 주인공들은 대부분 외과의사다. 《그레이 아나토미》의 메러디스 그레이, 《굿 닥터》의 션 머피, 《낭만닥터 김사부》의 김사부까지. 모두 메스를 든 영웅들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 화려함과 달리 현실은 다르다. 정작 의대생들은 외과를 기피한다. 그들 사이에서 외과 전공의 지원율은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수술실에서 보내는 긴 시간, 극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업무 강도,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다.
흉부외과의 경우 의대생 90% 이상이 기피 과목으로 꼽는다고 한다. 심장과 폐를 수술하는 중요한 분야임에도 위험 부담은 높고 처우는 상대적으로 낮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과의사를 향한 대중의 판타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메스 한 자루로 생명을 살리는 모습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워낙 강렬하기 때문이다.
메스를 든 영웅에 대한 환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 이것 역시 시대가 만들어낸 편견일까?
이발소 앞을 지날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그 삼색등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인류 의학사의 증언이라는 것을. 지식과 용기, 편견과 진실이 복잡하게 얽힌 역사의 흔적이라는 것을. 과학은 언제나 금기를 깨는 일에서 시작되었다. 베살리우스가 시체 해부를 통해 갈레노스의 권위에 도전했듯이.
메스는 살을 가르지만, 동시에 우리의 무지도 가른다. 그리고 때로는 편견까지도.
그 작은 칼날 위에 인간의 용기와 지혜가 함께 놓여 있다.
서구에서는 과학이 교양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 이를 증명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다르다. 과학은 여전히 전문가의 영역으로 여겨진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지만, 뉴턴의 운동법칙 세 가지를 술술 외우는 사람은 드물다.
이런 편견은 우리 교육 시스템과도 관련이 있다. 문과와 이과를 일찌감치 나누는 구조에서, 인문학도들은 과학을 멀리하고 이공계생들은 문학을 등한시한다.
하지만 진정한 교양인이라면 C.P. 스노우가 《두 문화》에서 지적한 '과학과 인문학의 분리'를 경계해야 한다. 메스 하나에도 베살리우스의 용기와 과학 혁명의 철학, 그리고 현대 의학의 성취가 모두 담겨 있다.
과학은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메스 한 자루에서 시작된 외과 수술이 오늘날 로봇 수술로 발전하기까지, 그 뒤엔 수많은 과학자들의 노력이 있었다.
계몽주의가 종교와 왕정을 거부하며 이성의 시대를 열었다면, 이제는 과학과 인문학의 벽을 허물 때가 아닐까. 나는 그것이 현대판 문무겸비文武兼備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