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작별하기 전에 절대 그 깊이를 알려주지 않는다

by 안도현

고등학교 때 기억이다. 점심시간이면 늘 도서관 구석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곤 했던 나는, 어느 날 우연히 한 권의 소설을 집어 들었다. 페이지를 넘기던 중 한 문장이 눈에 박혔다. "사랑은 떠나고 나서야 그 무게를 안다."

그때는 그저 멋진 문장이구나 싶어 밑줄을 그어두었을 뿐이었다. 사랑이 무엇인지, 이별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마치 수영을 해본 적 없는 아이가 바다의 깊이를 논하는 것처럼.

20대 초반, 첫 연인과 헤어지던 날이었다.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던 순간까지만 해도 '이 정도면 괜찮겠지' 싶었다. 평소 시내버스를 기다리며 관찰했던 두 종류의 기사가 스쳐간다. 어떤 기사는 뛰어오는 승객을 보면 잠깐 기다려주곤 했고, 어떤 기사는 정시에 딱 맞춰 출발해버렸다. 그때 나는 "인간관계는 결국 버스 같은 거야. 기다리면 다음 버스가 와. 그거 타면 되는 거고". 목적지가 다른 너와 난 서로 다른 노선을 타는 것뿐이라고, 좋은 추억으로 남겨두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의 뒷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던 그 순간에는 아직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조금 허전할 뿐이었다. 진짜 깨달음은 몇 주가 지나고 나서였다. 문득 그녀가 없는 일상이 얼마나 텅 비어있는지 느껴질 때, 그제야 알았다. 버스는 같은 노선을 반복해서 다닌다. 102번을 놓쳐도 또 다른 102번이 온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 사람만이 가진 고유한 목소리, 웃는 방식, 나만 아는 작은 습관들... 그런 것들은 세상에 단 하나뿐이었다. 다음 사람이 온다고 해서 이전 사람과 똑같을 리 없다는 것을, 여백은 존재가 아닌 부재不在의 결과라는 것을 깨달았을 땐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마음도 다르다人面不同心亦異"라고 했듯, 천 명의 사람이 있으면 천 가지 다른 사랑이 있다는 뜻이다. 내가 버스 비유를 들며 이별을 가벼이 여기려 했던 것은, 사실 이별의 무게를 감당하기 싫어서였다. 사랑이 얼마나 특별하고 대체 불가능한 것인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런 뜨거운 마음을 또 가질 수 있을까? 두려웠었다. 뜯어진 내 마음의 일부만 기워나가자. 나는 누더기가 된 채 조금씩 앞으로 기어나갔다.



그렇게 몇 해가 흘러 지인의 결혼식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신랑이 피로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사랑은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함께 길을 만들어가는 거였어요."

그 말을 들으며 20대 초반의 나 자신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사랑을 하나의 이동 수단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A지점에서 B지점으로 가기 위한 방편쯤으로 말이다. 하지만 진짜 사랑은 함께 새로운 지도를 그려나가는 일이었다. 《장자》에 '어화지락魚化之樂'이라는 말이 있다. 물고기는 물의 소중함을 물 밖에 나와서야 안다는 뜻이다. 사랑도 그와 닮았다. 사랑 속에 있을 때는 그것이 사랑인 줄 모르고, 사랑이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의 형체를 또렷하게 본다.



요즘도 버스 정류장을 지켜보면 여전히 두 종류의 기사들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인간관계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놓친 버스를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는 걸.

사랑이란 작별하기 전에 절대 그 깊이를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지금 누군가와 함께 가고 있다면, 그 여행 자체를 음미하기를 바란다. 목적지에 대한 조급함보다는 함께 보는 오늘의 풍경을, 다음 정거장에 대한 불안보다는 지금 나누고 있는 대화를 더 소중히 여기기를. 사랑의 깊이를 미리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잊지 않으면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거울