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이상형이 되기 위한 나 자신과의 약속

by 안도현

우리는 외출 전 거울 앞에서 마지막 점검을 한다. 머리카락 한 올, 옷깃의 미세한 주름까지 세심하게 살피곤 한다. 단순히 외모를 가꾸는 행위 같지만, 이것은 세상에 내보일 자신의 모습을 준비하는 의식이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계모의 질문은 결국 타인과의 비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진짜 질문해야 할 것은 "거울아 거울아,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고 있니?"가 아닐까.






나는 체리가 좋다. 제철이 고작 한 달이라 1년을 기다려야 겨우 몇 주 맛볼 수 있는, 그래서 더욱 간절한 과일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체리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누군가에게 마음을 품게 되었을 때 말이다. 대부분의 체리나무는 '자가불화합성'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자신의 꽃가루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다른 나무의 도움이 있어야만 체리를 열매 맺는다는 뜻이다. 우리도 체리나무처럼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돼야 한다.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이상형이라면, 나부터 5분 일찍 도착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는 것이다.



이상형이라는 단어를 분해해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드러난다. 이상理想의 한자를 살펴보면 리理는 옥을 다듬는다는 뜻이고, 상想 은 마음으로 그린다는 의미다. 즉 이상형이란 마음속으로 그려낸 완성된 보석 같은 사람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그 보석을 남에게서 찾으려 한다.

몇 년 전 회사에서 만난 한 여성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솔직히 말하면 거짓말 안 하는 사람이 좋아요. 요즘 너무 많잖아요, 허풍치고 과장하고..." 그 순간 나는 덜컥 겸연쩍어졌다. 평소 재미있는 이야기를 위해 약간의 각색은 당연하다고 여겨왔는데, 그녀 앞에서는 왜 그리 떳떳하지 못한 마음이 들던지.



흔히들 연애에서 '케미'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케미(Chemistry), 즉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는 관계를 찾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진짜 화학반응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화학에서 반응이 일어나려면 '활성화 에너지'가 필요하다. 분자들이 서로 결합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상온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던 물질들이 적절한 열을 가하면 새로운 화합물을 만들어내듯이, 인간관계에서도 누군가 먼저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그 에너지가 바로 '내가 먼저 상대방이 되어주는 것'이다.

'체리 피킹(Cherry Picking)'이라는 표현이 있다. 원래는 체리밭에서 가장 좋은 체리만 골라 따는 행위를 말하지만, 은유적으로는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선택적으로 취하는 태도를 비판할 때 쓰인다.

연애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좋은 면만 받아들이고 싶어 하면서, 정작 내가 줄 수 있는 좋은 면에 대해서는 인색하다면 그것은 일종의 '체리 피킹'이다. 이런 이기적인 선택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개인이 먼저 스스로를 성찰해야 한다는 점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강조되어 왔다.



공자의 사상을 담고 있는 중국의 고전 《대학(大學)》에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나온다. 자신을 닦고, 집안을 정리하고,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평화롭게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수신修身, 즉 자신을 닦는 일이다.

이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타인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가장 먼저 자신부터 변해야 한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요즘 소개팅에서 MBTI부터 묻는 사람들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ENTJ세요? 아, 그럼 저랑 잘 맞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순간, 마치 혈액형 궁합을 보던 때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곤 한다.

특히 한국에서만 유독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하는데, 아마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과의 궁합을 맞춰보고 싶은 욕구가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MBTI의 창시자인 캐서린 브릭스와 이사벨 마이어스가 이 도구를 만든 진짜 목적은 사람들을 분류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자신의 성향을 알아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즉,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규정짓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런 경향이 있으니 이런 부분을 더 키워야겠어"라고 성장의 방향을 찾는 데 써야 한다는 뜻이다.



어느 카페에서 우연히 들은 대화가 기억난다. 두 여성이 연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정한 사람이 좋은데, 왜 만나는 사람마다 차갑고 무뚝뚝하지?"

그 순간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슬쩍 보았다. 친구에게 말하는 표정부터가 찌푸려져 있었고, 카페 직원이 커피를 가져다줄 때도 고개 한 번 끄덕이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다정함을 먼저 보여주지 않으면서 상대에게만 그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관계는 거울과 같다. 내가 웃으면 상대도 웃고, 내가 찡그리면 상대도 찡그린다. 물리학의 작용-반작용 법칙처럼 말이다.

조선시대 실학자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기신자己身者 치인지본야治人之本也"라고 했다. "자기 자신이야말로 남을 다스리는 근본이다"라는 뜻이다.

정약용이 살던 시대와 지금은 500년이 넘는 시간차가 있지만, 인간관계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진실한 사람이 진실한 사람을 만나고, 성실한 사람이 성실한 사람을 끌어당긴다.

물리학에서는 공명共鳴 현상(같은 진동수를 가진 물체들이 서로 진동을 증폭시키는 현상)처럼, 인간관계도 비슷하다. 같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끼리 끌어당겨진다.

운동하는 사람 주변에는 운동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책 읽는 사람 주변에는 책 읽는 사람들이 모인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결국 현관 앞 거울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이 아니다. 내가 세상에 내보일 마음가짐과 태도다. 오늘 내가 만날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갈 것인지, 어떤 에너지를 전해줄 것인지를 점검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거울 속 내 모습이 누군가의 이상형과 닮아가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머지는 시간이 알아서 데려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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